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유동성 마련 방안이 담긴 두산중공업 자구안(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13일 채권단에 전달했다. 지난달 채권단이 1조원의 대출을 지원하는 대신 경영 정상화 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지난달부터 진행 중인 두산중공업 실사 결과와 이번 자구안을 검토해 경영 정상화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두산重 "매각 가능한 모든 자산 팔겠다"
두산그룹에 따르면 재무구조 개선 계획에는 가능한 모든 자산을 매각 또는 유동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두산 관계자는 “두산그룹과 대주주(오너일가)는 책임경영을 이행하기 위해 뼈를 깎는 자세로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두산그룹은 (주)두산 자회사인 두산솔루스 지분을 매각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유력 인수대상으로 거론됐던 사모펀드(PEF)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와의 협상은 결렬됐다. 두산 측은 “매각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시장에서 공개매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은 이외에도 두산중공업의 석탄 화력발전사업, 두산메카텍 등을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두산솔루스를 매각한다고 해도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자산을 매각해 몸집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계에서는 두산의 자구안에 지배구조 개편 방안도 포함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은 측은 두산의 지배구조를 두고 “나쁜 부모 밑에 있어서 자식들이 자금 조달을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표현했다. 두산중공업의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와 손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중공업에서 떼내야 한다는 의미다. 두산중공업을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리해 투자회사에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 지분을 몰아준 뒤 투자회사를 (주)두산 아래 두는 형식으로 지배구조가 개편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채권단은 지배구조 개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은 두산 유동성 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구안이 실현 가능한 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지배구조 개편도 채권단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채권단 측은 무엇보다 두산 일가의 경영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오너일가의 ‘고통 분담’이 더 이뤄져야한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기업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로 도산하지 않도록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며 “다만 오너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 지원의 명분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두산이 제출한 재무구조 개선 계획은 채권단과의 협의와 두산 이사회 결의 등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수은은 계획안을 검토한 뒤 오는 24일을 전후로 확대여신위원회를 열고 두산중공업의 외화채권 6000억원을 대출로 전환해 줄지 여부를 결정한다. 두산중공업은 올해 만기인 차입금 4조2000억원 중 한도대출 1조원과 외화채권 대출 전환을 제외해도 2조원 이상의 차입금을 갚아야 한다.

산은 측은 이날 “자구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두산그룹과 협의해 두산중공업의 경영 정상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는 공식 의견을 내놨다. 채권단은 자구안의 검토 기준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송곳 검증’을 예고했다.

이와 별도로 삼일회계법인과 법무법인 지평도 채권단 측 담당기관으로 선정돼 지난달부터 두산중공업 실사에 들어갔다. 산은 관계자는 “자구안의 타당성과 실행 가능성, 구조조정 원칙에 부합하는지 여부, 채권단의 자금지원 부담과 상환 가능성, 국가 기간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빈/임현우/이상은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