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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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로 넘어오는 연휴 중간에 주목할 만한 보고서가 하나 나왔다. 한국은행의 BOK경제연구에 실린 ‘2001년 이후 한국의 노동생산성 성장과 인적자본’이라는 연구논문이다. 몇 군데 매체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게 요지다. 2001~2008년 연평균 4.6%였던 노동생산성이 2010~2018년 2.67%로 거의 반 토막 났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노동생산성은 GDP를 총 노동시간으로 나눈 것으로, 근로자들이 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는 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산업의 혁신이 줄어들고, 모두가 우려하는 저성장에 왜 빠져들게 됐는지 설명해주는 셈이다.

급등한 임금에 맞는 생산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임금에는 거품이 끼게 되고, 경제는 전체적으로 부실해질 것이다. 투입(input) 대비 산출(output)이 불균형이면 그게 부실 아닌가. 이 문제와 관련해 되돌아볼 내용이 있다. 이른바 ‘1987년 체제’이후 임금의 급상승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느냐 하는 것이다. 1988년(17.6%)~1995년(15.1%) 사이 임금상승률이 해마다 두 자리로 오른 반면, 경제성장률은 5.9~9.2%였다. 박기성 교수(성신여대) 등의 연구결과를 보면 성장을 크게 웃도는 임금상승과 경제 위기와 무관하지가 않았다. 미증유의 ‘IMF외환위기’에 여러 원인이 작용했겠지만 임금체계의 거품과 부실 요인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1987년 체제’ 이후 국내에서는 노동조합 운동이 급격히 활발 왕성해졌고, 새로 설립된 노조가 급증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떻든 노사관계를 떼어놓고 우리 경제와 산업을 얘기하기는 어렵게 됐다. 노와 사가 함께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권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근래 갈등이 깊어지고 기업과 경영을 바라보는 관점에 간극이 더 커진 것도 사실이다.

경기 순환이 좋고 경제가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면 노사 간에 약간의 갈등은 묻혀갈 것이다. 파업 같은 강경 분규도 결국 정리된다. 하지만 대공황과 비교되기도 하는 지금 같은 위기에서는 달라져야 한다.

99개월 만에 수입보다 적어진(무역 적자) 4월 수출 통계는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거듭 일깨워줄 만 했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24%나 급감했는데, 5월 이후의 추세도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전체 취업자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줄어들었다는 발표도 함께 있었다. 전년보다 취업자가 22만5000명 줄어들었다는 고용노동부의 ‘3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가 그 내용이다. 경제관련 지표나 통계 중에 좋은 건 없어진지도 한참 됐다. ‘전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가뜩이나 내리막길을 걸어온 한국 경제에 코로나 충격은 그만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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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제는 일자리로 귀착되고, ‘일자리 지키기’는 정부 기업 개인들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고용절벽이 계속되면 급팽창한 복지의 유지는 물론 정부 지출 자체가 어렵게 된다. 종국에는 국가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다. 대통령이나 정부쪽 말을 들어보면 이 문제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인식은 하고 있는 것 같다. 조(兆)단위가 기본인 정부의 잇단 지원 대책도 그렇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정부의 장담에 크게 의심 가는 대목이 생긴다. 매사 대립적인 노사 관계에서 정부의 스탠스 문제다. 고용과 노동 문제에서 양측의 견해차는 너무나 현격한 게 현실인데, 정부는 어느 지점에 어떻게 서 있나. 당장 ‘일자리 지키기’가 노조단체들이 주장하는 “어떻든 해고는 안 돼” 식으로 고용관계의 유지가 아니라, 경제 주체들의 고통분담을 통한 ‘일자리의 보호와 유지’가 되어야 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 전제에서 정부는 기업 지원에 나서되 노사 양쪽에 균형을 맞춰야 하고, 경영진과 노조도 비례적으로 기득권 내놓기에 적극 나서야 코로나 위기에도 일자리가 유지될 수 있다. 나아가 고용·노동시장의 해묵은 과제도 개혁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나가야 한다.

정부는 과연 노사 양쪽과 등거리 정책을 펴면서 ‘딱 한가운데’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나. 급등한 최저임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을 비롯한 고용제도, 주52시간 근무제 등 근로시간, 파견근무 대체근무 등 근로형태 등에서 현 정부는 제대로 중립을 지켰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 문제가 된 건설노조의 횡포나 이전의 이런저런 노조의 불법적 행태에도 법적용이 엄격했다고 보기 어렵다. 법집행 최일선의 경찰도 그런 식이었고, 법원에서도 그런 기류가 보였다. 이전에는 노조는 약자라는 인식의 ‘언더도그마 현상’이 보였다면,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강자가 된 노조세력의 눈치를 살피는 쪽으로 정부와 사회의 기류가 바뀌었다고 하면 잘못된 진단일까.

장기간 겉돌았던 노사정 채널이 움직이는 분위기다. 거듭 정부 역할이 중요해졌다. 일각의 지적대로, 정부가 기존의 공식 노사정 협의체인 경사노위 체제를 거부해온 ‘민주노총 껴안기’에 나서면서 별도의 노사정 모임에 나서는 것도 그런 점에서 우려점이 적지 않다.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4.15 총선 후 외부단체와 가진 첫 정책협의회 상대도 한국노총이었다. 정당이 노조단체와 회동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지만, 경영계 단체와도 만날 것인지는 관심사가 된다. 더구나 민주당과 정책협의 회동에서 한국노총이 내놓은 요구는 기업과 경영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게 적지 않았던 만큼 경영계와의 조기 회동이나 요구 조건의 수용 여부는 향후 여당의 정책방향을 가늠하는데 주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노사정 협의 채널이 움직이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만,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노사가 한발씩이라도 양보하느냐가 관심사이지만, 더 큰 관건은 정부가 중립을 지키며 심판역할에 충실하느냐다.

정부의 노사관계에서 중립은 어려운 것인가. 그보다 중립을 안 하는지 못하는 지에 의구심이 간다. ‘노정(勞政) 연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된 것을 보면 안 하는 것 같다. 총선을 통한 노조 출신의 국회진출자가 늘어나고, 양대 노총의 거침없는 언행
5월로 넘어오는 연휴 중간에 주목할 만한 보고서가 하나 나왔다. 한국은행의 BOK경제연구에 실린 ‘2001년 이후 한국의 노동생산성 성장과 인적자본’이라는 연구논문이다. 몇 군데 매체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게 요지다. 2001~2008년 연평균 4.6%였던 노동생산성이 2010~2018년 2.67%로 거의 반 토막 났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노동생산성은 GDP를 총 노동시간으로 나눈 것으로, 근로자들이 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는 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산업의 혁신이 줄어들고, 모두가 우려하는 저성장에 왜 빠져들게 됐는지 설명해주는 셈이다.
급등한 임금에 맞는 생산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임금에는 거품이 끼게 되고, 경제는 전체적으로 부실해질 것이다. 투입(input) 대비 산출(output)이 불균형이면 그게 부실 아닌가. 이 문제와 관련해 되돌아볼 내용이 있다. 이른바 ‘1987년 체제’이후 임금의 급상승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느냐 하는 것이다. 1988년(17.6%)~1995년(15.1%) 사이 임금상승률이 해마다 두 자리로 오른 반면, 경제성장률은 5.9~9.2%였다. 박기성 교수(성신여대) 등의 연구결과를 보면 성장을 크게 웃도는 임금상승과 경제 위기와 무관하지가 않았다. 미증유의 ‘IMF외환위기’에 여러 원인이 작용했겠지만 임금체계의 거품과 부실 요인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1987년 체제’ 이후 국내에서는 노동조합 운동이 급격히 활발 왕성해졌고, 새로 설립된 노조가 급증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떻든 노사관계를 떼어놓고 우리 경제와 산업을 얘기하기는 어렵게 됐다. 노와 사가 함께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권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근래 갈등이 깊어지고 기업과 경영을 바라보는 관점에 간극이 더 커진 것도 사실이다.
경기 순환이 좋고 경제가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면 노사 간에 약간의 갈등은 묻혀갈 것이다. 파업 같은 강경 분규도 결국 정리된다. 하지만 대공황과 비교되기도 하는 지금 같은 위기에서는 달라져야 한다.
99개월 만에 수입보다 적어진(무역 적자) 4월 수출 통계는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거듭 일깨워줄 만 했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24%나 급감했는데, 5월 이후의 추세도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전체 취업자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줄어들었다는 발표도 함께 있었다. 전년보다 취업자가 22만5000명 줄어들었다는 고용노동부의 ‘3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가 그 내용이다. 경제관련 지표나 통계 중에 좋은 건 없어진지도 한참 됐다. ‘전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가뜩이나 내리막길을 걸어온 한국 경제에 코로나 충격은 그만큼 크다.
결국 문제는 일자리로 귀착되고, ‘일자리 지키기’는 정부 기업 개인들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고용절벽이 계속되면 급팽창한 복지의 유지는 물론 정부 지출 자체가 어렵게 된다. 종국에는 국가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다. 대통령이나 정부쪽 말을 들어보면 이 문제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인식은 하고 있는 것 같다. 조(兆)단위가 기본인 정부의 잇단 지원 대책도 그렇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정부의 장담에 크게 의심 가는 대목이 생긴다. 매사 대립적인 노사 관계에서 정부의 스탠스 문제다. 고용과 노동 문제에서 양측의 견해차는 너무나 현격한 게 현실인데, 정부는 어느 지점에 어떻게 서 있나. 당장 ‘일자리 지키기’가 노조단체들이 주장하는 “어떻든 해고는 안 돼” 식으로 고용관계의 유지가 아니라, 경제 주체들의 고통분담을 통한 ‘일자리의 보호와 유지’가 되어야 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 전제에서 정부는 기업 지원에 나서되 노사 양쪽에 균형을 맞춰야 하고, 경영진과 노조도 비례적으로 기득권 내놓기에 적극 나서야 코로나 위기에도 일자리가 유지될 수 있다. 나아가 고용·노동시장의 해묵은 과제도 개혁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나가야 한다.
정부는 과연 노사 양쪽과 등거리 정책을 펴면서 ‘딱 한가운데’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나. 급등한 최저임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을 비롯한 고용제도, 주52시간 근무제 등 근로시간, 파견근무 대체근무 등 근로형태 등에서 현 정부는 제대로 중립을 지켰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 문제가 된 건설노조의 횡포나 이전의 이런저런 노조의 불법적 행태에도 법적용이 엄격했다고 보기 어렵다. 법집행 최일선의 경찰도 그런 식이었고, 법원에서도 그런 기류가 보였다. 이전에는 노조는 약자라는 인식의 ‘언더도그마 현상’이 보였다면,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강자가 된 노조세력의 눈치를 살피는 쪽으로 정부와 사회의 기류가 바뀌었다고 하면 잘못된 진단일까.
장기간 겉돌았던 노사정 채널이 움직이는 분위기다. 거듭 정부 역할이 중요해졌다. 일각의 지적대로, 정부가 기존의 공식 노사정 협의체인 경사노위 체제를 거부해온 ‘민주노총 껴안기’에 나서면서 별도의 노사정 모임에 나서는 것도 그런 점에서 우려점이 적지 않다.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4.15 총선 후 외부단체와 가진 첫 정책협의회 상대도 한국노총이었다. 정당이 노조단체와 회동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지만, 경영계 단체와도 만날 것인지는 관심사가 된다. 더구나 민주당과 정책협의 회동에서 한국노총이 내놓은 요구는 기업과 경영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게 적지 않았던 만큼 경영계와의 조기 회동이나 요구 조건의 수용 여부는 향후 여당의 정책방향을 가늠하는데 주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노사정 협의 채널이 움직이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만,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노사가 한발씩이라도 양보하느냐가 관심사이지만, 더 큰 관건은 정부가 중립을 지키며 심판역할에 충실하느냐다.
정부의 노사관계에서 중립은 어려운 것인가. 그보다 중립을 안 하는지 못하는 지에 의구심이 간다. ‘노정(勞政) 연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된 것을 보면 안 하는 것 같다. 총선을 통한 노조 출신의 국회진출자가 늘어나고, 양대 노총의 거침없는 언행과 행보를 보면 못 하는 것도 같다. 어느 쪽이든 문제다. 정부가 일자리 지키기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노사 간 중립에 서서 엄정한 심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안되면 예산은 아무리 퍼부어도 헛일이 될 것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