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5월물 '사자' 실종, 하루 40% 폭락…"WTI 10弗 붕괴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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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I 가격 장중 11달러 아래로…21년 만에 처음
OPEC+ '원유 감산' 합의에도
수요 감소폭 따라가기엔 역부족
OPEC+ '원유 감산' 합의에도
수요 감소폭 따라가기엔 역부족
“그야말로 ‘검은 4월’이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이 최근 원유시장을 두고 한 얘기다. 1929년 대공황 당시 주식시장이 폭락한 ‘검은 월요일’에 원유시장을 빗댔다.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 추이만 보면 비롤의 말대로 대공황이 따로 없다. 미국 동부시간으로 20일 오전 9시17분께 5월 인도분 WTI 가격은 40.45% 폭락해 배럴당 10.88달러까지 떨어졌다. 이후 소폭 반등해 11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OPEC+ 감산도 소용 없어
지난 12일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 모임(OPEC+)이 감산을 합의한 이후에도 국제 유가는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OPEC+는 다음달부터 하루 평균 97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했다. 여기에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 3개국이 OPEC+ 합의와 별도로 총 200만 배럴을 더 감산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세계 원유 수요가 크게 줄어든 만큼 공급을 줄여 수급 균형을 맞추겠다는 조치다. 미국 내에서도 일부 기업이 생산량을 감축했다.
하지만 이 정도 공급 감소가 수요 감소분을 상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IEA는 이달 원유 수요 감소폭이 하루 290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작년 세계 하루 석유 수요량(약 1억 배럴)의 29%다. S&P플래츠는 “OPEC+와 미국 기업들이 감산해도 잉여 원유가 하루평균 1000만~1500만 배럴”이라고 지적했다.
“美 재고 창고 동난다”…슈퍼 콘탱고 발생
WTI 가격이 폭락한 이유는 또 있다. 미국 내 원유 재고가 폭증하면서 재고를 쌓아둘 창고가 동날 지경이라서다. 이 때문에 이달 인도받는 근월물보다 다음달 이후에 인도받는 원월물 가격이 훨씬 높아진 ‘슈퍼 콘탱고’ 현상이 발생했다. 이날 6월 인도분 WTI 가격은 5월 인도분에 비해 약 10달러 높은 배럴당 22달러 선에 손바뀜됐다. 투자은행 UBS의 조반니 슈투노버 애널리스트는 “5월물은 당장 붙는 재고 비용 부담이 있어 6월물에 비해 거래 가격이 낮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곧 만기가 돌아오는 계약이라는 이유만으로 가격이 내린 게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 에너지업계에선 4~8주 내에 재고를 쌓아둘 곳이 없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IEA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이후 미국 원유창고 허브격인 쿠싱지대 원유 비축량은 48% 급증했다. 지난 16일까지 쌓인 원유 재고량은 3억7500만 배럴이다. IEA는 미국 내 원유 저장용량을 6억5300만 배럴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100% 다 재고로 채울 수는 없다. 상당수 창고는 선적·혼합 등 작업에 써야 해서다. 둘 데가 없어 원유를 버리게 생겼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투자기업 어게인캐피털의 존 킬더프 창립이사는 “한 에너지기업은 옛 천연가스 시추홀에 원유를 담는 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며 “수영장에라도 원유를 넣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6월물 가격도 내릴 것”
전문가들은 22일부터 WTI 거래 기준이 되는 6월물 가격도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요 회복이 요원해서다. 블룸버그통신은 “다음달부터 OPEC+ 등이 전면 감산에 나서더라도 2분기 동안 하루평균 1770만 배럴 원유 재고가 쌓인다”며 “6월 말까지 16억 배럴 규모의 원유 저장공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IEA는 5월과 6월 원유 수요가 각각 하루평균 2600만 배럴, 150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달 수요 감소폭은 미국과 캐나다 전체 소비량을 웃돈다. IEA는 “어떤 감산 합의로도 이 정도 수요 손실을 상쇄할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원자재 연구원인 폴 호스텔은 “가격 폭락엔 한계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타일러 리치 세븐스리포트리서치 공동편집자는 “석유 소비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유가가 오르기 힘들다”고 말했다. 로버트 레니 웨스트팩 글로벌시장전략팀장은 “6월물 WTI도 20달러 이하로 끌려갈 위험이 크다”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OPEC+ 감산도 소용 없어
지난 12일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 모임(OPEC+)이 감산을 합의한 이후에도 국제 유가는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OPEC+는 다음달부터 하루 평균 97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했다. 여기에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 3개국이 OPEC+ 합의와 별도로 총 200만 배럴을 더 감산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세계 원유 수요가 크게 줄어든 만큼 공급을 줄여 수급 균형을 맞추겠다는 조치다. 미국 내에서도 일부 기업이 생산량을 감축했다.
하지만 이 정도 공급 감소가 수요 감소분을 상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IEA는 이달 원유 수요 감소폭이 하루 290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작년 세계 하루 석유 수요량(약 1억 배럴)의 29%다. S&P플래츠는 “OPEC+와 미국 기업들이 감산해도 잉여 원유가 하루평균 1000만~1500만 배럴”이라고 지적했다.
“美 재고 창고 동난다”…슈퍼 콘탱고 발생
WTI 가격이 폭락한 이유는 또 있다. 미국 내 원유 재고가 폭증하면서 재고를 쌓아둘 창고가 동날 지경이라서다. 이 때문에 이달 인도받는 근월물보다 다음달 이후에 인도받는 원월물 가격이 훨씬 높아진 ‘슈퍼 콘탱고’ 현상이 발생했다. 이날 6월 인도분 WTI 가격은 5월 인도분에 비해 약 10달러 높은 배럴당 22달러 선에 손바뀜됐다. 투자은행 UBS의 조반니 슈투노버 애널리스트는 “5월물은 당장 붙는 재고 비용 부담이 있어 6월물에 비해 거래 가격이 낮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곧 만기가 돌아오는 계약이라는 이유만으로 가격이 내린 게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 에너지업계에선 4~8주 내에 재고를 쌓아둘 곳이 없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IEA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이후 미국 원유창고 허브격인 쿠싱지대 원유 비축량은 48% 급증했다. 지난 16일까지 쌓인 원유 재고량은 3억7500만 배럴이다. IEA는 미국 내 원유 저장용량을 6억5300만 배럴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100% 다 재고로 채울 수는 없다. 상당수 창고는 선적·혼합 등 작업에 써야 해서다. 둘 데가 없어 원유를 버리게 생겼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투자기업 어게인캐피털의 존 킬더프 창립이사는 “한 에너지기업은 옛 천연가스 시추홀에 원유를 담는 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며 “수영장에라도 원유를 넣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6월물 가격도 내릴 것”
전문가들은 22일부터 WTI 거래 기준이 되는 6월물 가격도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요 회복이 요원해서다. 블룸버그통신은 “다음달부터 OPEC+ 등이 전면 감산에 나서더라도 2분기 동안 하루평균 1770만 배럴 원유 재고가 쌓인다”며 “6월 말까지 16억 배럴 규모의 원유 저장공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IEA는 5월과 6월 원유 수요가 각각 하루평균 2600만 배럴, 150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달 수요 감소폭은 미국과 캐나다 전체 소비량을 웃돈다. IEA는 “어떤 감산 합의로도 이 정도 수요 손실을 상쇄할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원자재 연구원인 폴 호스텔은 “가격 폭락엔 한계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타일러 리치 세븐스리포트리서치 공동편집자는 “석유 소비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유가가 오르기 힘들다”고 말했다. 로버트 레니 웨스트팩 글로벌시장전략팀장은 “6월물 WTI도 20달러 이하로 끌려갈 위험이 크다”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