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6월물 가격도 마이너스로 갈 것.”(스탠다드차타드), “앞으로 몇 차례 마이너스 유가가 나와도 놀랍지 않다.”(선물중개업체 ONADA)

국제 유가가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사태를 기록하면서 시장의 혼란이 계속 커지고 있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배럴당 -38달러까지 떨어졌던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 인도분은 최종 거래일인 21일(현지시간) 9달러대에서 마감했다. 21일 청산한 5월물을 대신해 새로 기준점이 된 WTI 6월물은 배럴당 13달러대에서 거래를 시작했지만 22일 한때 10.26달러로 밀렸다가 반등하는 등 혼조세였다. 마이너스 가격을 벗어나긴 했지만 중동과 러시아를 제외한 대부분 산유국이 채굴 비용도 못 맞추는 수준이다.
브렌트油도 한때 10弗대 추락…"추가감산 없으면 또 마이너스 유가"
WTI 6월물도 마이너스 갈 듯

전문가들은 유가 하락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로 대표되는 산유국 간 ‘유가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수요가 급감하고 있어서다. 수지타산을 맞추지 못하는 미국 셰일오일업체의 대규모 도산이 금융시장 경색과 실물경제 하강 그리고 유가 추가 하락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22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60척 이상의 대형 유조선이 최소 1억6000만 배럴(1배럴은 158.9L)의 원유를 실은 채 바다 위를 떠돌고 있다. 원유 정제시설이 코로나19로 가동을 중단했거나 정제유 판매처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상 유조선의 저유량은 지난 2월 초 2000만 배럴에서 여덟 배 이상 뛰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에도 해상 유조선 재고는 1억 배럴 내외였다.

금융회사 BTIG의 해운애널리스트인 그레고리 루이스는 “과거 경기 침체기에도 유조선이 원유 저장 창고로 쓰인 적은 없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향후 수개월 동안 100여 척의 초대형 유조선이 2억 배럴 이상의 원유 저장고로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원유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현재의 유가 하락은 글로벌 경기 난기류를 보여주는 단면일 뿐”이라며 “WTI 6월물도 만기(5월 19일)가 다가오면서 가격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추가 감산 없이는 유가 하락 추세를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등에 따르면 글로벌 원유 수요는 지난해 하루 1억 배럴 수준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주요국이 경제 활동을 중단한 데 따른 여파로 올해는 연간 수요가 하루 8000만 배럴로 떨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회의인 OPEC+는 다음달부터 하루 970만 배럴 감산에만 합의한 상태다.

추가 감산 없으면 글로벌 디플레 우려

노르웨이 석유정보업체 리스타드에너지는 “올해 말까지 산유국들이 추가로 하루 600만~700만 배럴을 감산해야 글로벌 수요 감소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하지만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합의가 제대로 이행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정치경제 컨설팅업체인 TS롬바드는 “미국의 셰일오일 기업들이 현재 유가 상황을 고려하면 생산을 멈춰야 하지만, 한 번 생산을 중단하면 재가동할 때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고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셰일업체들이 무리하게 저가 생산을 강행하면서 유가를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진단이다.

저유가 여파는 장기적으로 글로벌 불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촉발한 경기 하강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1차적으로 미국 셰일기업들이 저유가를 못 이기고 파산하기 시작하면 그 부담은 금융회사들로 전이될 수 있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이 촉발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금융경색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사태가 재연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적어도 올해 안에는 원유 수요가 회복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과 유럽에서 경제활동을 재개한다 해도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찾고 소비를 재개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