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수출 금지·농가 일손 부족…"지구촌 2억6500만명 굶주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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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코로나發 식량대란 오나
식료품 사재기·식량비축 경쟁에
곡물값 한달새 10% 이상 급등
농번기 인력 이동 막혀 생산 차질
코로나發 식량대란 오나
식료품 사재기·식량비축 경쟁에
곡물값 한달새 10% 이상 급등
농번기 인력 이동 막혀 생산 차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인의 식탁까지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하늘길과 뱃길이 막히면서 사람은 물론 먹거리까지 국경을 넘기 어려워졌다. 식품 사재기가 횡행하자 놀란 각국 정부는 식량을 비축하기 위해 쌀과 밀 등의 수출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곡물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셧다운(일시 가동 중단) 및 봉쇄 조치로 식당들이 문을 닫자 유통 생태계도 무너졌다. 농번기가 다가오지만 일손을 구할 수 없다. 밭을 통째로 갈아엎고 갓 짜낸 우유를 폐기 처분해야 할 처지다. 급기야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글로벌 식량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요 20개국(G20) 농업담당 장관들은 긴급 화상회의를 열어 “식량 공급망이 교란되면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빗장 걸어 잠그는 곡물 수출국
최근 들어 주요 곡물 가격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식량 교역에 제동이 걸리면서 쌀과 밀 등 주식으로 쓰이는 곡물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태국 쌀수출협회에 따르면 국제 쌀 가격의 기준인 ‘태국산 5% 도정 백미’ 가격은 지난 3월 말부터 한 달간 12% 올랐다. 2013년 4월 말 이후 최대 폭 상승이다. 밀 가격도 많이 뛰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의 밀 선물 가격은 3월 하순 이후 보름간 15% 상승했다. 파스타용으로 각광받는 캐나다산 듀럼밀 값은 2017년 8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곡물 가격이 갑자기 오른 것은 주요 생산국이 수출 제한 조치에 나서고 있어서다. 쌀 수출국 1위인 인도는 노동력 부족과 물류난이 이어지자 신규 쌀 수출 계약을 전면 중단시켰다. 캄보디아도 지난달 5일부터 쌀 수출을 금지했고 베트남은 수출 물량을 작년 대비 40%로 제한했다. 세계 최대 밀 생산국인 러시아는 밀과 쌀, 보리, 옥수수 등 모든 곡물의 수출을 임시 제한하기로 했다. ‘식재료 셧다운’에 나선 나라는 줄잡아 10여 개국이다.
식량 수입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식자재의 80%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홍콩은 1인당 식료품 구매량을 쌀 두 봉지와 계란 한 상자로 제한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봉쇄령을 내리자 말레이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인근 싱가포르에선 사재기 열풍이 불었다. CNBC는 “곡물을 생산할 노동력 공급이 끊기고 각국이 경쟁적으로 식량 비축에 나서자 곡물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선 농산물 내다 버리기도
세계적인 국경 봉쇄 조치로 이동이 어려워지자 농사를 지을 일손이 사라졌다. 여름 농작물 수확철이 코앞이지만 일할 사람이 없다. 제철 작물은 숙성 시간이 짧아 부패하기가 더 쉽다. 미국은 매년 농사지을 인력 25만 명을 멕시코 등에서 수혈해 왔는데 지금은 속수무책이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올해 농사에 손을 놓았다. 동유럽과 북아프리카 출신 근로자 유입이 막히면서다.
블룸버그통신은 “선진국 농업은 이민자에 의존해 왔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력의 이동이 한꺼번에 막혀 버렸다”며 “미국과 유럽에서도 농산물 부족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조사기관 피치솔루션은 “코로나19가 농산물 수요와 공급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식당 등에 대한 영업 제한 조치까지 이어지면서 농가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미국 최대 낙농업협동조합인 데어리파머스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하루 평균 우유 폐기량은 1400만L에 달한다. 미국 전역의 식당이 문을 닫자 과잉 생산된 원유를 폐기할 수밖에 없어서다.
식량난, 금융위기보다 위협적
식량 수급을 위협하는 것은 또 있다. 유엔 인도지원조정실은 기후변화에 따라 올해 역대급 다이폴(dipole)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이폴은 인도양의 동쪽과 서쪽 해수면 온도가 다른 양상을 보이며 기상 이변이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태평양에서 생기는 엘니뇨와 비슷해 ‘인도양의 엘니뇨’라고 불린다. 다이폴로 인해 인도양 서부에 있는 중동 및 아프리카 동부에는 폭우와 홍수가, 인도양 동쪽 호주에는 가뭄과 폭염이 닥쳤다. 농경지가 수몰되고 운송 수단이 파괴되면서 동아프리카의 곡물 가격이 폭등했다.
더 큰 문제는 폭우 이후 사막 메뚜기떼 4000억 마리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일반 메뚜기보다 크고 공격적인 게 특징이다. 이 메뚜기떼는 하루에 3만5000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먹어 치운다. 바람을 타고 하루에 150㎞씩 이동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뒤 중동과 파키스탄 등을 지나 현재 중국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FAO는 국제사회에 1억3000만달러의 원조를 요청하면서 “대응을 지체할 경우 지금까지보다 15배 이상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블룸버그도 “전 세계를 금융위기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했다.
국제기구 “2억6500만 명 식량 위기”
FAO는 최근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지 않으면 글로벌 식량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식량 공급망이 붕괴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사재기와 수출 제한, 공급망 교란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식료품 가격 급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경고다. 세계식량계획(WFP) 역시 코로나19로 세계 2억65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식량 관련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쌀 자급률은 104.7%로 높은 편이지만 밀 등 다른 곡물을 포함한 자급률은 2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빵을 만드는 데 쓰이는 밀은 전량 수입하는 처지다. 한국이 지속적으로 식량 안보가 취약한 국가로 분류되는 배경이다. 정부는 세계 식량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수입처 다변화 등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곡물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셧다운(일시 가동 중단) 및 봉쇄 조치로 식당들이 문을 닫자 유통 생태계도 무너졌다. 농번기가 다가오지만 일손을 구할 수 없다. 밭을 통째로 갈아엎고 갓 짜낸 우유를 폐기 처분해야 할 처지다. 급기야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글로벌 식량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요 20개국(G20) 농업담당 장관들은 긴급 화상회의를 열어 “식량 공급망이 교란되면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빗장 걸어 잠그는 곡물 수출국
최근 들어 주요 곡물 가격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식량 교역에 제동이 걸리면서 쌀과 밀 등 주식으로 쓰이는 곡물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태국 쌀수출협회에 따르면 국제 쌀 가격의 기준인 ‘태국산 5% 도정 백미’ 가격은 지난 3월 말부터 한 달간 12% 올랐다. 2013년 4월 말 이후 최대 폭 상승이다. 밀 가격도 많이 뛰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의 밀 선물 가격은 3월 하순 이후 보름간 15% 상승했다. 파스타용으로 각광받는 캐나다산 듀럼밀 값은 2017년 8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곡물 가격이 갑자기 오른 것은 주요 생산국이 수출 제한 조치에 나서고 있어서다. 쌀 수출국 1위인 인도는 노동력 부족과 물류난이 이어지자 신규 쌀 수출 계약을 전면 중단시켰다. 캄보디아도 지난달 5일부터 쌀 수출을 금지했고 베트남은 수출 물량을 작년 대비 40%로 제한했다. 세계 최대 밀 생산국인 러시아는 밀과 쌀, 보리, 옥수수 등 모든 곡물의 수출을 임시 제한하기로 했다. ‘식재료 셧다운’에 나선 나라는 줄잡아 10여 개국이다.
식량 수입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식자재의 80%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홍콩은 1인당 식료품 구매량을 쌀 두 봉지와 계란 한 상자로 제한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봉쇄령을 내리자 말레이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인근 싱가포르에선 사재기 열풍이 불었다. CNBC는 “곡물을 생산할 노동력 공급이 끊기고 각국이 경쟁적으로 식량 비축에 나서자 곡물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선 농산물 내다 버리기도
세계적인 국경 봉쇄 조치로 이동이 어려워지자 농사를 지을 일손이 사라졌다. 여름 농작물 수확철이 코앞이지만 일할 사람이 없다. 제철 작물은 숙성 시간이 짧아 부패하기가 더 쉽다. 미국은 매년 농사지을 인력 25만 명을 멕시코 등에서 수혈해 왔는데 지금은 속수무책이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올해 농사에 손을 놓았다. 동유럽과 북아프리카 출신 근로자 유입이 막히면서다.
블룸버그통신은 “선진국 농업은 이민자에 의존해 왔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력의 이동이 한꺼번에 막혀 버렸다”며 “미국과 유럽에서도 농산물 부족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조사기관 피치솔루션은 “코로나19가 농산물 수요와 공급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식당 등에 대한 영업 제한 조치까지 이어지면서 농가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미국 최대 낙농업협동조합인 데어리파머스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하루 평균 우유 폐기량은 1400만L에 달한다. 미국 전역의 식당이 문을 닫자 과잉 생산된 원유를 폐기할 수밖에 없어서다.
식량난, 금융위기보다 위협적
식량 수급을 위협하는 것은 또 있다. 유엔 인도지원조정실은 기후변화에 따라 올해 역대급 다이폴(dipole)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이폴은 인도양의 동쪽과 서쪽 해수면 온도가 다른 양상을 보이며 기상 이변이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태평양에서 생기는 엘니뇨와 비슷해 ‘인도양의 엘니뇨’라고 불린다. 다이폴로 인해 인도양 서부에 있는 중동 및 아프리카 동부에는 폭우와 홍수가, 인도양 동쪽 호주에는 가뭄과 폭염이 닥쳤다. 농경지가 수몰되고 운송 수단이 파괴되면서 동아프리카의 곡물 가격이 폭등했다.
더 큰 문제는 폭우 이후 사막 메뚜기떼 4000억 마리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일반 메뚜기보다 크고 공격적인 게 특징이다. 이 메뚜기떼는 하루에 3만5000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먹어 치운다. 바람을 타고 하루에 150㎞씩 이동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뒤 중동과 파키스탄 등을 지나 현재 중국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FAO는 국제사회에 1억3000만달러의 원조를 요청하면서 “대응을 지체할 경우 지금까지보다 15배 이상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블룸버그도 “전 세계를 금융위기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했다.
국제기구 “2억6500만 명 식량 위기”
FAO는 최근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지 않으면 글로벌 식량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식량 공급망이 붕괴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사재기와 수출 제한, 공급망 교란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식료품 가격 급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경고다. 세계식량계획(WFP) 역시 코로나19로 세계 2억65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식량 관련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쌀 자급률은 104.7%로 높은 편이지만 밀 등 다른 곡물을 포함한 자급률은 2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빵을 만드는 데 쓰이는 밀은 전량 수입하는 처지다. 한국이 지속적으로 식량 안보가 취약한 국가로 분류되는 배경이다. 정부는 세계 식량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수입처 다변화 등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