[그림이 있는 아침] 박생광 '전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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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녹두장군’ 전봉준이 전북 순창에서 일본군에 체포된 것은 1894년 12월 28일 밤. 담을 뛰어넘다가 일본군의 몽둥이에 다리가 부러진 채였다. 이듬해 2월 서울로 압송된 장군은 일본영사관 순사청에 수감됐다가 4월 24일 새벽 2시 의금부 전옥서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박생광(1904~1985)이 작고하던 해에 남긴 ‘전봉준’은 장군의 압송 장면을 그린 것이다. 화면의 중앙을 크게 차지한 장군의 눈동자에 기(氣)가 가득 찬 모습이다. 그 주변에 오열하는 농민과 놀란 표정의 관군들을 배치했다.
이 작품에는 원근법이 없다. 대신 강약을 극적으로 대비했다. 전봉준과 주변 군상의 표정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 흰옷을 입은 농민군은 비중 있게 처리한 반면 원색의 관군은 작게 표현했다. 닭과 소를 화면 가득 채운 점도 이채롭다.
‘전봉준’은 박생광이 회고전을 준비하면서 서울 수유리의 조그만 문간방에서 그린 가로 510㎝, 세로 360㎝의 ‘대작’이다. 당시 그의 작업실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작품을 한 번에 다 펼칠 수가 없어서 종이를 말아가면서 한쪽은 펼치고, 한쪽은 밀면서 그린 작품”이라고 했다. 작가도 전시장에 나와서야 작품의 전모를 처음 봤다고 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박생광(1904~1985)이 작고하던 해에 남긴 ‘전봉준’은 장군의 압송 장면을 그린 것이다. 화면의 중앙을 크게 차지한 장군의 눈동자에 기(氣)가 가득 찬 모습이다. 그 주변에 오열하는 농민과 놀란 표정의 관군들을 배치했다.
이 작품에는 원근법이 없다. 대신 강약을 극적으로 대비했다. 전봉준과 주변 군상의 표정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 흰옷을 입은 농민군은 비중 있게 처리한 반면 원색의 관군은 작게 표현했다. 닭과 소를 화면 가득 채운 점도 이채롭다.
‘전봉준’은 박생광이 회고전을 준비하면서 서울 수유리의 조그만 문간방에서 그린 가로 510㎝, 세로 360㎝의 ‘대작’이다. 당시 그의 작업실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작품을 한 번에 다 펼칠 수가 없어서 종이를 말아가면서 한쪽은 펼치고, 한쪽은 밀면서 그린 작품”이라고 했다. 작가도 전시장에 나와서야 작품의 전모를 처음 봤다고 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