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보다 무서운 '슈퍼 여당'의 공약 바이러스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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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입법 공포에 떠는 기업들
각당의 공약은 총선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선거가 치뤄진 탓인지 이 인과관계를 따지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하지만 압승한 집권 여당의 총선 정책공약집이 갖는 무게감은 선거 전에 비할 바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탈(脫)원전 정책처럼 ‘슈퍼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이 지지했다는 이유로 총선 공약을 그대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당의 정책공약집은 생존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기업들이 코로나19에 버금가거나 이보다 큰 충격으로 받아들일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공정과 관련한 공약이 특히 그렇다.
‘을(乙)을 지키는 공정한 경제’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규제들로 채워져 있다. 중소기업 기술유용 방지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10배 높이고, 본사의 대리점법 위반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가맹본부에 대한 규제와 온갖 의무화 조치는 상생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다.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 규제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하는 것은 이중의 옥죄기나 다름없다. 이대로 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맹본부와 가맹점, 본사와 대리점의 적대관계가 불가피해 보인다.
‘대·중소기업간 자발적 상생협력’은 2024년까지 상생협력기금 1조원 신규 조성, 우수 상생협력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및 공정거래위원회 직권 조사 유예 등을 담고 있다. 이것이 과연 ‘자발적’ 상생협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지주회사가 최소한으로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손자회사의 주식 보유기준을 높이는 공약이 현실화하면 기업에는 또 다른 부담이요, 경영 리스크가 될 것이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및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도 도입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배임에 대한 처벌 강화 등 상법개정안 추진 또한 기업 경영에 큰 족쇄이기는 마찬가지다. 산업과 금융환경이 급변하는데도 산업자본의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규제 강화 등 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한다는 공약도 들어있다.
법원에 직접 불공정 행위의 금지·예방 조치를 위한 청구가 가능하도록 사인(私人)의 금지청구제 도입, 소비자 단체소송이 가능한 단체 확대,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 등은 소송 리스크를 높여 기업을 얼어붙게 할 것이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가맹사업법·표시광고법 등과 관련한 부당·불공정 행위에 대해 과태료 부과 등을 광역지자체로 이양하고, 가맹사업 및 대리점 부문 뿐 아니라 하도급 및 유통 부문에 시도별 분쟁조정협의회를 설치·운영한다는 공약도 다를 바 없다. 기업이 공정위로, 검찰로, 지자체로 불려다니는 동네북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공정사회에 들어있는 노동 관련 공약도 폭탄이다. 기간제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 등 정규직 고용원칙 확립, 1년 미만 근속 노동자 퇴직급여 보장 등 차별 제로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 확대 등은 고용형태 다양화 흐름과는 거꾸로 가는 공약이다. 사업 이전시 고용승계 제도화, 산재 발생 원청(도급인)·사용사용주 책임 강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추진 및 국내법 개정 공약도 상당한 혼란과 부작용을 예고한다.
슈퍼 여당 앞에서 야당은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다. 여당이 맘만 먹으면 이 모든 공약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후폭풍이다. 미국, 일본 정부는 중국 등에 나가 있는 기업들이 돌아오면 법인세 혜택을 비롯한 종래의 인센티브에 더해 이전 비용까지 100%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있는 기업들조차 떠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이 사라지면 ‘공정’도 ‘노동’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 여파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총선 후 첫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오늘이 있어야 내일이 있다”고 했다. ‘생존’이 먼저라는 얘기로 들린다. 문 대통령은 “경제 위기가 끝날 때까지 일자리 보호, 기업 보호 등 범정부적 역량을 결집하는 위기 극복체계를 구축해 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이 고용 유지 기업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한 것이 “기업=고용”이라는 인식에서 나왔다면, 경제 위기가 끝날 때까지 노동정책의 우선순위를 ‘기업 살리기’에 두는 실용적 선택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공정거래정책은 경제정책 ‘안’에 있지 ‘위’에 있지 않다. 경제 상황에 따라 실용적 판단을 하는 것이 선진국의 경쟁당국이다. 한국처럼 공정거래법을 ‘사전적으로’ 기업의 규모 및 경제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규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선진국은 없다. 선진국이 기업에 ‘자율’을 주고 ‘사후 규제’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코로나19와 달리 기업들이 우려하는 총선 공약 바이러스는 정부 여당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하다. 문 대통령은 “첫째도 둘째도 국난 극복”이라고 했다. 슈퍼 여당도 무한 책임을 느낀다면 총선 공약으로 인한 기업의 불안감이 더 퍼지기 전에 차단해야 한다. 집권 여당이 기업 살리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선언으로 ‘규제입법 공포’를 한방에 날려버리면 위기 극복에 더욱 좋을 것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
여당의 정책공약집은 생존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기업들이 코로나19에 버금가거나 이보다 큰 충격으로 받아들일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공정과 관련한 공약이 특히 그렇다.
‘을(乙)을 지키는 공정한 경제’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규제들로 채워져 있다. 중소기업 기술유용 방지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10배 높이고, 본사의 대리점법 위반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가맹본부에 대한 규제와 온갖 의무화 조치는 상생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다.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 규제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하는 것은 이중의 옥죄기나 다름없다. 이대로 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맹본부와 가맹점, 본사와 대리점의 적대관계가 불가피해 보인다.
‘대·중소기업간 자발적 상생협력’은 2024년까지 상생협력기금 1조원 신규 조성, 우수 상생협력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및 공정거래위원회 직권 조사 유예 등을 담고 있다. 이것이 과연 ‘자발적’ 상생협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지주회사가 최소한으로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손자회사의 주식 보유기준을 높이는 공약이 현실화하면 기업에는 또 다른 부담이요, 경영 리스크가 될 것이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및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도 도입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배임에 대한 처벌 강화 등 상법개정안 추진 또한 기업 경영에 큰 족쇄이기는 마찬가지다. 산업과 금융환경이 급변하는데도 산업자본의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규제 강화 등 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한다는 공약도 들어있다.
법원에 직접 불공정 행위의 금지·예방 조치를 위한 청구가 가능하도록 사인(私人)의 금지청구제 도입, 소비자 단체소송이 가능한 단체 확대,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 등은 소송 리스크를 높여 기업을 얼어붙게 할 것이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가맹사업법·표시광고법 등과 관련한 부당·불공정 행위에 대해 과태료 부과 등을 광역지자체로 이양하고, 가맹사업 및 대리점 부문 뿐 아니라 하도급 및 유통 부문에 시도별 분쟁조정협의회를 설치·운영한다는 공약도 다를 바 없다. 기업이 공정위로, 검찰로, 지자체로 불려다니는 동네북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공정사회에 들어있는 노동 관련 공약도 폭탄이다. 기간제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 등 정규직 고용원칙 확립, 1년 미만 근속 노동자 퇴직급여 보장 등 차별 제로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 확대 등은 고용형태 다양화 흐름과는 거꾸로 가는 공약이다. 사업 이전시 고용승계 제도화, 산재 발생 원청(도급인)·사용사용주 책임 강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추진 및 국내법 개정 공약도 상당한 혼란과 부작용을 예고한다.
슈퍼 여당 앞에서 야당은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다. 여당이 맘만 먹으면 이 모든 공약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후폭풍이다. 미국, 일본 정부는 중국 등에 나가 있는 기업들이 돌아오면 법인세 혜택을 비롯한 종래의 인센티브에 더해 이전 비용까지 100%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있는 기업들조차 떠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이 사라지면 ‘공정’도 ‘노동’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 여파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총선 후 첫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오늘이 있어야 내일이 있다”고 했다. ‘생존’이 먼저라는 얘기로 들린다. 문 대통령은 “경제 위기가 끝날 때까지 일자리 보호, 기업 보호 등 범정부적 역량을 결집하는 위기 극복체계를 구축해 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이 고용 유지 기업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한 것이 “기업=고용”이라는 인식에서 나왔다면, 경제 위기가 끝날 때까지 노동정책의 우선순위를 ‘기업 살리기’에 두는 실용적 선택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공정거래정책은 경제정책 ‘안’에 있지 ‘위’에 있지 않다. 경제 상황에 따라 실용적 판단을 하는 것이 선진국의 경쟁당국이다. 한국처럼 공정거래법을 ‘사전적으로’ 기업의 규모 및 경제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규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선진국은 없다. 선진국이 기업에 ‘자율’을 주고 ‘사후 규제’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코로나19와 달리 기업들이 우려하는 총선 공약 바이러스는 정부 여당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하다. 문 대통령은 “첫째도 둘째도 국난 극복”이라고 했다. 슈퍼 여당도 무한 책임을 느낀다면 총선 공약으로 인한 기업의 불안감이 더 퍼지기 전에 차단해야 한다. 집권 여당이 기업 살리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선언으로 ‘규제입법 공포’를 한방에 날려버리면 위기 극복에 더욱 좋을 것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