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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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돌아왔다. 외국인 투자자는 17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오랜만에 대규모 순매수를 기록했다. 31일(거래일) 만이다. 호재는 두 가지였다.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가능성과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TSMC가 쏘아올린 ‘반도체 낙관론’이다. 이 덕분에 하반기 정보기술(IT)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가 시장에 퍼졌다. 외국인 투자자가 이날 삼성전자(2637억원)는 물론 삼성SDI(337억원)와 삼성전기(202억원) 주식을 순매수한 것이 그 근거다. 그간 팔았던 주식을 다시 담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달 5일부터 이달 16일까지 삼성전자를 4조6583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외국인, 삼성그룹주부터 다시 담았다
하반기 IT 업황 살아나나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4.9% 뛰었다. 외국인들이 막판에 매도세로 돌아서기는 했으나 SK하이닉스 주가도 이날 3.44% 올랐다. TSMC가 발표한 1분기 실적이 투자자들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TSMC는 올 1분기 매출 12조5419억원, 영업이익 5조1897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2% 늘었고, 영업이익은 두 배에 달했다. 코로나19에도 실적은 오히려 크게 개선됐다. 7㎚(1㎚는 10억분의 1m) 이하 최신 공정으로 제품을 만드는 이 회사는 애플, 화웨이, 퀄컴, 엔비디아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TSMC는 1분기뿐만 아니라 올해 내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좋을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전체 시장은 전년과 비슷하고 파운드리업계는 7~10%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슈퍼컴퓨터(HPC) 수요가 늘고, 스마트폰 시장도 예상보다 타격을 덜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7~9% 정도만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시장에서는 20% 정도 줄어들 것으로 봤다.

스마트폰 시장을 받쳐주는 곳은 중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영향에서 벗어난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5세대(5G) 이동통신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며 “5G 스마트폰에 대한 보조금도 대거 지급할 것으로 예상돼 1분기 급격히 위축됐던 모바일 시장이 하반기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 16일 애플이 발표한 중저가 모델 아이폰SE도 성능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흥행이 예상된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삼성그룹주부터 다시 담았다
외국인은 무엇을 샀나

돌아온 외국인들은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전기, 삼성SDI 등 삼성 계열사 주식을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이 덕분에 삼성전기와 삼성SDI 주가는 각각 8.57%, 5.72% 올랐다. IT 업종의 업황 회복이 예상보다 빠를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기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카메라 모듈과 IT 기기에 전력을 공급하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가 주력 제품이다. 스마트폰 업황 부진에 대한 우려로 올해 주가가 지난달 19일 저점을 찍은 뒤 크게 반등하지 못해 상승 여력이 많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의 우려와 달리 하반기 스마트폰 시장에 대해 예상보다 긍정적인 신호가 나왔다”며 “삼성전기의 MLCC는 경기 선행 지표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상승세를 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외국인들은 삼성그룹주 외에 한진칼, LG생활건강, 네이버, LG화학 등 업종 대표 종목도 순매수했다.

전문가들은 코스피200 종목 중 외국인이 매도세를 이어간 상황에서도 보유 비중을 늘린 기업들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1월 말과 비교해 16일 기준 외국인 보유 비중이 늘어난 종목은 두산, 현대엘리베이터, SK케미칼, 남양유업, LG하우시스 등이다.

고재연/전범진/한경제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