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가훈
몇 년 전 한 젊은 언론인으로부터 가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원래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가훈은 유교적 내용이 가득해 필자 부부가 30대 시절에 따로 하나 지은 ‘깊은 마음’이라는 가훈을 소개했다. 1990년대 초, 당시 초등학생인 딸에게 줄 가훈으로 세상을 사는 데 간직하며 지켜야 할 중요한 자세를 짧은 글로 작명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이 가훈은 내게도 늘 영향을 줬고, 좋아하는 글로 남게 됐다.

하필 영어로 번역하면 ‘딥 마인드(deep mind)’가 돼 몇 년 전 ‘알파고’를 탄생시킨 영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이름과 같은데, 그보다 나는 한자로 ‘심심(深心)’이라고 무심하게 부르는 맛을 더 좋아한다.

“깊은 마음은 무엇인가요.” “어떻게 갖게 됐나요.” 어려운 질문이 이어졌다. “‘마음이 깊어요’는 생각이 깊다는 것을 포함할 것이고, 가볍고 즉흥적이고 이기적이지 않으며 배려하는 마음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책을 많이 읽고 토론하다 보면 아는 것도 넓어지고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형성되고 따라서 행동과 판단이 경솔하지 않을 것이리라.

가훈은 일종의 가치 기준이다. 가훈이 가정에 필요하다면 회사에는 슬로건이 있다. 잘 알려진 것으로는 구글의 ‘악마가 되지 말자’, 애플의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가 있다. 기업의 창업 철학이 녹아 있고 직원의 행동 지침이 되는 슬로건은 마케팅에도 큰 영향을 주므로 모두들 앞다퉈 멋지게 짓는다. 외국에서는 사회공헌, 지구적 문제 해결, 창조정신 등을 구호로 내건 스타트업들이 투자나 인재 유치에 성공하며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곤 한다.

가훈이 슬로건이라면 이를 달성할 전략 계획과 실현 방안이 있어야 한다. ‘깊은 마음’은 매사에 자신의 의견을 가지라는 것이고, 이는 책에서 본 것, 들은 것, 미디어에서 접한 것을 무작정 믿고 따르지 말고 의문을 갖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왜” 또는 “왜 안 돼(why not)?”라는 질문을 수시로 던지고, 거꾸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인터넷에서 무서운 속도로 만들어지고 전파되는 가짜뉴스, 댓글을 끼리끼리 돌려보는 ‘버블 체임버(bubble chamber)’에 갇혀 있지 말아야 한다.

21세기도 한참 지난 지금, 가훈이 주는 의미는 예전과 다를 것이다. AI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고, 기업의 장래를 좌우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방어하고 결정하는 데 필요한 나침반 역할을 가훈이 해 줘야 한다면 과장된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