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업계가 우려하던 ‘수출 절벽’이 현실이 됐다. 현대자동차의 지난달 해외 판매량은 작년 4월 대비 70% 넘게 줄었다. 기아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의 해외 판매도 모두 반토막 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자동차시장이 마비된 결과다. 해외 판매 부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들은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10~20%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해외 판매 부진이 장기화하면 자동차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나마 국내 시장은 굳건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해진 데다 완성차업체들이 공격적으로 판매에 나선 결과다.
한국車 해외판매 63% 급감했지만 '신차 효과' 내수로 버텼다
르노삼성 수출 73% 줄어

현대차는 지난달 해외시장에서 8만8037대를 판매했다고 6일 발표했다. 전년 동기(29만7540대) 대비 70.4% 줄었다. 2006년 7월(5만7732대) 이후 가장 나쁜 성적이다. 회사 관계자는 “창사 이후 월별 해외 판매가 70% 넘게 줄어든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기아차 해외 판매는 작년 4월 18만5943대에서 지난달 8만3855대로 떨어졌다. 감소폭은 54.9%다. 현대·기아차는 해외에서 매월 50만 대 이상의 차량을 팔아왔다. 코로나19로 중국 공장 가동이 장기간 중단됐을 때도 39만4917대를 판매했다. 하지만 지난달 두 회사의 해외 판매는 15만 대 수준에 그쳤다.

르노삼성과 쌍용차의 수출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72.5%와 67.4% 감소했다. 가장 감소폭이 적은 한국GM도 32.8% 떨어졌다. 완성차 5사의 해외 판매 합계는 19만6803대에 그쳤다. 작년 4월(52만6275대)과 비교하면 62.5% 감소했다.

완성차업체의 해외 판매 급감은 주요국 딜러점 다수가 영업을 중단한 영향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해외 공장도 한동안 가동 중단 상태였다. 미국 자동차 딜러점은 80% 넘게 영업을 중단하거나 단축근무를 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자동차 판매는 절반 이상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과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국가 정부는 자동차 판매점 영업을 한동안 중단시켰다. 지난달 영국 신차 판매량은 약 4000대로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2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주민의 외출을 제한하고 있는 인도에서는 지난달 차가 한 대도 안 팔렸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수출 비중이 높은 일부 국내 공장의 가동을 일시적으로 멈춰야 했다. 당분간 해외 판매가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직 많은 국가가 봉쇄 조치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 소비자들이 한동안 자동차 구매를 꺼릴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세계 모든 자동차업체가 지난달 사상 최악의 성적을 냈다”며 “일부 회사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시장 상황이 나쁘다”고 말했다.

내수는 오히려 늘어

완성차 5사의 국내 판매는 지난달 같은 기간에 비해 증가했다. 르노삼성은 전년 동기 대비 78.4%, 기아차는 19.9% 늘었다. 최근 나온 신차(XM3, 쏘렌토, K5 등)들이 판매를 견인했다. 현대차와 한국GM의 내수 실적은 작년 4월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쌍용차만 내수시장에서도 부진(-41.4%)했다. 5개사의 국내 판매를 더하면 14만5141대로, 전년 동월 대비 6.5% 증가했다.

코로나19가 진정세를 보이면서 소비심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덜 위축된 결과로 풀이된다. 개별소비세 인하(5%→1.5%)도 내수를 촉진한 요인 중 하나다.

지난달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는 현대차 준대형 세단 그랜저(1만5000대)였다. 2위는 기아차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쏘렌토(9270대)다. 지난 3월 중순 출시된 이후 판매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3위는 현대차 준중형 세단 아반떼(8249대)다. 올해 초 나온 제네시스 브랜드의 GV80(4324대)과 G80(4416대)은 모두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르노삼성의 소형 SUV XM3는 6276대 팔렸다.

도병욱/김보형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