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이슬람 1400년 만의 낯선 라마단 금식
지난 23일부터 세계 16억 이슬람 신자가 일제히 라마단 단식에 들어갔다. 이슬람력 9월인 라마단 한 달 동안 해가 있는 낮 시간에 일체의 음식을 먹거나 마시지 않는 고행의식을 시작한 것이다. 모든 무슬림이 차별 없이 공평한 조건하에 함께 금식하면서 진정한 나눔의 실천을 행한다. 신앙고백, 예배, 순례, 희사 등과 함께 라마단은 이슬람의 5대 의무 중 하나일 만큼 필수 종교의례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대부분 이슬람 국가에서 라마단 특별 예배와 나눔 행사가 전면 금지된 것이다. 신성한 종교적 기본의무를 충족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이다. 이슬람 역사 1400년 동안 처음 경험하는 위기 국면이어서 율법학자 간에도, 정부 간에도 의견이 엇갈려 상당한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보통 때 하루 다섯 번의 일상예배는 개인 의례로 진행된다. 금요일 낮 예배와 축제예배, 특히 라마단 기간 저녁 예배인 ‘타라위’ 의례는 반드시 모스크에 모여 집단으로 한다. 평등의식에 따라 예배당에 들어온 순서대로 열을 맞춰 일렬로 예배 행렬을 만든다. 이때 옆 사람과 반드시 어깨를 맞대 공간을 두지 말아야 한다. 빈 공간을 사탄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로 여겨 예배 유효성 자체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슬람 예배 방식에 적용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라마단 시작과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반한 종교행위를 단속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들려온다. 26일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경찰이 모스크에 난입해 기도하는 무슬림을 연행하고 종교적 모욕을 가했다는 이유로 경찰 장관이 공식 사과하는 사건이 있었다. 종교분쟁이 끊이지 않는 인도에서도 라마단 예배의식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폭력 사건이 잇따랐다. 그러나 성지인 메카를 포함한 대부분의 이슬람 종교 시설에서는 라마단 기간에 집단 예배를 자제하거나 금지했다. 허용된 모스크에서도 처음으로 2m 이상의 거리를 두고 예배를 행하는 초유의 광경이 목격됐다. 이는 1000년 이상 유지돼온 경직된 이슬람 율법이 재해석되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이 대면 집단 의례에 집착하던 보수적인 이슬람 조직들이 글로벌 시대의 개혁과 인공지능(AI)에 친화적으로 변화하도록 유도하는 대변혁을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라마단은 나눔정신을 체득하고 실천하는 한 달간의 성스러운 종교의례다. 실제로 이웃이나 공동체 다른 구성원과 함께 고통스럽게 단식을 체험함으로써 가난한 자의 배고픔과 빼앗긴 자의 고통을 절절히 느낀다. 그래서 라마단 기간에는 부자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장만해 이웃과 공장 노동자, 소외된 계층의 형제자매를 초대해 매일 밤 단식이 끝나는 시간에 음식을 대접한다. 광장, 극장, 공공시설 어느 곳에서든 한 달 내내 보기 좋은 나눔이 펼쳐진다. 서로가 하나 되고 사회적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공동체 발현 의식인 것이다. 그래서 라마단 단식을 끝내고 맞이하는 피트르라(단식이 끝나는 날) 1주일의 축제 기간에는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액수의 희사금이 모금된다. 서민들의 복지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재원이 정부 세금과는 별도로 자발적인 희사금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두기’와 ‘심리적 거리 좁히기’를 요구하는 팬데믹으로 인해 이런 참여형 공동체 정신은 새로운 해석과 대안적 적용이 불가피해졌다. 라마단이라는 일정 기간만이 아니라 상시적 고통 분담 제도가 논의돼야 하고, 300만 명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메카로의 직접 순례 대신 다른 자선을 행함으로써 종교적 의무를 충족하는 율법의 재해석이 본격화돼야 한다. 21세기 들어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사형제도와 간통죄 처벌 규정이 폐지되고, 일부다처 금지와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현상과 맞물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인류의 보편적 삶의 방식뿐만 아니라 라마단 이후 이슬람 세계의 삶의 방식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