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 모텔 30곳에 ‘1㎜ 초소형 몰카’를 설치하고 투숙객 1600여명을 불법 촬영하면서 인터넷으로 생중계한 박모씨 등 두 명이 붙잡혔다. 이들은 불법 촬영물 약 800개를 자신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유료 사이트에 생중계했다. 경찰은 박씨 등을 구속송치했지만 해당 ‘몰카’를 시청한 사이트 회원 4099명은 수사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불법 촬영 음란물을 시청·소장하기만 사람은 처벌 대상에서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n번방 방지법’에 따르면 어떨까? 이들 4099명도 처벌 대상이 된다. n번방 방지법은 불법 촬영물을 보기만 한 사람도 처벌하게끔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한경닷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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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일당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각계각층에서 '성범죄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들어 국회와 정부, 법원에서도 성범죄 재발방지를 위한 각종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대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성범죄가 ‘젊은 날의 실수’ 정도가 아닌, 한 인간의 근본적인 존엄성 훼손과 맞닿아 있는 심각한 범죄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입법·사법·행정부 같은 방향으로

국회는 올해 초 텔레그램 n번방 의혹이 불거진 지 두 달 여만에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n번방 방지법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수위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존과 달리 성착취물을 소지한 사람 뿐만 아니라 단순히 보기만 한 사람들, 이를 통해 남을 협박한 사람들도 처벌대상에 포함시켰다.

n번방 방지법의 정식 명칭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처벌법) 개정안, 형법 개정안,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핵심은 '성폭력 처벌법' 개정안이다. 해당 법안에는 불법 성적 촬영물을 저장, 구입한 사람은 물론이고 시청한 사람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조주빈이나 '갓갓' 처럼 주도적인 역할을 하진 않았어도 남이 만든 성착취물을 공유하거나 저장한 사람도 해당 조항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성착취물을 이용해 남을 협박, 강요한 사람도 각각 징역 1년 이상, 징역 3년 이상의 형에 처하도록 했다.

행정부도 나섰다.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신상공개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 중 혐의가 중한 피의자는 수사단계서부터 신상을 적극 공개하기로 했다. 실제로 정부의 발표가 있은 지 하루 뒤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의 신상이 공개됐다. 신상정보 공개위원회를 통해 성범죄로 신상이 공개된 첫 사례다. 이후 조주빈의 공범인 '부따' 강훈, '이기야' 이원호의 신상도 차례로 공개됐다. 이원호는 현역 육군 일병인데 군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사법부는 성범죄 양형기준을 재검토하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 범죄에 최고 징역 13년형을 권고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청소년 성보호법상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11조 1항) 범죄의 법정형은 '징역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이다. 하지만 그 폭이 너무 넓다 보니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이에 대법 양형위는 기본형을 징역 4년~8년으로 하고 가중영역 상한을 징역 13년으로 권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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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의 일탈쯤 여겨선 안 돼"

디지털 성범죄에 엄중히 대응하는 입법·사법·행정부의 움직임은 해당 범죄에 대한 보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에서 비롯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 라는 청원이 올라온 지 3일만에 20만명 이상 동의해 청와대 공식 답변 요건을 채웠다. 지난달 16일에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달라는 세 번째 국민청원이 국회 상임위원회로 회부됐다.

전문가들은 입법·행정·사법부의 대책이 효과를 보기 위해선 성범죄가 인간의 근본적인 존엄성을 해치는 강력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는 "성범죄는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중한다면 할 수 없는 범죄"라며 "어린 나이에 있을 수 있는 일, 잠깐의 일탈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변호사는 '성범죄는 판결을 먹고 자란다'며 특히 법조계의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 범죄의 법정형 하한이 징역 5년인데 판사들은 3년 정도가 적당하다고 꼽는다"며 "기존 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선고했다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살인죄의 법정형이 5년 이상인데 성범죄는 사람이 죽은 건 아니니 그보다 적게줘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법관들이 많다"며 "성범죄의 파급력이나 확장성 등을 고려하면 과거보다 엄벌한 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