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참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한국 사회가 ‘성(城)안 사람들’과 ‘성밖 사람들’로 나뉜다는 사실이다.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공무원과 공기업 대기업 금융회사의 정규직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반면 일용할 수단을 잃은 성밖 사람들은 매일 절벽이다.

새벽 버스·지하철 풍경부터 변했다. 인력시장에 나가는 사람들, 밤새 일 마친 대리기사들, 청소·경비일 하는 어르신들, 알바하러 가는 젊은이 등이 주로 탔다. 그 어둡고 무표정했던 이들이 요즘에는 확 줄었다. 일자리도 일거리도 없어서다. 이뿐인가. 실직자, 무급휴직자,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종사자, 자영업자, 취업준비생, 프리랜서, 학습지교사, 영화·공연 스태프, 여행·관광업 종사자….

성밖이 궁벽할수록 성안의 안락함이 더 또렷해진다. 그럼에도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소득 상위 30%를 가르는 월 712만원은 연봉으로 8500만원이 넘는다. 전 국민에게 다 주자는 정치권의 총선용 베팅을 거부하거나 받아도 기부하겠다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코로나19는 ‘한국인은 연대의식이 있는가’라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 양귀자는 3저 호황으로 잘나가던 1988년 ‘따뜻한 내집 창밖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고 썼다. 이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 못해 더 절절하게 와닿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의 대재앙 속에 한국도 마이너스 성장(-1.2%)할 것으로 전망했다. 외환위기 후 첫 역성장에는 많은 것이 담길 것이다. 부도, 폐업, 실업, 가족해체, 좌절, 포기…. 경제 추락은 성밖의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성채사회’에 접어든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성밖에서 성안으로의 계층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기득권·배제·차별의 성벽은 더 견고하고 높아졌다. 부모가 자식을 성안의 더 높은 곳으로 밀어넣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음을 조국 사태가 보여줬다. 이른바 ‘기회 사재기’를 독점한 상위 20%의 중상층이 교육·인턴·취업 등을 공유한다.

“6기통 이상 차를 타는 사람은 자식을 국내에서 안 가르친다”는 한 교수의 관찰은 과장이 아니다. 부유층, 고관대작은 물론 반미투쟁을 했던 이들도 자식은 어김없이 미국 유학 중이다. 영어 디바이드, 디지털 디바이드의 간극이 코로나 사태로 더 벌어질 판이다. “부모 잘못 만난 게 가장 큰 시장 실패”(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헤크먼)라는 지적이 실감 난다.

정치권 일각에선 전 국민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AI(인공지능) 시대의 대량실업에 대비하자는 논의를 코로나 사태를 틈타 대중용어로 만들었다. 하지만 성밖 사람들에게 절실한 것은 재원 대책도, 지속가능성도 없는 기본소득이 아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을 일거리와 일자리다.

선거 이후가 곧 ‘코로나19 이후’다. 방역의 1파는 잦아들고 있지만 실물경제 충격의 2파가 엄습해 온다. 그럴수록 정부는 커질 것이다. 하지만 ‘큰 정부’일수록 정실주의(nepotism)가 만연한다. 끼리끼리 해먹기 좋은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루이기 진갈레스 미 시카고대 교수는 “정부가 작고 약할 때 돈 버는 효과적인 방법은 사업으로 성공하는 것이지만, 정부 지출 규모와 영역이 크면 클수록 공공의 자원을 유용해 돈 버는 게 더 쉬워진다”고 비판했다. 그 해법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균등, 정실·연고가 아니라 시장경쟁 활성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총선 이후 되레 기득권과 독점·배제의 성벽은 더 견고해질 조짐이다. 각 당이 내건 공약만 보면 21대 국회도 친노조·반기업 입법 홍수가 불 보듯 뻔하다. 정권 지지기반인 노동계는 해고 금지를 주장하고, 주 52시간제를 신성불가침으로 만들고 있다. “최고의 법으로 물질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어려우나 나쁜 법으로 그것을 망치는 것은 쉽다.”(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

코로나19 충격이 장기화하면 먼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성밖 사람들이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성안 사람들이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기득권의 성벽을 허물고 ‘기회의 사다리’를 놔줘야 한다. 친서민을 표방한 정부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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