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 취임 이후 10년간 ‘아베노믹스’로 상징되는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지만 일본 경제는 만성적인 저물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금융회사의 신용위험만 높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경제가 일본식 장기침체에 빠지는 ‘일본화(Japanification)’에 신음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무제한 양적완화 10년…'저물가 탈출' 실패한 日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오는 27~28일 금융정책결정회의 이후 발표할 경제·물가정세 전망보고서에서 올해 물가상승률 예상치를 마이너스로, 2021년과 2022년은 목표치인 2%에 미달하는 예상치를 제시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2일 보도했다. 이번 보고서는 특히 2022년 전망치가 처음 제시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아베 총리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한 지 10년째인 해가 2022년이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의 경기 판단대로라면 아베 총리가 만성적인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과 엔고 현상을 깨뜨리기 위해 10년 동안 추진한 아베노믹스도 물가 측면에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면치 못하게 됐다. 구로다 총재는 2013년 취임 후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의 ‘이차원(異次原) 완화정책’을 밀어붙였지만 물가는 2014년 한 차례 2.7%를 찍었을 뿐 이후 한 번도 2%를 넘지 않았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한 2016년에는 마이너스(-0.1%)를 기록하기도 했다.

구로다 총재의 이차원 완화정책은 저물가를 잡는 대신 금융회사들의 신용위험만 높이고 있다. 일본은행은 전날 발간한 금융시스템리포트를 통해 일본 은행권이 보유한 외화표시 채권의 40%가 투자적격등급 채권 가운데 최하등급인 ‘BBB’ 등급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글로벌 경기 악화로 보유채권이 투기등급인 ‘BB’ 등급으로 떨어지면 수익원이었던 자산이 한순간에 부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 금융회사들이 해외 자산을 늘린 건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일본 국채 수익률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 은행들의 외화표시채권 보유 규모는 50조엔(약 574조원)을 넘는다. 코로나19 이후 미국 회사채 시장에서는 투자등급에서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떨어지는 ‘타락 천사(fallen angel) 채권’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최근 수년간 ‘BBB’ 채권을 주로 발행한 기업은 원유값 폭락으로 신음하는 미국 에너지 회사들이기 때문에 주요 투자자인 일본 금융권이 긴장하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