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집회 불허에 노동계, 선전전 벌이고 쇼핑몰 내 시위
"코로나19 확산으로 불황 심각해 시위 열기 떨어져"
노동절 맞아 홍콩서 산발적 시위…경찰과 충돌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홍콩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졌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불황 등으로 참여 열기가 높지는 않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의 범민주 진영에 속하는 노동단체 홍콩직공회연맹(CTU)은 이날 센트럴, 몽콕, 타이포 등 시내 곳곳에 부스를 설치하고 선전전을 벌였다.

애초 CTU는 노동절을 맞아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홍콩 경찰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이를 불허했다.

이에 CTU는 홍콩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을 고려해 대규모 집회나 행진 대신 시내 곳곳에 50여 개의 부스를 설치해 시민에게 노조 가입 등을 권유하는 새로운 시위 방식을 적용했다.

홍콩 정부는 지난달 말부터 공공장소에서 4인 초과 모임이나 집회를 금지했으며, 이는 이달 7일까지 적용된다.

캐럴 응 CTU 주석은 "지난해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와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홍콩 정부가 시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며 "시민들은 노조에 가입하거나 노조를 결성해 힘을 결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홍콩 경찰은 이날 시위에 대비해 3천여 명의 병력을 시내 곳곳에 배치했으며, CTU가 설치한 부스 주변에 4명이 넘게 모이면 이를 즉시 해산시켰다.

경찰은 최루탄, 고무탄, 물대포 등으로 무장했으며,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 주변 등에 많은 병력을 배치했다.

이날 마탁칭 CTU 부주석은 경찰의 집회 불허에 항의해 7명의 활동가와 함께 애드머럴티 지역의 홍콩 정부청사로 향했으나, 경찰은 그가 사회적 거리 두기 명령을 위반했다며 체포하고 일행에 벌금을 부과했다.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조슈아 웡은 "경찰은 친중파 진영이 설치한 부스는 4인 이상이 모여도 단속하지 않는다"며 "경찰은 코로나19 대응이라는 명목으로 범민주 진영을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오후 5시에 몽콕 등 홍콩 곳곳의 시위대는 일제히 손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5대 요구 중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 송환법 공식 철회 ▲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이날 저녁에는 시위대 수백 명이 사틴 지역의 뉴타운플라자 쇼핑몰에 모여 시위 주제가인 '홍콩에 영광을' 등을 부르고 '광복홍콩 시대혁명'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에 시위 진압 경찰이 쇼핑몰 내로 진입, 시위대에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며 진압에 나서 양측의 충돌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가 다치기도 했다.
노동절 맞아 홍콩서 산발적 시위…경찰과 충돌도
이날 홍콩 범민주 진영은 시위대에 우호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노란 상점'을 이용하자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으나, 이날 시위는 대체로 애초 예상보다 참여 열기가 훨씬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홍콩 시위대가 주로 이용하는 메신저 텔레그램 등에서는 이날 몽콕, 코즈웨이베이, 사이잉푼, 타이포, 쿤통 등 5개 지역에서 '플래시몹' 형태의 시위를 벌이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시위 참여 열기가 저조해진 것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불황 등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홍콩시립대 에드먼드 청 교수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은 시위보다는 정부의 경기부양책이나 경기 호전을 위한 사회 안정 등에 쏠렸다"고 분석했다.

전날까지 홍콩 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닷새 연속 0명을 기록했지만, 홍콩 정부가 파키스탄에서 전세기를 동원해 데려온 홍콩인 319명 중 2명이 이날 확진 판정을 받아 그 기록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날 홍콩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천39명으로 늘었다.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전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홍콩은 정치적 파괴와 폭력의 재발에 직면했다"며 "데니스 궉 등 야당 의원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등을 동원한 벼랑 끝 전술을 버려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에 최근 입법회에서 필리버스터 등으로 친중국 입법 등을 저지하고 있는 데니스 궉 의원은 "나는 오직 우리의 다음 세대가 진정한 민주 사회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랄 뿐"이라고 응수했다.

한편 홍콩 정부는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와 올해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손상된 홍콩의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앞으로 1년간 국제 홍보 캠페인을 전개할 방침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홍콩 정부가 비슷한 캠페인을 추진할 당시 국제적 광고회사들이 홍콩 경찰의 시위 강경 진압 등을 이유로 대거 불참을 선언한 터라 올해 이들의 태도가 주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