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아버지 술잔의 절반은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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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발은/십구 문 반./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그들 옆에 벗으면/육 문 삼의 코가 납작한/귀염둥아 귀염둥아/우리 막내둥아.//미소하는/내 얼굴을 보아라./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여기는/지상./연민한 삶의 길이여./내 신발은 십구 문 반.’
박목월 시인이 늦은 밤 현관에 놓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보고 쓴 시 ‘가정’의 한 대목이다. 방안에 들어온 그는 ‘아랫목에 모인/아홉 마리의 강아지야/강아지 같은 것들아./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내가 왔다./아버지가 왔다./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아니 지상에는/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존재한다’며 가장의 비애를 털어놨다.
그는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는 극찬을 들은 시인이지만 가족 건사하기도 버거울 만큼 가난했다. 아이 입학식 때 신발이 없어 ‘헝겊 덧신’을 신겨야 했다. 공책은 종이묶음을 꿰맨 것으로 대신했다. 그 위에 이름을 써 주다 떨군 눈물에 글자가 번지기도 했다. 그런 궁핍을 딛고 아이들을 문인, 화가, 디자이너, 과학자로 키웠다.
세월이 흘러도 아버지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들’에 나오듯이 ‘석 달치 사글세가 밀린 지하셋방’과 ‘인근 야산의 고사목’을 자처하면서 ‘햇볕이 잘 드는 전셋집을 얻어 떠나라’, ‘나를 베어 화톳불을 지펴서 몸을 녹여라’고 권하는 게 아버지다.
자식들은 늦게야 그 빈자리를 발견한다. 공광규 시인은 광산촌에서 고생한 아버지의 삶을 ‘소주병’이란 시에 담았다. ‘술병은 잔에다/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속을 비워 간다/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길거리나/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문 밖에서/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나가 보니/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빈 소주병이었다.’
예전엔 자식이 졸업하면 취직해서 부모 부담을 덜어주었지만, 요즘은 아버지가 미취업 자녀와 노부모를 함께 부양하는 처지가 됐다. 제 살까지 새끼 먹이로 내어주는 염낭거미와 닮았다. 지출 많은 ‘가정의 달’에는 더욱 등골이 휜다.
그래서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김현승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했을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감옥을 지키던 사람도/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다르지 않다. 그 눈물에 젖어보지 않은 아버지가 어디 있으랴.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박목월 시인이 늦은 밤 현관에 놓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보고 쓴 시 ‘가정’의 한 대목이다. 방안에 들어온 그는 ‘아랫목에 모인/아홉 마리의 강아지야/강아지 같은 것들아./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내가 왔다./아버지가 왔다./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아니 지상에는/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존재한다’며 가장의 비애를 털어놨다.
그는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는 극찬을 들은 시인이지만 가족 건사하기도 버거울 만큼 가난했다. 아이 입학식 때 신발이 없어 ‘헝겊 덧신’을 신겨야 했다. 공책은 종이묶음을 꿰맨 것으로 대신했다. 그 위에 이름을 써 주다 떨군 눈물에 글자가 번지기도 했다. 그런 궁핍을 딛고 아이들을 문인, 화가, 디자이너, 과학자로 키웠다.
세월이 흘러도 아버지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들’에 나오듯이 ‘석 달치 사글세가 밀린 지하셋방’과 ‘인근 야산의 고사목’을 자처하면서 ‘햇볕이 잘 드는 전셋집을 얻어 떠나라’, ‘나를 베어 화톳불을 지펴서 몸을 녹여라’고 권하는 게 아버지다.
자식들은 늦게야 그 빈자리를 발견한다. 공광규 시인은 광산촌에서 고생한 아버지의 삶을 ‘소주병’이란 시에 담았다. ‘술병은 잔에다/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속을 비워 간다/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길거리나/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문 밖에서/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나가 보니/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빈 소주병이었다.’
예전엔 자식이 졸업하면 취직해서 부모 부담을 덜어주었지만, 요즘은 아버지가 미취업 자녀와 노부모를 함께 부양하는 처지가 됐다. 제 살까지 새끼 먹이로 내어주는 염낭거미와 닮았다. 지출 많은 ‘가정의 달’에는 더욱 등골이 휜다.
그래서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김현승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했을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감옥을 지키던 사람도/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다르지 않다. 그 눈물에 젖어보지 않은 아버지가 어디 있으랴.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