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대 국적항공사인 영국항공(BA)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체 임직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1만2000명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항공수요 급감으로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영국항공의 모(母)회사인 IAG는 28일(현지시간) 공식 성명을 통해 “항공여행 수요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며 “전체 근로자의 3분의 1에 달하는 최대 1만2000명을 감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알렉스 크루즈 영국항공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영국항공 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항공 분야에 대한 전망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며 “우리는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구조조정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유럽의 봉쇄조치가 언제 해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경제적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이라는 것이 영국항공의 설명이다.

앞서 윌리 월시 IAG CEO는 이달 초까지만 하더라도 “영국항공을 비롯한 우리 회사는 보유한 현금을 토대로 아직까지 코로나19 위기에 버틸 여력이 있다”고 밝혔다. IAG는 영국항공 외에도 아일랜드의 에어링구스, 스페인의 이베리아항공과 부엘링항공 등을 보유하고 있다. IAG는 지난해 기준 런던 증시의 FTSE 100 지수 편입종목 중에서도 세 번째로 높은 배당수익률을 기록하는 등 유럽에서 가장 탄탄한 재정을 보유한 항공그룹으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IAG는 지난 1분기 코로나19 여파로 5억3500만 유로(약 71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영국항공도 현재 보유한 현금으로는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영국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IAG가 영국 정부와 구제금융 협상을 물밑에서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항공은 이달 초 전체 근로자의 80%에 달하는 3만2000명을 대상으로 유급휴직을 도입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여객수요가 급감하자 비용 감축을 위해 노사 합의하에 내놓은 긴급 조치다. 당초 영국항공은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자 대규모 구조조정을 검토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근로자를 해고하는 대신 휴직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의 구제금융 협상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끝내 구조조정을 선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영국항공은 성명을 통해 “현 상황에서 정부의 구제금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정부로부터 빌리는 돈은 단기 조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 구제금융으로는 우리가 직면한 장기적 도전에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영국 정부는 구제금융의 대가로 항공사 지분의 일정 부분을 정부가 소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리시 수낙 재무장관도 “정부의 구제금융은 납세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구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영국 정부가 국적항공사인 영국항공을 살리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지원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앞서 유럽 양대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와 에어프랑스는 유럽 6개국 정부로부터 210억유로(약 28조원)에 이르는 긴급자금을 지원받기로 잠정 합의했다. 각국 정부는 구제금융 지원 대가로 △배당 중단 △임원 보너스 중단 △직원 월급 삭감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