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교체설 솔솔…EPB 출신이냐 '모피아'냐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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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홍남기 경제부총리로는 '코로나 경제 위기'를 돌파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런 말들이 청와대와 여당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쇼크로 인한 사상 초유의 복합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실물과 금융에 밝고, 강력한 리더쉽을 갖춘 경제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그런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런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또 홍 부총리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 공약에 대해 재정부담을 이유로 반대하자 정치권에선 교체설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지난주 국회의원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둔 만큼 경제부총리를 교체하는 개각을 조만간 단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도마 위에 오른 홍남기 경제팀
현 경제팀 진용은 경제위기를 관리해본 경험이 없는 기획·예산 전문가들로 채워져 있는 게 사실이다. 경제팀 팀장격인 홍 부총리는 옛 기획예산처에서 예산 전문가로 잔뼈가 굵었다. 이후 기재부 대변인, 정책조정국장과 국무조정실장 등 주로 정책 조정업무를 했다. 금융 쪽 경력은 전무하다.
청와대 이호승 경제수석도 비슷하다. 기재부에서 정책조정국장과 경제정책국장을 거치는 등 기획과 정책조정이 주전공이다. 이 수석 위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제학자 출신으로 시민단체에서 재벌개혁과 공정거래 분야만 파고들던 사람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기재부 국제금융정책국장을 지내는 등 국제금융통인 정도다.
이렇게 현 경제팀의 핵심 포스트엔 금융·실물 전문가나 1997년말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대처해본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부터 소득주도성장론을 들고 나오며 재정 주도의 정책을 추진하느라 기획·예산전문가를 주로 등용한 결과란 분석이다.
청와대와 여당 주변에선 "경제정책 여건이 바뀐 만큼 기획·예산 전문가보다는 금융쪽 경력이 있는 전문가를 경제팀장으로 발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경제부처 출신으로 따진다면 과거 EPB(경제기획원의 영문 Economy Planning Board의 약칭)가 아닌 모피아(재무부의 영문 약칭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중에서 경제부총리를 골라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관료의 양대 축 EPB vs 모피아
EPB와 모피아는 한국 경제관료의 양대축을 상징하는 말이다. 지금의 수석 경제부처인 기획재정부의 전신은 1994년 정부 행정조직개편으로 탄생한 재정경제원이다. 이 재경원은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통폐합된 부처였다. 지금도 기재부 국장급 이상은 EPB출신과 모피아 출신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물론 외환위기 직후 재경원이 해체돼 재정경제부(현 기재부)와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로 분리되면서 상당수 모피아는 금감위로 옮겨 둥지를 틀었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는 1970~80년대 고도성장기에 경제정책를 견인한 쌍두마차였다. 그런 만큼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모였고, 두 부처의 라이벌 의식도 대단했다고 한다. 두 곳의 업무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에 관료들의 특성도 대조적이었다. 기획원은 개발연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짜는 게 주업무였다. 재무부는 나라 곳간인 재정과 금융시장을 관리하는 게 핵심 업무다.
그러다 보니 EPB관료들은 창의적이고 개방적이고, 도전적인 반면 모피아는 보수적이고, 집단주의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습성이 배었다. 정부 부처간 체육대회를 해도 EPB는 야구를 잘 했고, 모피아는 축구를 잘했다는 얘기도 이들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발투수는 EPB, 마무리는 모피아
EPB와 모피아 출신의 특성과 장단점이 다르다 보니 각 정권에서 발탁된 시기도 달랐다. 일반적으로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밑그림을 그리는 정권 초엔 기획이 장기인 EPB출신이 청와대 경제수석 등 참모로 각광 받았다. 그러다 정권 중반을 넘겨 추진 정책을 마무리하고, 혹시 모를 위기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을 땐 모피아 출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야구로 치면 EPB출신은 선발 투수, 모피아 출신은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엔 정권의 성격에 따라 EPB와 모피아 출신이 번갈아 가며 등용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에선 모피아 출신이 많이 기용됐다. 1기와 2기 기재부 장관을 모피아인 강만수와 윤증현이 연달아 맡았고, 역시 모피아인 최중경이 경제수석과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활약했다. 이어 들어선 박근혜 정부에선 상대적으로 EPB 출신이 빛을 봤다. 1,2기 경제부총리를 EPB 출신의 현오석, 최경환이 맡았다. 이명박 정부 때 주목받지 못했던 EPB출신이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에 몰리면서 발생한 현상이란 해석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EPB출신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고형권 기재부 1차관으로 이어진 1기 경제팀이 모두 EPB출신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김석동 임종룡 김용범 등 모피아 하마평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부총리를 교체한다면 누구를 낙점할까. 경제관료들은 모피아 출신이 발탁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코로나 쇼크로 인한 복합경제위기 상황을 헤처나가려면 무엇보다 금융쪽의 전문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실제 하마평에 오르는 김석동·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김용범 기재부 제1차관 등이 모두 모피아 출신이다. 금융정책이 전문인 김 전 위원장은 관료시절 '대책반장'이란 별명을 달 정도로 경제위기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했다. 임 전 위원장은 재정경제부 시절 은행·증권과장과 금융정책과장을 두루 거친 뒤 경제정책국장, 제1차관까지 섭렵한 베테랑 전문 관료다. 김 차관도 옛 재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금융위에서 자본시장국장, 금융정책국장, 사무처장, 부위원장 등 요직을 거쳤다.
앞으로 임기 2년을 남긴 문 대통령이 위기 대처와 정책 마무리를 위해 EPB출신 경제부총리를 모피아 출신으로 교체할지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경제부총리의 교체가 위기경제 극복을 위한 선택이어야지, 여당의 말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어선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차병석 수석논설위원 chabs@hankyung.com
코로나 쇼크로 인한 사상 초유의 복합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실물과 금융에 밝고, 강력한 리더쉽을 갖춘 경제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그런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런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또 홍 부총리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 공약에 대해 재정부담을 이유로 반대하자 정치권에선 교체설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지난주 국회의원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둔 만큼 경제부총리를 교체하는 개각을 조만간 단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도마 위에 오른 홍남기 경제팀
현 경제팀 진용은 경제위기를 관리해본 경험이 없는 기획·예산 전문가들로 채워져 있는 게 사실이다. 경제팀 팀장격인 홍 부총리는 옛 기획예산처에서 예산 전문가로 잔뼈가 굵었다. 이후 기재부 대변인, 정책조정국장과 국무조정실장 등 주로 정책 조정업무를 했다. 금융 쪽 경력은 전무하다.
청와대 이호승 경제수석도 비슷하다. 기재부에서 정책조정국장과 경제정책국장을 거치는 등 기획과 정책조정이 주전공이다. 이 수석 위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제학자 출신으로 시민단체에서 재벌개혁과 공정거래 분야만 파고들던 사람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기재부 국제금융정책국장을 지내는 등 국제금융통인 정도다.
이렇게 현 경제팀의 핵심 포스트엔 금융·실물 전문가나 1997년말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대처해본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부터 소득주도성장론을 들고 나오며 재정 주도의 정책을 추진하느라 기획·예산전문가를 주로 등용한 결과란 분석이다.
청와대와 여당 주변에선 "경제정책 여건이 바뀐 만큼 기획·예산 전문가보다는 금융쪽 경력이 있는 전문가를 경제팀장으로 발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경제부처 출신으로 따진다면 과거 EPB(경제기획원의 영문 Economy Planning Board의 약칭)가 아닌 모피아(재무부의 영문 약칭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중에서 경제부총리를 골라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관료의 양대 축 EPB vs 모피아
EPB와 모피아는 한국 경제관료의 양대축을 상징하는 말이다. 지금의 수석 경제부처인 기획재정부의 전신은 1994년 정부 행정조직개편으로 탄생한 재정경제원이다. 이 재경원은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통폐합된 부처였다. 지금도 기재부 국장급 이상은 EPB출신과 모피아 출신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물론 외환위기 직후 재경원이 해체돼 재정경제부(현 기재부)와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로 분리되면서 상당수 모피아는 금감위로 옮겨 둥지를 틀었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는 1970~80년대 고도성장기에 경제정책를 견인한 쌍두마차였다. 그런 만큼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모였고, 두 부처의 라이벌 의식도 대단했다고 한다. 두 곳의 업무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에 관료들의 특성도 대조적이었다. 기획원은 개발연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짜는 게 주업무였다. 재무부는 나라 곳간인 재정과 금융시장을 관리하는 게 핵심 업무다.
그러다 보니 EPB관료들은 창의적이고 개방적이고, 도전적인 반면 모피아는 보수적이고, 집단주의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습성이 배었다. 정부 부처간 체육대회를 해도 EPB는 야구를 잘 했고, 모피아는 축구를 잘했다는 얘기도 이들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발투수는 EPB, 마무리는 모피아
EPB와 모피아 출신의 특성과 장단점이 다르다 보니 각 정권에서 발탁된 시기도 달랐다. 일반적으로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밑그림을 그리는 정권 초엔 기획이 장기인 EPB출신이 청와대 경제수석 등 참모로 각광 받았다. 그러다 정권 중반을 넘겨 추진 정책을 마무리하고, 혹시 모를 위기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을 땐 모피아 출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야구로 치면 EPB출신은 선발 투수, 모피아 출신은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엔 정권의 성격에 따라 EPB와 모피아 출신이 번갈아 가며 등용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에선 모피아 출신이 많이 기용됐다. 1기와 2기 기재부 장관을 모피아인 강만수와 윤증현이 연달아 맡았고, 역시 모피아인 최중경이 경제수석과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활약했다. 이어 들어선 박근혜 정부에선 상대적으로 EPB 출신이 빛을 봤다. 1,2기 경제부총리를 EPB 출신의 현오석, 최경환이 맡았다. 이명박 정부 때 주목받지 못했던 EPB출신이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에 몰리면서 발생한 현상이란 해석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EPB출신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고형권 기재부 1차관으로 이어진 1기 경제팀이 모두 EPB출신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김석동 임종룡 김용범 등 모피아 하마평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부총리를 교체한다면 누구를 낙점할까. 경제관료들은 모피아 출신이 발탁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코로나 쇼크로 인한 복합경제위기 상황을 헤처나가려면 무엇보다 금융쪽의 전문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실제 하마평에 오르는 김석동·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김용범 기재부 제1차관 등이 모두 모피아 출신이다. 금융정책이 전문인 김 전 위원장은 관료시절 '대책반장'이란 별명을 달 정도로 경제위기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했다. 임 전 위원장은 재정경제부 시절 은행·증권과장과 금융정책과장을 두루 거친 뒤 경제정책국장, 제1차관까지 섭렵한 베테랑 전문 관료다. 김 차관도 옛 재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금융위에서 자본시장국장, 금융정책국장, 사무처장, 부위원장 등 요직을 거쳤다.
앞으로 임기 2년을 남긴 문 대통령이 위기 대처와 정책 마무리를 위해 EPB출신 경제부총리를 모피아 출신으로 교체할지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경제부총리의 교체가 위기경제 극복을 위한 선택이어야지, 여당의 말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어선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차병석 수석논설위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