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현 지음 / 들녘
440쪽│3만5000원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에서 화가이자 미술학 박사인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실경에서 느낀 감흥을 실감 나게 전하고자 화가가 임의로 실경에 변형을 가하는 것이 진경산수화라고 해도 실경의 특성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면 그게 진경산수화인가.
저자는 진경(眞景)과 산수화, 진경문화의 근본 개념에 대한 몰이해가 ‘겸재=진경산수=진경문화’라는 오해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표암이 가장 먼저 쓴 ‘진경’은 가상의 경치에 대비되는 실경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늘의 법리를 헤아리고 따르게 하는 정치적 용어였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것. 산수(山水)라는 말도 ‘주역’을 통해 널리 확산된 정치적 용어로, 산수화는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자연 경치를 빌려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겸재는 노론 강경파였던 장동 김씨 집안의 김창흡과 금강산 여행길에 동행하면서 조선회화사에 등장했다. 이때 제작된 ‘신묘년풍악도첩’은 겸재의 금강산 그림의 원형이 됐고, 이후 평생 장동 김씨들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화업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동 김씨들의 정치적 행보와 부침에 따라 겸재의 이력과 화업도 함께 변화했고, 겸재 그림에는 노론의 그림자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비가 그친 뒤 인왕산 풍경을 담은 ‘인왕제색도’가 대표적이다. ‘비가 그쳐 인왕산 본연의 얼굴색을 회복함’이라는 제목의 뜻과 달리 그림 속 인왕산은 비에 젖어 어둡다. 왜 그럴까. 저자는 비가 그친 인왕산이 곧 본연의 얼굴을 드러낼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죽음, 장동 김씨의 정치적 기상도가 그림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