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는 지금까지 한인 동포 시장을 겨냥해 수출을 해왔다. 김치 김 등을 수출해도 어차피 해외에 사는 한국인 또는 아시아계가 먹었다는 얘기다. 신라면은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었다. 100여 개 국가에서 연간 7000억원어치가 팔리고 있다. ‘식품업계의 반도체’로 불리는 이유다. 2018년 미국 최대 대형마트 체인인 월마트와 코스트코에도 입점했다. 미국에서 신라면 소비자의 60%는 비아시아계다. 농심은 어떻게 ‘한국인의 매운 맛’을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을까. 수십 년간 공들인 고도의 마케팅 전략을 분석했다.

“한국의 맛이 가장 세계적인 맛”
그래픽=신택수 기자 shinj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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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종주국은 2000년대 초까지 일본이었다. 세계 시장에 다양한 라면 제품을 수출했다. 농심의 수출 전략은 ‘신라면 온리(only)’였다. 일본과 동남아시아의 인스턴트 라면과 비교해 가장 차별화된 ‘우리의 맛’을 구현할 수 있는 강력한 제품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었다. 신춘호 농심 회장은 1970년대 초 라면을 수출하며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방식대로 가자”며 “한국의 맛이 가장 세계적인 맛”이라고 강조했다.

신라면의 브랜드 경쟁력은 신 회장의 말처럼 천천히, 하지만 견고하게 쌓여갔다. 2005년 LA 공장을 시작으로 동부와 알래스카, 남미까지 유통망을 넓혔다. 한인 사회를 넘어 미국 소비자들이 먼저 찾는 브랜드로 만들어갔다. 식품업계 유행에 따라 다품종 마케팅 전략을 썼다면 단기 성과를 내는 데 그쳤을지 모른다. 신라면의 판매량은 멈추지 않는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신라면은 월마트와 코스트코, 아마존, 알리바바 등 세계 최고 유통 기업들이 요청하는 브랜드가 됐다. 월마트 전 점포에 입점한 뒤 신라면은 미 국방부와 의회의사당 등 주요 정부기관 매점에 최초로 입점한 브랜드가 됐다.

‘짜파구리’로 확인된 해외 마케팅 저력

중국 전역에는 농심의 1000여 개 영업망이 있다. 중국에서 신라면은 공항, 관광명소 등에서 판매되는 고급 식품 브랜드다. 인민일보가 선정한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명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중국은 봉지 라면도 그릇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농심은 ‘끓여 먹는 라면 문화’를 전파한 기업이기도 하다. 중국 전역의 마트 등을 돌며 시식회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라면 종주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도 ‘신라면 키친 카’라는 푸드트럭이 봄과 가을 7개월간 일본 주요 도시를 돌며 현장 마케팅을 펼쳐왔다.

올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며 농심의 마케팅 능력은 다시 빛을 발했다. 영화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가 열풍을 일으키자 농심은 발 빠르게 영국 주요 극장에서 관객에게 짜파구리를 증정하며 레시피를 알렸다. 미국에서는 짜파게티와 너구리가 합쳐진 형태의 ‘완제품 짜파구리’를 내놓기도 했다. 시상식 이후 짜파게티의 해외 매출은 두 배 이상 뛰었다.

中에선 바둑, 美선 아트 마케팅

농심의 현지화 마케팅은 신라면의 뛰어난 품질과 함께 글로벌 사업을 성장시킨 축이다. 중국에서는 인기 스포츠인 바둑을 활용했다. 농심은 20년 넘게 이어 온 한·중·일 국가 대항전인 세계바둑최강전을 후원해 대회명을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으로 바꿨다. 14억 명이 보는 중국의 초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신라면 브랜드가 끊임없이 노출됐다.

미국에선 아트 마케팅으로 접근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적 아티스트 에바 알머슨과 손잡고 신라면 광고를 제작해 인기를 끌었다. 과거 농심의 히트 광고였던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콘셉트를 남동생과 여동생으로 바꿔 서로 신라면을 양보하는 상황을 구성했다. 에바 알머슨 광고는 LA, 뉴욕, 샌프란시스코의 버스 광고에도 등장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