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병산서원을 위하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 유행으로 넋을 놓은 사이 때아닌 강적이 불쑥 찾아온 셈이었다. 엊그제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확산하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병산서원(屛山書院)의 코앞까지 화마(火魔)가 널름거렸다. 바람이 방향을 바꿔 위기를 모면했지만, 자칫 불똥이 낙동강 건너 날아왔다면 어찌 됐을지 뒷골이 서늘하다.

저마다 무서운 것이야 다르겠지만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불이 첫째로 무섭다. 나무가 주재료인 건조물이 다수를 차지하는 데다 깊은 산 속에 자리한 ‘나홀로 문화재’가 많은 까닭이다. 목조 건물에 불이 나면 짧게는 몇 분 새 상황이 끝나기 때문에 초동 대응이 중요한데, 만전을 기한다고는 하지만 늘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한 번 사라지면 원형을 되찾을 수 없는 문화재의 유일무이함 앞에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된다.

1년여 전, 전 세계인을 경악시킨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때 한국 사람들은 으레 숭례문 방화 사건을 떠올렸다. 2008년 2월 10일 밤, 정부의 토지 보상에 불만을 품은 한 노인이 숭례문 누각에 시너를 붓고 불을 붙여 다섯 시간여 만에 2층 문루가 붕괴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수습에 참여했던 문화재청 사람들은 12년 세월이 흘렀어도 숭례문 쪽 바라보기를 꺼린다. 너무 참담했던 그날의 아픔이 지금도 상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경기 파주에 2017년 문을 연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가면 숭례문 화재 때 불에 탄 부재들을 볼 수 있다. 복원 작업 기록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서는 흙 한 줌도 국보로 여겨 모두 3만 포대에 이르는 수집물을 거뒀다고 한다. 일일이 점검해 다시 쓸 수 있는 재료는 재활용해 600년 역사의 정통성을 이으려 노력했다. 시커멓게 그을린 목재 중에는 1447년 세종대왕 29년 숭례문 개축 때 쓰인 나무가 남아 있어 문화유산의 생명력을 증언한다.

역설적이지만 이 숭례문 화재로 인해 문화유산 보호 행정의 대(大)전환이 이뤄졌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할 만하다. 국회에서 대폭 삭감될 위기였던 문화재청 안전관리 예산이 오히려 증액됐고, 담당 부서인 안전기준과의 위상이 올라갔다. 문화재 수리의 기준을 개선하는 ‘표준품셈’ ‘표준시방서’를 제정하고 정비하는 출발점이 됐다. 올해 경북 봉화에 건립 사업을 본격 착수하는 문화재수리재료센터의 밑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으로도 작용했다.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우리의 역량은 이제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만큼 튼실해졌다. 건재한 병산서원이 아침 햇살에 빛나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문화유산 헌장’의 한 구절을 되새긴다. ‘문화유산은 한 번 손상되면 다시는 원상태로 돌이킬 수 없으므로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그대로 우리도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줄 것을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