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코로나 핑계로 숙원사업 요구하는 민주노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고용대란이 현실화됐다. 통계청이 지난 17일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9만5000명 감소했고, 해고 가능성이 높은 일시 휴직자는 160만7000명으로 사상 최대였다.

같은 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제주체들이 합심해 위기를 극복했던 1998년 외환위기, 2004년 카드대란, 2009년 금융위기 때가 떠올랐다. 기자회견 예고를 접하고 과거 위기 때마다 노사가 대타협을 통해 위기를 함께 헤쳐나갔던 것처럼 이번 코로나19 위기도 그렇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기자회견장에서 민주노총의 요구 사항을 듣고는 기대가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민주노총은 해고를 전면 금지하자고 주장하면서 금융지원 관련 요구에 정부의 금융지원을 받은 기업은 자사주 매입과 주주 배당을 금지하고, 금융지원액 상환 이후 2년간은 외주화를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과 민주노총이 과거부터 요구해오던 ‘숙원사업’을 교묘하게 엮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세부안을 보면서 당혹감은 더 커졌다. 소득세 최고 구간을 신설하는 부유세 도입, 특수고용직 종사자 등의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노조법 2조 개정,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자는 근로기준법 11조 개정 등이다. 역시 오래전부터 민주노총이 주장해온 내용이다.

현장에선 ‘경영계가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업활동을 옥죄려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지만 재계와 경영계에선 ‘위기 상황에 맞지 않고, 또 상식적이지도 않은 제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영계도 ‘코로나19를 이용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23일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라며 국회에 코로나19와 무관한 상속세 인하 등을 요구해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노사가 대결 구도로 치닫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산업현장은 물론 생업 전선에 있는 국민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얻어낼 것은 더 얻어내자는 식의 접근은 곤란하다. 지금 필요한 건 코로나 문제에 국한된 한시적 대책”(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이라는 지적을 노사가 모두 경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