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발(發) 자금시장 경색을 풀기 위해 조성된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가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별 문제 없는 우량채권만 사들이는 ‘편식’으로 인해 되레 회사채 시장의 부익부 빈익빈을 부채질하고 있어서다.

채안펀드는 ‘AA-’ 등급 회사채라도 신용전망이 ‘부정적’이면 “신용등급이 떨어져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다. 그제 한화솔루션이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회사채(AA-·부정적) 2100억원어치를 발행하려다 수요예측에 실패한 데는 채안펀드의 불참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 기관들이 채안펀드만 쳐다보고 있는데, 최근 한화솔루션의 신용전망 하향(안정적→부정적) 등을 이유로 채안펀드가 빠지자 덩달아 다른 기관들도 외면한 것이다. 반면 ‘AA’ 등급인 롯데칠성음료 회사채는 일찌감치 투자를 확정해 3200억원어치가 모두 팔렸다.

채안펀드는 이달 초 출범 직후부터 “회사채 시장가격보다 높은 값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을 지원한다는 취지를 못 살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중앙은행을 통해 ‘BB-’ 이하 투기등급 채권까지 사들이기로 한 미국의 대처와 대비된다. ‘우량’과 ‘불량’의 경계선상에 있는 기업들을 최대한 살리는 게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을 막는 첩경이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채안펀드의 84개 출자사 대부분이 민간 금융회사여서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달 들어 11개 기업의 신용등급 전망이 내려가는 등 신용위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금은 평시가 아니라 전시라는 얘기다. 그런 만큼 채안펀드를 활용해 자금경색을 푸는 데 금융당국이 ‘운용의 묘(妙)’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민간 금융회사들에 손실을 감수하라고 강요하기 어려운 만큼 국책은행이 앞장서 채안펀드 투자대상의 경계선상에 있는 기업들의 회사채를 적극 매입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멀쩡하던 기업이 부실기업으로 추락하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