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에 맞섰던 옛 전남도청서 40년 트라우마 작품에 담아 전시회

[당신의 5·18] '오월 별이 된 들꽃'…김근태 화백 40주년 기획전
"나는 밤마다 불나방이 되어 헤매는 영혼이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나도 땅을 밟지 못하는 떠도는 영혼이었다.

"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23살이었던 김근태 화백은 총을 들고 옛 전남도청 정문을 지켰다.

김 화백은 도청이 계엄군에 장악됐다는 소식을 들은 가족들의 애원에 도청 담을 넘어 빠져나왔다고 한다.

이후 자신만 살아 남았다는 자괴감 속에 4차례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고 고등학교 교사 생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살아왔다.

5·18, 그때의 트라우마를 술에 의지하며 지내다 청각마저도 온전치 않게 되고 교통사고까지 나 한쪽 눈을 잃었다.

눈을 잃고 청력도 잃어가며 폐인처럼 지내던 그에게 그림은 새로운 인생을 살게 했다.

그는 목포 앞바다의 작은 섬 고하도에 있는 목포공생재활원에서 만난 지적장애인들을 그리면서 인권 화가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가장 낮은 자를 예술작품으로 담는 일은 5·18 정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지적장애인만을 그리는 세계 유일한 화가로 인정받은 그가 40년 전 총을 들고 민주화를 외쳤던 옛 전남도청 그 자리로 돌아왔다.

그 자리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섰고 김 화백은 전당 전시실에서 전시회를 연다.

토우 1천인, 한지로 만든 1천인 등 2천개 군상(군상)과 지적장애인을 그린 400여점의 작품을 들고 40년 만에 옛 전남도청을 찾은 것이다.

[당신의 5·18] '오월 별이 된 들꽃'…김근태 화백 40주년 기획전
토우 1천인은 항쟁 참여자, 사상자, 행불자, 살아남는 자의 모습을 흙으로 빚었다.

아름다운 별이 되어 하늘에 있는 영혼들을 상징하는 한지조형 1천인은 밤하늘의 별이 되고 달이 되어 5·18 정신으로 은하수를 이룬다는 의미를 담았다.

김 화백은 40주년을 맞아 옛 전남도청 자리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오월 별이 된 들꽃'이란 주제로 특별 전시회를 마련했다.

5월 13일부터 6월 21일까지 연다.

5·18 피해 당사자인 김근태 화백의 작품 세계를 통해 5·18의 상처와 정신을 문화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피해 당사자들의 트라우마를 예술로 치유하고 화합, 희망으로 나아가
는 것이 전시회 취지다.

[당신의 5·18] '오월 별이 된 들꽃'…김근태 화백 40주년 기획전
사단법인 김근태와 5대륙 친구들이 조형물을 제작해 전시한다.

한지 조형과 토우와 7분짜리 영상으로 5·18정신을 예술로 승화했다.

한지 조형물 '탄생, 아름다운 자유' 1천명 군상이 별, 달, 은하수로 수 놓고 있다.

토우 제작 과정 중 떨어지고 상한 토우와 완성된 토우들이 아픔과 상처의 벽을 넘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군상은 슬픔을 넘어 장엄한 예술의 경지로 승화됐다.

김 화백은 지난 2015년 미국 UN 본부에서 전시했던 100m짜리 '들꽃처럼, 별들처럼'도 전시한다.

지적장애인을 그린 이 작품은 2012년 7월부터 3년여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100호 캔버스 77개를 이어 붙여 총 길이가 100m에 이르는 대형 작품이다
김 화백은 이 작품 외에 한지 먹물로 그린 신작 등 400여점을 선보인다.

김 화백은 UN 전시에 이어 평창패럴림픽,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호주, 독일 등에서 전시회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김 화백은 26일 "한 눈은 잃었지만, 탄식하지 않았다, 그림은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면서 "눈과 귀를 의존하지 않고 5·18 정신과 마음으로 만든 작품들이 이번 전시회에 선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군상을 흙으로 빚어 상처, 분열, 아픔을 치유하고 싶었다"면서 "더 나아가 비상과 자유하는 마음을 더하고 싶어 한편의 단편영화처럼 영상으로도 구현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