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먹고 크는 NPL시장…빛 보는 하나F&I
부실채권(NPL) 투자회사인 하나F&I가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다수 업종의 ‘간판 기업’마저 휘청이는 가운데 하나F&I는 굳건한 신용도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오히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하나F&I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하나F&I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평가한 뒤 A-를 부여했다. 기존에 달려 있던 ‘긍정적’ 등급전망도 그대로 유지했다. 하나F&I의 신용등급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올 들어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급감과 수익성 악화로 상당수 기업들의 등급전망이 줄줄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같은 업종 내에서도 하나F&I의 신용도 전망은 단연 돋보인다. 국내 최대 NPL 투자회사인 유암코(연합자산관리)는 ‘부정적’ 등급전망을 달고 있다. 유암코는 AA의 신용등급을 갖고 있지만 최근 NPL보다 기업구조조정 투자자산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수익 변동성이 커진 상태다. NPL 시장의 또 다른 경쟁사인 대신F&I는 A 신용등급을 갖고 있으며 등급전망은 ‘안정적’이다. 개발사업 진행에 따른 재무부담 확대로 신용평가사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불황 먹고 크는 NPL시장…빛 보는 하나F&I
하나F&I는 NPL 투자·관리만을 주력으로 한다. 여신전문금융업을 하다가 2013년엔 업종을 바꿨다. NPL 투자회사는 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NPL을 할인된 가격으로 사들여 담보 등을 처분해 투자원금이나 이자를 회수하는 일을 한다. 경기 회복이 더디거나 경기 침체 국면에서 한계 상황에 몰리는 기업이 늘어나면 NPL 시장도 성장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불황을 먹고 사는 시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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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F&I는 후발 주자지만 하나금융그룹의 자본확충 등 직간접적인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사세를 키웠다. 2014년 말만 해도 477억원에 그쳤던 NPL 자산은 지난해 말에는 8363억원으로 불었다. 그만큼 수익 기반이 확대·안정됐다는 말이다. 자본적정성도 놓치지 않았다. NPL 투자 자산이 계속 확대됐지만 하나은행 등의 지속적인 유상증자와 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자본적정성은 좋아졌다. 총자산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레버리지배율은 2015년 말 10.7배에서 지난해 말엔 오히려 6.7배로 낮아졌다.

수익성은 개선되고 있다. 하나F&I는 기존 캐피털 자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대손부담에 억눌렸다. 이에 따라 오랫동안 총자산순이익률(ROA)이 0%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2017년부터 대손부담이 줄고 NPL 투자 수익이 증가하면서 ROA는 1%대로 올라왔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국내 경기 둔화와 가계부채 부담 증가 등으로 인해 올해 지방은행을 중심으로 NPL이 증가할 수 있다고 봤다. NPL 시장 규모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 비해선 줄었지만 4조원대 초반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나금융이라는 ‘후광’도 하나F&I의 신용도를 뒷받침하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하나금융 내 하나F&I의 중요도와 통합도를 감안할 때 유사시 지원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하나금융의 손자회사였던 하나F&I는 지난해 말 하나금융의 자회사(지분율 99.7%)로 편입됐다.

NPL 시장이 불황을 먹고 큰다지만 코로나19가 하나F&I에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경제주체의 부실률이 높아지면 NPL 발생량도 늘어난다. 하지만 NPL의 주요 담보물인 부동산 업황에 따라 회수율과 회수 속도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불확실성에도 하나F&I의 유동성 대응능력은 좋은 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총 차입부채는 8100억원 정도인데 이 중 1년 이내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 비중은 약 34.6%(2800억원)다. 하나은행의 신용공여 한도(약 1600억원)와 현금보유액(600억원), 1년 안에 회수 가능한 자산(4485억원)까지 감안하면 유동성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황보창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단기성 차입부채가 원활하게 차환되고 자산 회수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하나F&I의 신용등급 상향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