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에세이를 쓰면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박영석 < 자본시장연구원장 yspark@kcmi.re.kr >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30년이 돼간다. 세월이 가면서 내가 몸담았던 대학, 활동했던 학회와 연구원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럴 때면 마음에 새겼던 기도문이 있다. “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심과, 할 수 있는 것을 추진할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해낼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평온을 비는 기도문이다. 믿음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도 이 구절을 찾았다.
2월 말에 한경에세이 필진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논문이나 시론도 아니고 전혀 써보지 않았던 에세이라니. 아무래도 어려울 듯했다. 니버의 기도문을 생각하며 지혜를 구했다. 고민하던 중 몇 달 전 대학 동기 A가 보낸 문자가 문득 생각났다. “신문에서 네 칼럼을 가끔 읽어. 그런데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시론은 딱딱해서 끝까지 안 읽어. 너도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 인생, 자연, 사랑, 이런 것들에 관해서 써봐라.” 용기를 내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에세이 쓰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초안은 자꾸 내 주장을 하며 가르치려는 논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론으로 흘러갔다. 에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쓰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을 하고 나면 도로 시론이 되곤 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에세이 글감을 찾으며 오래전에 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존 키팅 선생님의 유명한 말이 생각났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이 모두가 고귀한 것이고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목적이다.” 젊었을 때는 이 말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공부를 하고 커리어를 쌓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고 시간은 내게 여유를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는 삶을 유지하는 데만 온 힘을 쏟아왔고, 그러면 성공한 인생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글도 생업을 유지하는 전공에 관한 글만 써왔다. 진정 중요한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내 마음속에 설 자리를 찾지 못했다.
지난 세월을 길었던 전반이라고 생각하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에세이를 썼던 요즈음은 하프타임이다. 많은 경기에서 승패는 하프타임을 얼마나 잘 사용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늦었지만 삶의 유지와 삶의 목적, 이 둘을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진다. 전반보다는 짧게 남아있는 후반엔 그간 잊고 지낸 삶의 의미를 찾아 인생의 문을 활짝 열어 보고 싶다.
2월 말에 한경에세이 필진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논문이나 시론도 아니고 전혀 써보지 않았던 에세이라니. 아무래도 어려울 듯했다. 니버의 기도문을 생각하며 지혜를 구했다. 고민하던 중 몇 달 전 대학 동기 A가 보낸 문자가 문득 생각났다. “신문에서 네 칼럼을 가끔 읽어. 그런데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시론은 딱딱해서 끝까지 안 읽어. 너도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 인생, 자연, 사랑, 이런 것들에 관해서 써봐라.” 용기를 내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에세이 쓰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초안은 자꾸 내 주장을 하며 가르치려는 논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론으로 흘러갔다. 에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쓰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을 하고 나면 도로 시론이 되곤 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에세이 글감을 찾으며 오래전에 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존 키팅 선생님의 유명한 말이 생각났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이 모두가 고귀한 것이고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목적이다.” 젊었을 때는 이 말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공부를 하고 커리어를 쌓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고 시간은 내게 여유를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는 삶을 유지하는 데만 온 힘을 쏟아왔고, 그러면 성공한 인생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글도 생업을 유지하는 전공에 관한 글만 써왔다. 진정 중요한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내 마음속에 설 자리를 찾지 못했다.
지난 세월을 길었던 전반이라고 생각하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에세이를 썼던 요즈음은 하프타임이다. 많은 경기에서 승패는 하프타임을 얼마나 잘 사용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늦었지만 삶의 유지와 삶의 목적, 이 둘을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진다. 전반보다는 짧게 남아있는 후반엔 그간 잊고 지낸 삶의 의미를 찾아 인생의 문을 활짝 열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