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百, 50년 만에 '번듯한 사옥'…새로운 출발선에 선 정지선 회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재계 22위' 대기업 사옥이 슈퍼마켓 2층에 있었다고?
압구정 현대아파트 상가서 '비좁은 셋방살이' 끝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상가서 '비좁은 셋방살이' 끝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달 17일 서울 대치동으로 사옥을 옮겼다. 삼성역 교차로 인근이다. 지하 6층~지상 14층짜리 건물을 새로 지어 들어갔다.
본사를 이전하는 ‘큰일’이었지만 주변에 거의 알리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임을 감안해 별도 행사도 치르지 않았다.
현대백화점 한 임원은 “다른 대기업 사옥과 견줘 대단할 것도 없다”며 말을 아꼈다. 실제 대기업 사옥치고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인근 트레이드 타워, 포스코 타워 등 초대형 건물에 비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임원 말처럼 ‘대단할 것 없다’고 생각하는 임직원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감회가 남다른 이들이 다수다. 회사가 50년 만에 가져보는 ‘제대로 된’ 사옥이기 때문이다.
자산총액 약 16조원, 국내 재계 순위 22위, 작년 매출 약 20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이 그동안 변변한 사옥 하나 없었던 것은 의외다. 그 이유가 있었다. 상가 건물서만 50년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그룹에서 갈라져 나왔다.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은 현대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의 3남이다. 시작은 초라했다. 모태는 1971년 설립된 금강개발산업이다. 현대 임직원 복지를 주로 담당하던 회사였다. 직원들 유니폼과 신발, 장갑 등을 공급했다. 현대건설 인부들이 밥 먹는 ‘함바집’도 운영했다. 1970년대 중동 건설붐이 일었던 시기, 현대건설 현장에 늘 금강개발 식당이 있었다.
매출 대부분은 현대그룹에서 나왔다. 첫 본사 사무실도 현대건설이 지은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였다. 모기업 현대그룹 눈치를 늘 살펴야 했다. 돈 벌었다고 사옥을 사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1983년 본사를 서울 압구정동으로 옮겼다. 현대건설이 지은 ‘압구정 현대아파트’ 상가 내 슈퍼마켓 운영권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슈퍼마켓 바로 위가 사무실이었다. 이듬해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또다른 상가인 ‘금강쇼핑센터’로 이전했다. 세운상가에 이은 또 한번의 ‘상가 사옥’이었다.
백화점 짓고 승승장구했지만…
‘압구정 시대’를 연 뒤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 1985년 압구정 현대백화점을 지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지금의 유통 대기업 토대가 이때 마련됐다.
백화점 진출은 유통 사업을 확장한다는 의미 이상이었다. 현대그룹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사업을 할 수 있었다. 백화점은 첫해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현대백화점그룹 매출은 1985년 785억원에서 이듬해인 1986년 그 두 배인 1423억원에 이르렀다. 현대그룹 매출 의존도는 확 떨어졌다. 60%가 넘던 것이 단숨에 30% 미만이 됐다. ‘제2의 창업’을 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승승장구했다. 무역센터점, 부평점, 부산점 등 백화점을 줄줄이 열었다. 2000년에는 사명을 지금의 ‘현대백화점’으로 바꿨다. 현대 관계사였지만 ‘현대’를 사명에도 못 썼던 설움을 이때 풀었다.
그럼에도 사옥만큼은 그대로였다. 현대그룹,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 ‘형제 기업’들이 당시 외환위기와 경영권 분쟁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았지만 ‘있는 티’를 내선 안 됐다. 외형과 어울리지 않게 본사를 37년간이나 아파트 상가에 둔 이유였다.
하지만 사세가 급격히 커지면서 현대백화점그룹은 압구정 사옥을 도저히 그냥 쓸 수 없었다. 사업을 다각화한 뒤 직원 수용이 안 됐다. 2000년대 초반 TV홈쇼핑을 시작으로 유선방송, 단체급식, 패션, 가구 등의 사업에 잇달아 진출했다. 작년 말 기준 계열사 수는 25개, 직원 수는 약 1만6000명. 공간이 부족해 사무실을 쪼개 이곳저곳에 분산해야 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현대아파트 주민들 민원도 있었다. 외부 사람들 방문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사옥 이전은 불가피했다.
“새 사옥은 도약의 의미”
현대백화점에 새 사옥은 ‘도약’을 의미한다. 과거 현대백화점은 소극적이란 평가를 많이 들었다. 재계에선 “회사가 가진 실력, 규모에 비해 겸손하다”고 했다. 야심을 숨기고 힘을 기르는 데 주력했다. 중국의 옛 대외 전략 ‘도광양회(韜光養晦)’와 닮았다. 상가 사옥은 그 상징과도 같았다. 사옥 이전을 계기로 현대백화점이 달라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공격적 사업계획은 이미 잡혀 있다. 오는 6월과 11월에 각각 대전, 경기 남양주에 아울렛을 연다. 내년 상반기에는 여의도에 서울 최대 규모 백화점도 개점한다. 업계 1위 롯데가 점포의 약 30%를 줄이기로 한 것과 딴판이다.
2세 기업인 정지선 회장(사진)의 ‘신유통 전략’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2007년 회장에 취임한 그는 유통 연관 사업 진출을 주도했다. 패션 기업 한섬, 가구 회사 리바트, 건자재 기업 한화L&C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생활문화기업’이란 새 비전도 세웠다. 추가 사업 확장도 검토 중이다. 이를 위해 ‘비핵심 사업’으로 분류되는 유선방송 사업자 현대HCN을 팔려고 내놨다. 매각대금은 인수합병(M&A) 재원으로 쓰일 전망이다.
‘더불어 경영’도 화두다. 단순히 ‘착한 기업’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거 현대그룹 성장과 함께 덩치를 키운 경험은 ‘혼자서 잘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각인시켰다. 정지선 회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임원회의 때 “어려운 협력사를 챙겨라”고 강조했다. 협력사와 함께 더불어 성장하는 ‘모선’ 역할을 자청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본사를 이전하는 ‘큰일’이었지만 주변에 거의 알리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임을 감안해 별도 행사도 치르지 않았다.
현대백화점 한 임원은 “다른 대기업 사옥과 견줘 대단할 것도 없다”며 말을 아꼈다. 실제 대기업 사옥치고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인근 트레이드 타워, 포스코 타워 등 초대형 건물에 비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임원 말처럼 ‘대단할 것 없다’고 생각하는 임직원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감회가 남다른 이들이 다수다. 회사가 50년 만에 가져보는 ‘제대로 된’ 사옥이기 때문이다.
자산총액 약 16조원, 국내 재계 순위 22위, 작년 매출 약 20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이 그동안 변변한 사옥 하나 없었던 것은 의외다. 그 이유가 있었다. 상가 건물서만 50년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그룹에서 갈라져 나왔다.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은 현대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의 3남이다. 시작은 초라했다. 모태는 1971년 설립된 금강개발산업이다. 현대 임직원 복지를 주로 담당하던 회사였다. 직원들 유니폼과 신발, 장갑 등을 공급했다. 현대건설 인부들이 밥 먹는 ‘함바집’도 운영했다. 1970년대 중동 건설붐이 일었던 시기, 현대건설 현장에 늘 금강개발 식당이 있었다.
매출 대부분은 현대그룹에서 나왔다. 첫 본사 사무실도 현대건설이 지은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였다. 모기업 현대그룹 눈치를 늘 살펴야 했다. 돈 벌었다고 사옥을 사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1983년 본사를 서울 압구정동으로 옮겼다. 현대건설이 지은 ‘압구정 현대아파트’ 상가 내 슈퍼마켓 운영권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슈퍼마켓 바로 위가 사무실이었다. 이듬해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또다른 상가인 ‘금강쇼핑센터’로 이전했다. 세운상가에 이은 또 한번의 ‘상가 사옥’이었다.
백화점 짓고 승승장구했지만…
‘압구정 시대’를 연 뒤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 1985년 압구정 현대백화점을 지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지금의 유통 대기업 토대가 이때 마련됐다.
백화점 진출은 유통 사업을 확장한다는 의미 이상이었다. 현대그룹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사업을 할 수 있었다. 백화점은 첫해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현대백화점그룹 매출은 1985년 785억원에서 이듬해인 1986년 그 두 배인 1423억원에 이르렀다. 현대그룹 매출 의존도는 확 떨어졌다. 60%가 넘던 것이 단숨에 30% 미만이 됐다. ‘제2의 창업’을 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승승장구했다. 무역센터점, 부평점, 부산점 등 백화점을 줄줄이 열었다. 2000년에는 사명을 지금의 ‘현대백화점’으로 바꿨다. 현대 관계사였지만 ‘현대’를 사명에도 못 썼던 설움을 이때 풀었다.
그럼에도 사옥만큼은 그대로였다. 현대그룹,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 ‘형제 기업’들이 당시 외환위기와 경영권 분쟁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았지만 ‘있는 티’를 내선 안 됐다. 외형과 어울리지 않게 본사를 37년간이나 아파트 상가에 둔 이유였다.
하지만 사세가 급격히 커지면서 현대백화점그룹은 압구정 사옥을 도저히 그냥 쓸 수 없었다. 사업을 다각화한 뒤 직원 수용이 안 됐다. 2000년대 초반 TV홈쇼핑을 시작으로 유선방송, 단체급식, 패션, 가구 등의 사업에 잇달아 진출했다. 작년 말 기준 계열사 수는 25개, 직원 수는 약 1만6000명. 공간이 부족해 사무실을 쪼개 이곳저곳에 분산해야 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현대아파트 주민들 민원도 있었다. 외부 사람들 방문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사옥 이전은 불가피했다.
“새 사옥은 도약의 의미”
현대백화점에 새 사옥은 ‘도약’을 의미한다. 과거 현대백화점은 소극적이란 평가를 많이 들었다. 재계에선 “회사가 가진 실력, 규모에 비해 겸손하다”고 했다. 야심을 숨기고 힘을 기르는 데 주력했다. 중국의 옛 대외 전략 ‘도광양회(韜光養晦)’와 닮았다. 상가 사옥은 그 상징과도 같았다. 사옥 이전을 계기로 현대백화점이 달라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공격적 사업계획은 이미 잡혀 있다. 오는 6월과 11월에 각각 대전, 경기 남양주에 아울렛을 연다. 내년 상반기에는 여의도에 서울 최대 규모 백화점도 개점한다. 업계 1위 롯데가 점포의 약 30%를 줄이기로 한 것과 딴판이다.
2세 기업인 정지선 회장(사진)의 ‘신유통 전략’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2007년 회장에 취임한 그는 유통 연관 사업 진출을 주도했다. 패션 기업 한섬, 가구 회사 리바트, 건자재 기업 한화L&C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생활문화기업’이란 새 비전도 세웠다. 추가 사업 확장도 검토 중이다. 이를 위해 ‘비핵심 사업’으로 분류되는 유선방송 사업자 현대HCN을 팔려고 내놨다. 매각대금은 인수합병(M&A) 재원으로 쓰일 전망이다.
‘더불어 경영’도 화두다. 단순히 ‘착한 기업’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거 현대그룹 성장과 함께 덩치를 키운 경험은 ‘혼자서 잘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각인시켰다. 정지선 회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임원회의 때 “어려운 협력사를 챙겨라”고 강조했다. 협력사와 함께 더불어 성장하는 ‘모선’ 역할을 자청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