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연재' 사용해야 하지만, 절반 값인 유증기 유발 우레탄폼 사용"
작업자 목숨 담보한 값싼 자재·안전불감 작업환경·기형적 하청구조가 화재 주범

[※ 편집자 주 = 38명의 생명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신축 현장 화재는 반복되는 후진적 참사란 점에서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건설 공사 현장에서는 비용을 아끼려고 화재에 취약한 값싼 자재를 쓰고, 안전을 위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작업환경마저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를 계속 방치한다면 언제든 똑같은 참사가 되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연합뉴스는 물류창고 대형화재가 왜 반복하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짚어보는 긴급 진단기사 2편을 일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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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물류창고 대형화재] ① "공사비 아끼려 무시한 안전"
"난연 우레탄이 있는 건 알지만 단가 때문에 사실상 현장에서 사용하긴 어렵죠."(우레탄 전문 시공업체 대표 A씨)
노동·인권·시민사회단체 등 71개 단체 연대기구는 지난달 30일 공동성명을 내고 이천 물류창고 화재를 '기업 살인'으로 규정했다.

업체가 비용을 줄이려고 작업자들을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위험한 환경으로 몰아넣었고 이로 인해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는 이유에서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사람 목숨값보다 절감되는 공사비가 더 많은 상황에서 돈을 위해 사람 목숨이 희생되는 것은 필연"이라고 이천 화재 원인을 진단했다.

반복되는 물류창고 화재 참사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안전수칙이 무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8년 40명이 희생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도 공기 단축을 위해 병행해서는 안 될 위험한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대형 인명피해가 났다.

위험물이 널려 있는 장소에서 용접작업을 동시에 하다 보니 불꽃이 튀어 화재가 일어났다는 당시 수사 결과만 보더라도 이 화재는 규정만 준수했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인재'였던 셈이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지만 변한 게 없었다.

현장에선 여전히 안전이 무시되고, 작업자들이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이번 이천 물류창고 화재에서 대형 인명피해를 야기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 중 하나가 동시다발적인 우레탄 폼 작업이다.

건축법에는 건축물 내외부 마감재를 불이 붙어도 연소가 잘 되지 않는 난연재((難燃材)로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으나, 단열재에 대한 별도의 난연재 사용 규정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우레탄 혼합 중 발생한 유증기가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인가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으나, 적어도 화재 발생 후 우레탄이 연소하면서 내뿜은 유독가스가 대형 인명피해를 야기했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이번 현장에서 일반 우레탄이 사용됐는지, 난연 우레탄이 사용됐는지는 추후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으나 일선 현장에서는 (주입이 아닌)스프레이식 우레탄 폼 작업에 대부분 일반 우레탄이 사용되는 만큼 이천 물류창고 현장에서도 난연재가 아닌 일반 우레탄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반 우레탄은 냉동창고 마감재로 쓰이는 밀도 30㎏/㎥짜리를 기준(가로세로 1m)으로 할 때 자잿값이 1만5천원 정도 나온다.

이에 비해 난연 우레탄은 2만5천∼3만원 정도로, 2배 가량 비싸다.

등급별로 다르지만, 난연 우레탄은 30초 정도 토치로 불을 가하고 나서 20초 안에 스스로 꺼져 화재 위험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민자 벽진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는 "건축법상 내외장 마감재에 불연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아직 냉동·냉장창고의 단열재 마감 재료에 대한 규정은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며 "창고 공사 과정에서 참사가 반복되는 만큼, 이에 대한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물류창고 대형화재] ① "공사비 아끼려 무시한 안전"
위험한 작업 환경도 이번과 같은 참사를 되풀이하게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동시다발적인 우레탄 작업 시 유증기가 될 수 있는 화학물질이 현장에 널려 있는 만큼 환기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작업환경이 마련돼 있었어야 했다.

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폴리우레탄 발포작업이 진행됐다는 것은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이 이뤄졌다는 것을 뜻한다"며 "완공된 건물이라면 공조 설비를 이용해 환기하면 되지만, 공사 중에는 공기 치환 팬을 설치해 환기함으로써 휘발성유기화합물(TVOCs) 농도를 폭발 하한의 25%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이번 화재 당시 환기가 얼마나 충분히 이뤄졌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화재 발생 전 물류창고 공사 관계자들에게 무려 6차례에 걸쳐 화재 위험을 경고하고 개선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현장에서 안전수칙이 얼마나 제대로 이행됐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작업 현장의 안전 규정 준수 여부도 문제지만, 건설 현장에 비일비재한 기형적인 하청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 위험의 외주화는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력 20년 차 건설업자 B씨는 "이번 사고도 원하청 구조를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라며 "원청사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가에 하청을 주고, 하청업체는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저가로 공사하다 보면 안전은 무시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