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갭투자 손실, 세입자에게 떠넘겨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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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채 중 40채 세입자가 울며 겨자먹기 낙찰
투자손실 떠넘겼지만…檢 조사서 불기소처분
투자손실 떠넘겼지만…檢 조사서 불기소처분
한 갭투자자가 자신의 투자손실을 세입자들에게 떠넘긴 이른바 ‘동탄 고의경매’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경매를 통한 손실 전가에 대해 사실상 면죄부 준 꼴이어서 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세입자에게 40가구 떠넘겼는데…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검찰청은 경기 화성과 충남 천안 등의 세입자 10여 명이 집주인 A씨를 상대로 낸 사기와 강제집행면탈 등의 혐의에 대해 최근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세입자들은 A씨가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가족들과 허위 채무를 만든 뒤 후순위 근저당을 설정하고 집을 고의로 경매에 부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같은 혐의들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본지 2019년 4월10일자 A1면, 2018년 3월16일자 A29면 참조
사건은 2018년 초 A씨 소유의 동탄신도시 아파트 59채가 무더기로 법원경매에 나오면서 시작됐다. A씨가 전세를 끼고 1000만~2000만원을 들여 갭투자한 아파트값이 떨어지던 시점이다. 후순위로 근저당을 설정하고 경매를 신청한 채권자들은 모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장모 등 친인척이다. 근저당 설정 보름 만에 경매에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 허위 채무를 이용한 고의경매 의혹이 불거졌던 이유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며 자신에게 아파트를 살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일부 세입자들은 그에게 웃돈을 주고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매는 법원이 중지시켰다. 최우선순위 대항력을 갖춘 세입자가 있는 집에 응찰할 투자자는 없기 때문이다. 이땐 보증금보다 싸게 낙찰받더라도 그 차액을 세입자에게 보상해야 한다. 세입자가 배당받으면 채권자들이 배당받을 돈은 없기 때문에 법원이 무잉여로 기각시킨 것이다.
하지만 A씨는 결국 자신의 투자손실 대부분을 세입자들에게 떠넘기는 데 성공했다. 그가 돈이 없다고 버티자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직접 강제경매를 신청해 울며 겨자먹기로 낙찰받았기 때문이다. A씨 소유 부동산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동탄과 천안에 있는 그의 아파트와 빌라 133가구 가운데 40가구를 세입자들이 직접 낙찰받거나 매수했다. 재경매 등을 포함한 총 140건의 경매에서 제3자의 낙찰로 세입자 배당이 이뤄진 건 29건뿐이다. 아직 강제경매가 진행 중인 아파트도 8가구다.
세입자들은 A씨가 처음부터 보증금 편취 의사가 있었다고 보고 형사고소를 진행했다. 하지만 A씨는 “아파트 공급과잉 등의 문제로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맞섰다. 검찰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은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있는 세입자들은 강제경매를 통해 보증금을 반환받을 방법이 존재한다”며 “임차인들이 실제 경락을 받은 데다 임대인 또한 보증금을 편취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고의경매 의혹이 불거진 강제집행면탈 혐의에 대해서도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봤다.
◆“갭투자 출구전략 가르쳐준 꼴”
전문가들은 검찰의 결정이 아파트를 수백가구씩 굴리는 갭투자자들에게 출구전략을 만들어 준 꼴이라고 지적했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대표변호사는 “경매로 넘어간 집을 빌미로 세입자들에게 웃돈을 받고 아파트를 매각했다는 건 보증금을 돌려줄 의사가 아예 없다는 걸 보여준다”며 “세입자들이 궁여지책으로 경락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보증금 반환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한 경매전문가는 “처음부터 정상 매각을 택하지 않고 가족이 경매를 건 이유부터 짚어봐야 한다”며 “경매가 개시되면 전국에 홍보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지방에선 고의경매를 활용하는 사례가 가끔 있다”고 귀띔했다.
보증금을 떼인 세입자가 이를 돌려받으려면 사실상 강제경매를 시작하는 게 가장 빠른 절차다. 보증금반환소송을 하더라도 집주인이 재산이 없다고 버틸 수 있어서다. 그러나 애초 매수를 원치 않았던 집을 취득한다는 점에서 보증금을 보전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경매 진행과 취득 과정에서 비용도 발생한다.
A씨의 임차인이던 현모 씨는 지난해 10월 자신이 세들어 살던 집을 낙찰받은 뒤 올해 초 보증금보다 2000만원 낮은 가격에 되팔았다. A씨가 봤어야 할 손실을 현씨가 대신 본 셈이다. 이사갈 집을 미리 사뒀던 장모 씨는 A씨의 집을 떠안게 되면서 졸지에 2주택자가 됐다. 세입자들의 법률대리인인 김학무 법무법인 부원 대표변호사는 “피고인 소유 부동산에서 동일한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에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검찰의 무혐의 근거에 논리가 없다고 보고 즉각 항고했다”고 설명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세입자에게 40가구 떠넘겼는데…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검찰청은 경기 화성과 충남 천안 등의 세입자 10여 명이 집주인 A씨를 상대로 낸 사기와 강제집행면탈 등의 혐의에 대해 최근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세입자들은 A씨가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가족들과 허위 채무를 만든 뒤 후순위 근저당을 설정하고 집을 고의로 경매에 부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같은 혐의들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본지 2019년 4월10일자 A1면, 2018년 3월16일자 A29면 참조
사건은 2018년 초 A씨 소유의 동탄신도시 아파트 59채가 무더기로 법원경매에 나오면서 시작됐다. A씨가 전세를 끼고 1000만~2000만원을 들여 갭투자한 아파트값이 떨어지던 시점이다. 후순위로 근저당을 설정하고 경매를 신청한 채권자들은 모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장모 등 친인척이다. 근저당 설정 보름 만에 경매에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 허위 채무를 이용한 고의경매 의혹이 불거졌던 이유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며 자신에게 아파트를 살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일부 세입자들은 그에게 웃돈을 주고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매는 법원이 중지시켰다. 최우선순위 대항력을 갖춘 세입자가 있는 집에 응찰할 투자자는 없기 때문이다. 이땐 보증금보다 싸게 낙찰받더라도 그 차액을 세입자에게 보상해야 한다. 세입자가 배당받으면 채권자들이 배당받을 돈은 없기 때문에 법원이 무잉여로 기각시킨 것이다.
하지만 A씨는 결국 자신의 투자손실 대부분을 세입자들에게 떠넘기는 데 성공했다. 그가 돈이 없다고 버티자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직접 강제경매를 신청해 울며 겨자먹기로 낙찰받았기 때문이다. A씨 소유 부동산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동탄과 천안에 있는 그의 아파트와 빌라 133가구 가운데 40가구를 세입자들이 직접 낙찰받거나 매수했다. 재경매 등을 포함한 총 140건의 경매에서 제3자의 낙찰로 세입자 배당이 이뤄진 건 29건뿐이다. 아직 강제경매가 진행 중인 아파트도 8가구다.
세입자들은 A씨가 처음부터 보증금 편취 의사가 있었다고 보고 형사고소를 진행했다. 하지만 A씨는 “아파트 공급과잉 등의 문제로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맞섰다. 검찰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은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있는 세입자들은 강제경매를 통해 보증금을 반환받을 방법이 존재한다”며 “임차인들이 실제 경락을 받은 데다 임대인 또한 보증금을 편취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고의경매 의혹이 불거진 강제집행면탈 혐의에 대해서도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봤다.
◆“갭투자 출구전략 가르쳐준 꼴”
전문가들은 검찰의 결정이 아파트를 수백가구씩 굴리는 갭투자자들에게 출구전략을 만들어 준 꼴이라고 지적했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대표변호사는 “경매로 넘어간 집을 빌미로 세입자들에게 웃돈을 받고 아파트를 매각했다는 건 보증금을 돌려줄 의사가 아예 없다는 걸 보여준다”며 “세입자들이 궁여지책으로 경락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보증금 반환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한 경매전문가는 “처음부터 정상 매각을 택하지 않고 가족이 경매를 건 이유부터 짚어봐야 한다”며 “경매가 개시되면 전국에 홍보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지방에선 고의경매를 활용하는 사례가 가끔 있다”고 귀띔했다.
보증금을 떼인 세입자가 이를 돌려받으려면 사실상 강제경매를 시작하는 게 가장 빠른 절차다. 보증금반환소송을 하더라도 집주인이 재산이 없다고 버틸 수 있어서다. 그러나 애초 매수를 원치 않았던 집을 취득한다는 점에서 보증금을 보전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경매 진행과 취득 과정에서 비용도 발생한다.
A씨의 임차인이던 현모 씨는 지난해 10월 자신이 세들어 살던 집을 낙찰받은 뒤 올해 초 보증금보다 2000만원 낮은 가격에 되팔았다. A씨가 봤어야 할 손실을 현씨가 대신 본 셈이다. 이사갈 집을 미리 사뒀던 장모 씨는 A씨의 집을 떠안게 되면서 졸지에 2주택자가 됐다. 세입자들의 법률대리인인 김학무 법무법인 부원 대표변호사는 “피고인 소유 부동산에서 동일한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에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검찰의 무혐의 근거에 논리가 없다고 보고 즉각 항고했다”고 설명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