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폭압에 항거한 언론인 1천여명 쫓겨나…"광주항쟁의 하나로 받아들여져야"

[당신의 5·18] "기자로서 떳떳했다" 해직언론인 고승우씨
"언론인들의 투쟁을 광주항쟁에서 제외한 것 역시 역사 왜곡 행위이며 이를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5·18 전체에 대한 왜곡과 폄훼도 사라집니다"
40년 전 5·18 당시 모든 언론인이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했다는 것은 5·18과 관련해 잘못 알려진 사실 가운데 하나다.

신군부의 5·18 광주에 대한 보도 통제와 검열, 조작과 왜곡에 맞서다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는 등의 고초를 당한 해직언론인들은 확인된 것만 1천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의 투쟁은 광주민주화운동의 하나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84년 3월 결성된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는 이들 언론인이 모여 만든 단체로, 협의회 상임대표를 맡은 고승우씨의 바람도 거기에 맺혀 있다.

고씨는 "해직되고 고통을 겪었던 이유가 5·18의 진실을 알리려 했기 때문인데 우리는 여전히 5·18과 떨어져 있다"며 "정권이 바뀌고 관련 법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데 왜 우리 해직언론인은 아직까지 소외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1979년 10·26 사태 직후 계엄을 선포하고 언론 사전검열을 시작한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광주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군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참극이 발생했다.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으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뉴스통신사였던 합동통신 소속 기자로 서울시청을 출입하고 있던 고씨는 '광주 기사'를 현지에서 팩스 등으로 받아 계엄사령부의 검열을 받는 업무를 맡았다.

[당신의 5·18] "기자로서 떳떳했다" 해직언론인 고승우씨
고씨는 "'광주 기사'는 모든 것이 다 금지됐고 계엄사령부에서 내려온 보도지침에 따른 기사들만 보낼 수 있었다"며 "광주의 참상과 다른 기사를 써야 하는 것에 대해 기자들의 반발이 거셌다"고 회상했다.

신군부의 기사 검열에 저항하던 기자들은 1980년 5월 16일 기자협회 차원에서 회의를 열어 5월 20일 오전 0시부터 검열을 거부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1980년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기자들의 제작 거부가 이어지자 언론사가 밀집한 서울 광화문에 장갑차가 배치됐고 신군부는 언론사 사장단을 소집해 위협했다.

신군부는 악성 유언비어를 유포한다며 현직 언론인들을 연행하고 언론사 자체 정화 결의도 강요했다.

언론 대책반을 만들어 반체제 인사, 용공 또는 불순한 자, 이들에 동조한 자, 검열 거부를 주동하고 동조한 자 등을 해직 대상으로 선정했다.

보도 검열 철폐를 요구한 기자협회 집행부는 남영동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정부가 직접 정화 대상으로 선정한 298명, 언론사가 직접 선정한 635명이 해직됐다.

같은 해 언론 통폐합으로 3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추가로 해직됐다.

고씨는 "신군부는 해고된 언론인 1천여명을 세 등급으로 분류해 일부는 취재 업무에 아예 복귀하지 못하도록 했고, 일부는 기업체 취업을 허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해직 기자들이 뭉치지 못하도록 방해 공작을 했다"고 전했다.

해직 언론인들은 신군부의 폭압 가운데에도 1984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와 '해직언론인투쟁위원회'를 꾸려 복직을 요구하며 출판물 규제·폐간 등에 저항했다.

[당신의 5·18] "기자로서 떳떳했다" 해직언론인 고승우씨
세월이 흐르면서 5·18의 진상이 조금씩 알려졌을 때도 언론인들의 투쟁은 좀처럼 주목받지 못했다.

정부의 과거사 조사로 뒤늦게 신군부의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이 조명받았지만, 평생을 해직 기자로 산 이들에 대한 배상은커녕 명예회복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5·18 당시 비겁하게 정부의 나팔수 노릇만 했다는 언론 전체에 대한 불명예도 여전히 그대로다.

고씨 등은 이 같은 역사 왜곡을 바로잡으려면 해직언론인들을 5·18 관련자로 인정하고 공식기록에도 자신들의 투쟁을 담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5·18의 전국화·세계화를 위해서도 5월 관련 단체나 정치권 등에서 1980년 당시 전국 각지에서 있었던 5·18 민주화운동 지지 움직임을 찾아내 품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고씨는 "내 나이 70대 중반인데 협의회에서 가장 젊을 정도로 다른 기자들은 이미 노쇠하고 돌아가시기도 했다"며 "다들 무엇보다 기자로서 떳떳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함께 투쟁했던 동료·선배들이 생을 마감하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흐려지기도 했지만 고씨는 "더 늦기 전에 해직언론인들을 5·18 관련자로 규정하고, 신군부의 5·18 당시 언론탄압의 진상을 규명해 책임자 처벌과 국가 차원의 사과와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