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모펀드 시커모어 파트너스가 세계적인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을 인수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코로나19로 세계 인수합병(M&A) 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형 M&A 포기 속출…빅토리아 시크릿 매각 불발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시커모어는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빅토리아 시크릿 인수 철회를 허용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상대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회사 L브랜드다. 지난 2월 시커모어는 L브랜드로부터 5억2500만달러에 빅토리아 시크릿 지분 55%를 매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시커모어 측은 L브랜드가 인수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커모어의 동의 없이 1600여 개 매장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일시해고했다는 것이다. 또 L브랜드가 이달 매장 임차료를 지불하지 않았는데 ‘지분 인수 절차를 밟을 때도 사업을 정상 운영해야 한다’는 약속을 어긴 것이란 지적이다.

L브랜드 측은 “소송에 적극 대응해 계약이 이행되도록 하겠다”고 성명을 냈지만 시장 전망은 비관적이다.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 리서치의 제이미 메리먼 애널리스트는 “두 기업 간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계약이 파기되면 L브랜드는 약 25억달러의 매장 임차료를 부담해야 해 현금 부족을 겪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최근 들어 M&A가 엎어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 사무기기 회사 제록스는 이달 초 프린터·PC업체 휴렛팩커드(HP)를 인수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항공 부품업체 우드워드는 경쟁사인 헥셀 인수 계획을 백지화했다. LOT폴란드항공도 경쟁사인 독일 콘도르항공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M&A 시장 침체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로이터통신은 지난주 전 세계에서 10억달러 이상 규모의 M&A 발표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2004년 9월 이후 처음이다. 올 1분기엔 세계 M&A 규모가 총 572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3% 위축됐다.

다만 급격하게 위축된 M&A 거래가 코로나19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영난으로 파산하는 기업들을 저가에 인수하려는 시도가 잇따를 것이란 해석이다. WSJ는 “현금이 풍부한 투자자들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여행, 숙박,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