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지원금 70%' 고수하던 홍남기, 총리 경고 9시간 만에 항복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을 소득 하위 70%에만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기획재정부가 ‘전 국민 지급’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날 오전 “국민에게 혼란을 야기해서는 안된다”며 기재부를 공개적으로 질책하자 9시간만에 백기를 든 것이다.

기재부는 23일 오후 7시께 ‘긴급재난지원금 보완 및 조속 처리요청’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전 국민에게 코로나지원금을 지급하고 고소득자들의 자발적 기부를 받는 대안에 동의하기로 했다”며 “사안의 시급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른 추가 재원 소요는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결사 항전을 각오하겠다”고 주변에 말하던 홍 부총리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건 건 정 총리의 질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총리가 정부를 대표해 고소득자의 자발적 기부가 가능한 제도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냈음에도 일부 기재부 공직자들이 뒷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고 기재부를 공개 비판했다. 그는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정부의 입장이 정리됐는데도 국민에게 혼란을 야기하는 발언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되 고소득자는 자발적 기부를 받는 방안에 대해 당정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정 총리는 민주당 안을 받아들이자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직접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이후 청와대와 여당의 결정을 충실히 따라온 홍 부총리는 유독 코로나지원금과 관련해 “선별 지급이 맞는다”며 소신 발언을 이어왔다. 지난 12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기재부가 추경 증액에 부정적이라면 홍 부총리 해임안도 건의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게 알려졌을 때도 물러서지 않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기재부는 이번에도 결국 여당에 굴복했다. 홍 부총리 역시 다시 ‘예스맨’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됐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온다.

홍 부총리는 2018년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2019년 추경, 증권거래세 인하 등 굵직한 사안에 대해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청와대와 여당 발언에 바로 입장을 뒤집곤 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홍 부총리가 이번에는 소신을 지킬 줄 알았는데 다소 실망스럽다”며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다른 부처 반발을 감수하며 예산을 감액했는데 결국 적자국채를 찍게 돼 타 부처 공무원들에게도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