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 낸 '불역유행'서 주장
올해 창업 110주년을 맞은 사누키면기의 오카하라 유지 회장(사진)은 지난 1월 사비로 낸 저서 《불역유행(不易流行·본질은 변하지 않는다)》을 통해 “무로마치시대(1336~1573년)에서 에도시대(1603~1867년)에 걸쳐 한반도에서 건너온 면요리가 우동의 원형”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우동은 구카이(空海·774~835년)라는 승려가 1200년 전 중국에서 제조법을 배워왔다는 중국전래설이 주류였다. 사누키우동이 일본 우동의 원조로 인정받는 이유도 홍법대사라는 법명으로 진언종을 창시한 구카이의 고향이 사누키(현 가가와현)이기 때문으로 여겨졌다.
이에 대해 오카하라 회장은 “구카이가 활약했던 헤이안시대(794~1185년) 초기 일본에는 우동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금과 밀가루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며 “소금을 양산한 건 에도시대부터”라고 반박했다. 일본의 면요리는 그로부터 400~500년 뒤인 무로마치시대 조선의 외교사절단이 한반도의 면요리인 칼국수를 소개하면서 처음 전해졌다. 그는 “무로마치시대에는 일본에도 밀가루를 빻을 수 있는 맷돌이 보급됐기 때문에 칼국수가 우동의 원형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분석했다.
오카하라 회장은 1964년부터 56년째 일본 최대 제면기 업체인 사누키면기를 이끌고 있는 일본 우동계의 원로다. 그가 일본 우동의 산증인으로 존경받는 건 제면기만 만드는 게 아니라 우동 기술을 전파하는 데도 열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2019년 사누키우동학교와 라면학교를 세워 일본 우동을 알리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