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골격은 ‘유예’ 또는 ‘연장’이다. 대출 원금과 이자를 나중에 받겠다는 내용이다. 1차 타깃은 벼랑 끝에 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정부는 지난달 19일 열린 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소상공인 등에 대한 대출만기 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대책을 발표했다.
시한폭탄의 심지는 길어졌지만
2주 뒤엔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담은 금융권 공통 가이드라인도 내놨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에만 적용되고, 부동산 매매 및 임대업은 제외했다. 대출 원리금을 연체한 경력이 있거나 자본이 잠식된 기업도 혜택을 못 받는다. 조건을 충족한 기업은 신청일을 기준으로 최소 6개월 이상 이자 납입을 미룰 수 있다. 상환 유예기간에 발생한 이자는 감면되지 않는다. ‘유예’일 뿐 ‘탕감’은 아니라는 표식이다.
‘유예 시리즈’는 기업대출에 이어 가계대출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득이 줄어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개인채무자가 대상이다. 연체위기에 몰린 개인이 채무 불이행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최대 1년간 원금 상환을 미뤄주기로 했다. 시행 시기는 이달 말로 잡았다. 단 이자는 약정했던 대로 매달 내야 한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듯 ‘혜택’은 ‘비용’을 수반한다. 안타깝게도 이승엔 공짜가 없다. 청구서는 어김없이 날아오기 마련이다. 시한폭탄의 심지는 1년 정도를 더 견딜 수 있도록 길어졌다. 하지만 뇌관 자체가 제거된 건 아니다. 금융권에서 “내년이 걱정”이라는 한숨이 나오는 이유다.
위기는 늘 약한 고리부터 노린다. ‘유예’라는 보호막이 걷히는 6개월 또는 1년 뒤 갑자기 연체자가 늘어나면 금융권 가장자리부터 금이 가기 시작할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때도 그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다르지 않았다.
끊기 힘든 '현금 살포'의 단맛
하루걸러 쏟아지는 각종 재난지원금도 또 다른 형태의 ‘유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18년 35.9%(본예산 기준)에서 올해 39.8%로 가파르게 높아졌다. 추가경정예산까지 더하면 마지노선으로 불리던 40%를 훌쩍 넘어서게 된다. 재정건전성 악화라는 부작용은 여러 경로를 통해 비용을 요구한다. 한국의 대외 신인도가 떨어지고, 해외 자본이 빠져나가는 빌미가 된다. 비어가는 곳간은 세금을 통해 메워야 한다. 비용 청구 시점이 뒤로 미뤄진 것일 뿐 결코 공짜가 아니다.
국민이 ‘현금 살포’의 단맛에 중독되는 건 보이지는 않지만, 훨씬 큰 비용이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국민의 기대치는 높아지고, 눈치 빠른 정치권은 다른 이름으로 포장된 현금을 또다시 건넬 공산이 크다. 혜택은 당장, 대가는 나중에 치르는 ‘유예의 유혹’은 그만큼 떨쳐내기 어렵다.
어느 고깃집에 붙어 있다는 ‘경고문’은 이런 위험의 속성을 정확하게 간파한다. ‘소고기 사주는 사람을 주의하세요.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예요.’
건강을 생각한다면 이를 꽉 깨물고라도 체중계에 올라가야 한다. 엄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해결책이 나온다. 다이어트를 미루면 힘만 들고, 건강만 더 해친다. 들고 난 칼로리의 총합이 곧 뱃살이라는 공식은 불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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