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새 8번째' 통합당 비대위 잔혹사…이번엔 성공할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외부인사 비대위 성공확률 낮아…인명진 "위기모면용일 뿐" 쓴소리
김종인, 민주 이어 통합당 비대위까지…전권받아 쇄신 칼 꺼내들지 주목
미래통합당이 22일 총선 참패로 중대 위기에 봉착한 당을 수습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을 결정했다.
최근 10년 사이 8번째 비대위다.
통합당은 한나라당 시절인 2010년 김무성 비대위를 시작으로, 2011년 정의화 비대위, 2012년 박근혜 비대위, 2014년 이완구 비대위, 2016년 김희옥 비대위, 2016년 말 인명진 비대위, 2018년 김병준 비대위 등 7번의 비대위 체제를 거쳤다. 평균 15개월 만에 한 번씩 비대위를 세운 셈이다.
2016년에는 6월과 12월 두 차례 비대위를 경험하기도 했다.
역대 비대위 체제에 대해선 결과적으로 성공보다 실패가 많다는 평이 우세하다.
특히 외부에서 영입된 비대위원장의 경우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임기를 마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희옥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꾸렸던 2016년 6월의 비대위는 두 달여 활동한 뒤 친박 핵심인 이정현 전 대표에게 당권을 넘겨줘 오히려 주류 진영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인명진 비대위'의 경우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핵심의원의 당원권을 정지했고, 당명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다.
그러나 당내 기반이 부족했던 탓에 친박계의 강력한 저항을 뚫지 못해 혁신 작업이 미완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명진 목사는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통합당의 비대위 체제에 대해 "위기모면용이지, 제대로 혁신하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자신이 비대위를 맡았을 당시 상황에 대해 "당을 수습하고 전당대회 열고 대통령 후보를 뽑는데 딱 100일이 걸렸는데 (끝나고 나니) 나보고 나가라고 하더라. 언제 떠나냐고 하더라. 김병준씨도 나중에는 밀려나다시피 해서 떠났다"고 회고했다. 물론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인적 교체에 성공해 총선 승리를 거둔 사례도 있다.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성공에 힘입어 당내 입지를 확고히 다지면서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박근혜 비대위'의 성공은 당시 이미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 위원장의 정치적 입지에 공천권까지 갖고 사실상 전권을 휘둘렀기에 가능했다는 평이 나온다.
통합당이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는 김종인 전 통합당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제한이 없는 임기'와 '전권'을 전제로 통합당 비대위원장직을 고민해보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과 닿아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미 2012년 한나라당 비대위 위원을 지냈고 같은 해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진두지휘한 경험이 있다.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으로 건너가 비대위 대표를 맡았다.
각기 다른 상황과 정당에서 다양한 비대위를 경험하면서 비대위 체제의 역할과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임기 제한이나 당헌·당규에 얽매여서는 쇄신에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합당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모처에서 김 전 위원장을 만나 비대위원장직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김 전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면 통합당은 전국위원회를 열어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확정하고, 권한대행 체제의 현 지도부는 사퇴한다.
차기 원내대표는 여야의 21대 국회 원 구성 협상 시한을 고려해 다음 달 초순께 선출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김종인, 민주 이어 통합당 비대위까지…전권받아 쇄신 칼 꺼내들지 주목
미래통합당이 22일 총선 참패로 중대 위기에 봉착한 당을 수습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을 결정했다.
최근 10년 사이 8번째 비대위다.
통합당은 한나라당 시절인 2010년 김무성 비대위를 시작으로, 2011년 정의화 비대위, 2012년 박근혜 비대위, 2014년 이완구 비대위, 2016년 김희옥 비대위, 2016년 말 인명진 비대위, 2018년 김병준 비대위 등 7번의 비대위 체제를 거쳤다. 평균 15개월 만에 한 번씩 비대위를 세운 셈이다.
2016년에는 6월과 12월 두 차례 비대위를 경험하기도 했다.
역대 비대위 체제에 대해선 결과적으로 성공보다 실패가 많다는 평이 우세하다.
특히 외부에서 영입된 비대위원장의 경우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임기를 마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희옥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꾸렸던 2016년 6월의 비대위는 두 달여 활동한 뒤 친박 핵심인 이정현 전 대표에게 당권을 넘겨줘 오히려 주류 진영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인명진 비대위'의 경우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핵심의원의 당원권을 정지했고, 당명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다.
그러나 당내 기반이 부족했던 탓에 친박계의 강력한 저항을 뚫지 못해 혁신 작업이 미완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명진 목사는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통합당의 비대위 체제에 대해 "위기모면용이지, 제대로 혁신하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자신이 비대위를 맡았을 당시 상황에 대해 "당을 수습하고 전당대회 열고 대통령 후보를 뽑는데 딱 100일이 걸렸는데 (끝나고 나니) 나보고 나가라고 하더라. 언제 떠나냐고 하더라. 김병준씨도 나중에는 밀려나다시피 해서 떠났다"고 회고했다. 물론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인적 교체에 성공해 총선 승리를 거둔 사례도 있다.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성공에 힘입어 당내 입지를 확고히 다지면서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박근혜 비대위'의 성공은 당시 이미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 위원장의 정치적 입지에 공천권까지 갖고 사실상 전권을 휘둘렀기에 가능했다는 평이 나온다.
통합당이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는 김종인 전 통합당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제한이 없는 임기'와 '전권'을 전제로 통합당 비대위원장직을 고민해보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과 닿아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미 2012년 한나라당 비대위 위원을 지냈고 같은 해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진두지휘한 경험이 있다.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으로 건너가 비대위 대표를 맡았다.
각기 다른 상황과 정당에서 다양한 비대위를 경험하면서 비대위 체제의 역할과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임기 제한이나 당헌·당규에 얽매여서는 쇄신에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합당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모처에서 김 전 위원장을 만나 비대위원장직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김 전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면 통합당은 전국위원회를 열어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확정하고, 권한대행 체제의 현 지도부는 사퇴한다.
차기 원내대표는 여야의 21대 국회 원 구성 협상 시한을 고려해 다음 달 초순께 선출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