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 '社內 낀세대' 위기의 부장님 [김상무 & 이부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부장씩이나 돼서…부하 관리도 못해?"
"부장님, 왜 그걸 우리팀이 해야 하죠?"
"부장님, 왜 그걸 우리팀이 해야 하죠?"
“부장이란 사람이 기획을 이렇게밖에 못해?” 어김없이 거친 핀잔이 날아온다. 자리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 새로 떠안은 업무를 1990년대생 팀원들에게 어떻게 지시해야 할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역시나 “부장님, 그걸 왜 저희 팀이 해야 하죠?”라고 되묻는 새파란 후배를 어떻게 설득할지 난감하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지시가 내려오면 해야지 어쩌겠냐”고 팀원들을 다독여보지만 ‘무능한 부장’이라는 눈총을 받는 것 같아 씁쓸한 아침이다.
1970년대생 40대는 대한민국 직장의 ‘중추’가 됐지만, ‘낀세대’다. 2000년대 중반 취업한 40대는 ‘상명하복’ 문화 속에서 ‘직장을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업무를 배웠다. 2030으로 대표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이런 문화가 이해할 수 없는 ‘꼰대’의 낡은 생각으로 치부된다. 전대미문의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로 입사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버텨낸 우리 시대의 ‘김상무 이부장’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며 허탈함을 느끼고 있다.
벌어지는 직장 내 세대차
40대는 직장에서 ‘허리’ 역할을 한다. 동시에 2030세대와 50대 이상의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일도 해야 한다. 50대는 직장 내 초급 임원으로서 조직을 이끄는 핵심 브레인 역을 맡는다. 지난달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40대 취업자는 638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4.0%에 달했다.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았다. 그다음이 50대(631만 명·23.7%)였다. 40대와 50대를 합치면 전체 취업자의 절반에 육박한다.
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2030세대와 4050세대 간 세대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달 초 대한상공회의소가 내놓은 ‘한국 기업의 세대갈등과 기업문화 종합진단’에 따르면 2030세대는 “‘성실히’ ‘열심히’를 강조하는 윗세대는 비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비해 4050세대는 아랫세대를 “조직원으로서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더 이상 ‘철없는 애’도 아니면서 꼰대는 되고 싶지 않은 대한민국의 40·50대 직장인 김상무 이부장의 애환은 ‘현재진행형’이다.
업무 지시도 후배들 달래가며
김상무 이부장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업무 지시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받지 않는 임원은 아침 일찍 출근해 업무 지시를 한다. 하지만 윗분에게서 받은 지시를 팀원들에게 전달하려면 ‘칼같이’ 지키는 출근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카카오톡(카톡)으로 팀원들과 소통하는 출판업체 영업팀 김 부장(45)은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다 작성해 놓고도 한참을 기다리기 일쑤”라며 “출근시간 전엔 팀원들이 보낸 카톡을 읽지도 않아 이제는 중요한 업무 지시도 오전 9시 이후에 보낸다”고 한숨을 쉬었다. 업무시간이 아닌 때 전화나 카톡으로 후배들에게 연락하는 것도 더 조심스러워졌다.
업무시간에도 밀레니얼 세대 후배들과의 의사소통은 쉽지 않다. 임원의 두루뭉술한 지시를 해석하는 것은 부장의 몫이다. 1990년대생 팀원들에게 이 일이 필요한 이유를 이해시키고 구체적으로 방법까지 지시하지 않으면 일을 진행하기 어렵다. 후배들의 실수를 지적할 땐 신중해야 한다. 보고서에 ‘육하원칙’을 지키지 않은 후배에게 5분 동안 이렇게 써야 한다고 가르쳤더니 후배는 다음날 “가슴이 막혀 숨이 안 쉬어져요. 병원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회식 빠지고 싶지만 현실은 ‘필참’
업무시간이 끝나도 당황스러움은 이어진다. 회사 공식 신년회나 야유회에 2030세대 후배들의 참석률은 낮다. 사장이 참석하는 자리에 부장 이상은 ‘필참’해야 하는데, 아래 직원들은 자율적으로 불참하곤 한다. 본부장이 회식을 추진해도 젊은 직원들은 퍼스널트레이닝(PT)이나 요가 강습을 핑계로 ‘당당하게’ 빠진다. 한 건자재업체 임원(51)은 “자기계발을 하고 싶고, 예쁜 딸과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지만 ‘낀세대’인 우리까지 회식에 빠질 순 없다”고 털어놨다. 회식에 참석하더라도 후배들은 1차가 끝나면 대부분 집으로 향한다. 술자리에서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고 거절하는 후배들이 늘어날 때마다 상사가 주는 술은 다 받아마시던 10여 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기다리던 휴가 날짜 정하기는 이제 후배들이 우선이다. 휴가 1년 전에 비행기표를 예약했다는 후배에게 우선권을 양보할 수밖에 없다. 취소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말에 후배가 정한 날짜를 피해 휴가를 가야 한다. 주니어 땐 부장부터 막내까지 서열에 따라 순서대로 휴가를 정했지만, 부장이 된 뒤에는 후배들이 찍은 날을 피해 남은 날 중에서 고르는 게 ‘뉴 노멀’이다.
어느새 희망퇴직 대상자 된 4050세대
코로나19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현실화하며 김상무 이부장은 비자발적 인생 2막 준비에 내몰렸다. 수요 급감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와 자동차업계를 비롯해 수년 동안 업황 부진을 견뎌온 건설업계, 기계장비업계 등으로 희망퇴직의 칼바람이 확산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달 만 45세(1975년생)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독일계 자동차 부품업체는 이달 들어 만 43세(1977년생) 이상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구조조정이 시작되지 않은 업체에서도 승진에서 밀린 4050세대는 희망퇴직 1순위가 되는 게 아닌지 전전긍긍한다.
희망퇴직 권고에 응하지 않으면 현장 영업직으로 발령이 나 어느 정도 굴욕을 감수해야 한다. 후배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참기 힘든 일이 닥쳐도 대출받은 전세금이나 자녀 학자금 등을 떠올리며 ‘버티기’를 하는 이부장이 적지 않다.
명예로운 퇴직을 선택한 이들도 우울한 현실에 직면하기는 마찬가지다. 카페, 치킨집,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등 창업에 나서지만 치열한 경쟁 속 ‘레드 오션’에서 생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난해 말 유통업체를 퇴직하고 디저트 카페를 낸 이모씨(49)는 “장사가 잘 안 돼 오후 7시에 카페 문을 닫고 전산회계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며 “어떻게든 월급쟁이로 버틸 수 있는 곳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1970년대생 40대는 대한민국 직장의 ‘중추’가 됐지만, ‘낀세대’다. 2000년대 중반 취업한 40대는 ‘상명하복’ 문화 속에서 ‘직장을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업무를 배웠다. 2030으로 대표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이런 문화가 이해할 수 없는 ‘꼰대’의 낡은 생각으로 치부된다. 전대미문의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로 입사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버텨낸 우리 시대의 ‘김상무 이부장’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며 허탈함을 느끼고 있다.
벌어지는 직장 내 세대차
40대는 직장에서 ‘허리’ 역할을 한다. 동시에 2030세대와 50대 이상의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일도 해야 한다. 50대는 직장 내 초급 임원으로서 조직을 이끄는 핵심 브레인 역을 맡는다. 지난달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40대 취업자는 638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4.0%에 달했다.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았다. 그다음이 50대(631만 명·23.7%)였다. 40대와 50대를 합치면 전체 취업자의 절반에 육박한다.
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2030세대와 4050세대 간 세대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달 초 대한상공회의소가 내놓은 ‘한국 기업의 세대갈등과 기업문화 종합진단’에 따르면 2030세대는 “‘성실히’ ‘열심히’를 강조하는 윗세대는 비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비해 4050세대는 아랫세대를 “조직원으로서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더 이상 ‘철없는 애’도 아니면서 꼰대는 되고 싶지 않은 대한민국의 40·50대 직장인 김상무 이부장의 애환은 ‘현재진행형’이다.
업무 지시도 후배들 달래가며
김상무 이부장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업무 지시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받지 않는 임원은 아침 일찍 출근해 업무 지시를 한다. 하지만 윗분에게서 받은 지시를 팀원들에게 전달하려면 ‘칼같이’ 지키는 출근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카카오톡(카톡)으로 팀원들과 소통하는 출판업체 영업팀 김 부장(45)은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다 작성해 놓고도 한참을 기다리기 일쑤”라며 “출근시간 전엔 팀원들이 보낸 카톡을 읽지도 않아 이제는 중요한 업무 지시도 오전 9시 이후에 보낸다”고 한숨을 쉬었다. 업무시간이 아닌 때 전화나 카톡으로 후배들에게 연락하는 것도 더 조심스러워졌다.
업무시간에도 밀레니얼 세대 후배들과의 의사소통은 쉽지 않다. 임원의 두루뭉술한 지시를 해석하는 것은 부장의 몫이다. 1990년대생 팀원들에게 이 일이 필요한 이유를 이해시키고 구체적으로 방법까지 지시하지 않으면 일을 진행하기 어렵다. 후배들의 실수를 지적할 땐 신중해야 한다. 보고서에 ‘육하원칙’을 지키지 않은 후배에게 5분 동안 이렇게 써야 한다고 가르쳤더니 후배는 다음날 “가슴이 막혀 숨이 안 쉬어져요. 병원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회식 빠지고 싶지만 현실은 ‘필참’
업무시간이 끝나도 당황스러움은 이어진다. 회사 공식 신년회나 야유회에 2030세대 후배들의 참석률은 낮다. 사장이 참석하는 자리에 부장 이상은 ‘필참’해야 하는데, 아래 직원들은 자율적으로 불참하곤 한다. 본부장이 회식을 추진해도 젊은 직원들은 퍼스널트레이닝(PT)이나 요가 강습을 핑계로 ‘당당하게’ 빠진다. 한 건자재업체 임원(51)은 “자기계발을 하고 싶고, 예쁜 딸과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지만 ‘낀세대’인 우리까지 회식에 빠질 순 없다”고 털어놨다. 회식에 참석하더라도 후배들은 1차가 끝나면 대부분 집으로 향한다. 술자리에서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고 거절하는 후배들이 늘어날 때마다 상사가 주는 술은 다 받아마시던 10여 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기다리던 휴가 날짜 정하기는 이제 후배들이 우선이다. 휴가 1년 전에 비행기표를 예약했다는 후배에게 우선권을 양보할 수밖에 없다. 취소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말에 후배가 정한 날짜를 피해 휴가를 가야 한다. 주니어 땐 부장부터 막내까지 서열에 따라 순서대로 휴가를 정했지만, 부장이 된 뒤에는 후배들이 찍은 날을 피해 남은 날 중에서 고르는 게 ‘뉴 노멀’이다.
어느새 희망퇴직 대상자 된 4050세대
코로나19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현실화하며 김상무 이부장은 비자발적 인생 2막 준비에 내몰렸다. 수요 급감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와 자동차업계를 비롯해 수년 동안 업황 부진을 견뎌온 건설업계, 기계장비업계 등으로 희망퇴직의 칼바람이 확산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달 만 45세(1975년생)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독일계 자동차 부품업체는 이달 들어 만 43세(1977년생) 이상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구조조정이 시작되지 않은 업체에서도 승진에서 밀린 4050세대는 희망퇴직 1순위가 되는 게 아닌지 전전긍긍한다.
희망퇴직 권고에 응하지 않으면 현장 영업직으로 발령이 나 어느 정도 굴욕을 감수해야 한다. 후배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참기 힘든 일이 닥쳐도 대출받은 전세금이나 자녀 학자금 등을 떠올리며 ‘버티기’를 하는 이부장이 적지 않다.
명예로운 퇴직을 선택한 이들도 우울한 현실에 직면하기는 마찬가지다. 카페, 치킨집,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등 창업에 나서지만 치열한 경쟁 속 ‘레드 오션’에서 생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난해 말 유통업체를 퇴직하고 디저트 카페를 낸 이모씨(49)는 “장사가 잘 안 돼 오후 7시에 카페 문을 닫고 전산회계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며 “어떻게든 월급쟁이로 버틸 수 있는 곳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