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이 연일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쓸어담고 있다. 외국인의 계속되는 매도 물량을 개인투자자들과 함께 받아 내며 주가를 방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기금이 큰 틀에서는 시가총액 상위주 위주로 매수하면서도 업종별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들의 거래를 보면 국내 주요 업종 및 종목에 대한 투자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반등場서 2조 쏜 연기금은 뭘 담았지?
반도체와 자동차에 베팅

16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연기금은 2292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다. 올 들어 연기금이 유가증권시장에 투입한 자금은 4조3000억원에 이른다. 코스피지수가 1457.64로 저점을 찍은 지난 3월 19일 이후로는 2조1644억원 규모를 순매수했다.

연기금은 주가가 저점을 찍은 지난달 19일 이후 반등장에서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각각 5650억원, 1925억원어치 순매수했다. 하지만 시총 3~5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네이버, 셀트리온 순매수 규모는 모두 1000억원 미만에 그쳤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장기투자 관점에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을 갖춘 낙폭 과대주를 중심으로 매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기금은 오히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판매량 감소로 낙폭이 컸던 현대자동차(1270억원)와 현대모비스(838억원)를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각각 연고점 대비 27.93%, 31.97% 하락한 상태다. 김동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상반기 실적 부진 전망이 주가에 반영되면서 낙폭이 커졌지만 현대차그룹의 중장기 성장성을 고려하면 회복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반등장 속에서도 2차전지 업종과 에너지, 항공 업종은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SDI(376억원 규모 순매도) 두산솔루스(145억원) 일진머티리얼즈(119억원) 등 2차전지 관련주가 대거 매도 상위 종목에 올랐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전방산업인 전기차의 매력이 크게 희석된 상황”이라며 “2차전지 업체들의 실적 전망 역시 수요 감소를 반영해 하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직 매수 여력 충분해

시장 관심은 외국인의 국내 증시 복귀를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연기금 매수세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에 쏠려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급반등해 연기금 보유 주식 자산 가치가 단기간에 회복되지 않는다면 연기금의 매수 여력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국내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은 올해 연간 기금 운용 계획에 따라 전체 포트폴리오의 17.3%를 국내 주식에 배분할 계획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28조5000억원에 달한다. 실제 국민연금은 1월 말 기준 국내 주식 128조5920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2월 이후 코스피지수가 12.22% 하락해 평가액도 줄었다. 기금 운용 계획에 따라 17.3%를 맞추려면 그만큼 주식을 더 사야 한다. 연기금 전체의 2월 이후 순매수액은 4조원 규모라 국민연금은 아직 8조원가량 매수 여력이 있다는 게 증권업계 분석이다.

최 센터장은 “기본적으로 연기금은 각자 정해둔 자산 배분 원칙에 따라 주식 비중을 유지하는 선에서 매수와 매도를 진행한다”며 “매수 여력이 남은 만큼 3월 수준의 공격적인 투자는 아니더라도 낙폭 과대주 위주의 매수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