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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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믿을건 금'이라는 말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큼지막한 해설 기사가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금의 장점을 소개하는 방송프로도 잣다.코로나 쇼크가 부른 극심한 경기침체와 금융·자산시장 대혼란 속에서도 가격 급등과 거래급증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1년전 이맘때 트로이온스당 1200달러대이던 금값은 지금 1700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다. 1년 상승률이 40%다. 거래도 크게 늘었다.한국거래소가 운영하는 KRX금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지난해 44kg에서 올들어 92kg으로 2배 넘게 늘었다. 2018년의 20kg과 비교하면 5배에 육박한다.

◆양적완화가 밀어올리는 '금 값'

금은 참 묘한 재화다. 화려함과 희소성 덕분에 '금=돈'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다. 안전자산의 상징으로 불린다. 하지만 막상 꼽아보면 쓸모가 그리 많지 않다. 본질적인 가치를 매기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금을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오랜 믿음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이즈음 금의 강세가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코로나 극복을 위해 동시다발적인 완화적 통화정책에 돌입한 덕분이다. 완화 정책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면 금을 통해 헤징(가격 변동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금융거래) 수요가 늘수 밖에 없다. 또 풀린 돈은 '돈 값'을 떨어뜨려 금값을 밀어올릴 것이란 기대도 커진다.

많이 올랐지만 금값 강세가 더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투자포트폴리오의 일정비중을 무조건 금으로 채워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진지한 조언도 넘친다. 영국 런던 소재 귀금속 전문컨설팅회사인 메털포커스의 니코스 카발리스 파트너는 엊그제 한경 인터뷰에서 "올 연말까지 추가상승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이 공격적인 유동성 공급조치를 취하고 있는 점이 호재”라는 설명이다.

◆'작은 위기'에 강하지만 '큰 위기'에는 약한 금

일견 상승세인 금값의 추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보면 '금은 안전자산'이라는 고정관념과는 상당히 다른 움직임을 발견하게 된다. 코로나 사태 초기인 1~2월 금 가격은 수직상승세였지만, 혼란이 극에 달한 3월에는 오히려 급락세를 보였다. 1700달러까지 치솟았던 금값은 3월 들어 불과 한두주새 1400달러대로 추락했다. 위기에서 결코 안전하지 않은 자산이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금을 팔아 '초(超) 안전자산' 달러를 사는 자금시장 흐름도 뚜렷했다. 돈이 풀려 약세가 불가피할 것이라던 달러에 일방적으로 밀렸다. '작은 위기'에는 강하지만 '큰 위기'에는 약한 금의 한계를 보여준 셈이다. 이런 현상은 이번에 처음 나타난 게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금 값은 추락했다. 2018년 터키발() 리스크가 급속확산돼 신흥국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됐을 때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예전 같으면 경제위기 조짐이 보이면 으레 가격이 올랐지만 근래에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굳이 지칭하자면 완전히 안전한 '안전(全) 자산'이라기 보다 절반 정도 안전한 '안반(半)자산'이라고 해야 할까.

◆금은 안전자산이라기보다 변동성 큰 자산

코로나 사태는 질서의 파괴자다. 원유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혁명적 변화를 불렀다. 금도 이제 자신의 존재가치를 다시 입증해야 할 처지다.

금 투자시에는 안전성보다 변동성을 더 주목해야 한다. 현재 금 시세는 2015년에 비해 70% 가량 급등했지만 여전히 2011년의 전고점(1800달러대)에는 크게 못 미친다. 최근 40년간 금값 그래프를 보면 반토막과 수백% 급등이 예사다. 현기증이 날 정도의 가격등락은 금이 본질적으로 투기적 상품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금은 공급은 제한적인 반면 수요가 가격을 결정하는 전형적인 '수요 주도시장'이다. 금 수요는 크게 산업용과 투자용으로 나뉜다.전자제품, 치과용품 등의 산업용 수요는 정체상태다. 지난해 산업용 수요는 2% 줄었다. 반면 상장지수펀드(ETF)를 중심으로 투자용 수요는 9% 늘었다. 이에 따라 작년 한해 전체 수요는 4356t으로 한해(4401t)보다 소폭 감소했다.

◆국제경제·정치 공부해야 금투자 성공

금은 정치적인 재화라는 점도 변동성 확대의 요인이다. 각국 중앙은행의 준비자산 수요가 금시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약 19만t의 전 세계 금 총량중 3만2000t 가량을 중앙은행이 보유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5~6년 전부는 '닥치고 매수'중이다. 러시아의 금보유량은 2014년에 171t에서 지난해 2230t으로 급증했다. 중국 인민은행도 비슷한 행보다. 미국의 경제제재로부터 벗어나고 탈(脫)달러 통화패권전쟁을 수행중이라는 평가다.

이같은 금의 정치성은 가치평가에서도 극단적인 견해로 이어진다. 1971년 ‘닉슨 쇼크’로 금본위제가 무너졌건만 당면한 국제금융질서의 난맥상을 풀자면 금본위제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다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앨런 그런스펀 전 연준의장도 한 때 금본위제를 지지했다. 반면 워런 버핏에게 금은 투자부적격 자산일 뿐이다. 배당이나 쿠폰이 지급되지 않는 자산이어서 내재가치를 알 수 없고 현금흐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금은 이자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실물자산이다. 금 보유자에게 실질금리는 그대로 기회비용이다. 결론은? 금투자에 성공하려면 먼저 국제정치와 국제경제에 팔방미인이 돼야 한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