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발생한 키움증권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먹통 사태가 법원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키움증권과 피해 투자자 간 배상 협상이 잘 안 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로펌은 인터넷 카페를 열고 공동소송을 내기 위한 원고인단을 모으고 있다. 사태 초반까지는 협상으로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키움증권의 이해하기 어려운 대응이 한몫했다. 당시 키움증권 HTS가 먹통이 된 건 이 HTS가 마이너스 유가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일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새벽 3시9분께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피해 투자자들이 매수한 파생상품 미니WTI선물은 이날 새벽 3시30분이 만기였는데, 이때 유가는 배럴당 -37.63달러였다. 이 파생상품은 WTI가 기초자산이기 때문에 만기 시점에서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뒤 청산됐다. 키움증권은 사태 뒤 일부 피해자에게 연락해 “유가가 0달러 이하로 내려온 뒤 입은 손실 가운데 -9달러 이전 부분을 배상해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문제는 손실 배상 구간을 이렇게 잡은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키움증권 측은 “-9달러가 될 때까지는 투자자가 매도 버튼을 누른 흔적이 있으므로 매도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된다”며 “이후에는 주문 입력 흔적이 없어 손실을 투자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물 전문가들은 그러나 “그런 논리라면 -9달러 이전이 아니라 이후 입은 손실을 배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9달러가 됐을 때 매도 주문이 입력돼 청산했다면 이후에는 손실을 입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키움증권 측은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피해자와 협의하면서 이들을 자극하는 말을 반복했다. 키움증권은 HTS 오류로 손실을 본 미수계좌 보유자들에게 “미변제 시 연체이자 18%를 부담해야 하고 신용상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내용의 문자를 발송했다. 피해자와 상담 과정에서는 “우리도 억울하다”고 항변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키움증권은 최근 불어닥친 개인 주식투자 열풍의 최대 혜택을 받았다. ‘신뢰’라는 공든 탑을 한꺼번에 무너뜨리지 말았으면 한다.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