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이란을 보는 '오만한 그들'의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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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테크바르'
이란의 관점을 이해하고 싶거나 그들의 언행을 비판하려 한다면 이 파르시(이란어) 단어를 알아두는 게 좋다.
이란의 영자 매체는 이 단어를 통상 'arrogance'로 번역한다.
한국어로는 오만 또는 거만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에스테크바르는 이란에서 정치인이나 군인의 연설, 기자회견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이 단어는 사람의 성품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이란의 숙적 미국과 이스라엘 두 곳을 지목하기 때문이다.
이 단어의 어감을 조금 세심하게 살피자면 한국어 오만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단지 거드름을 피우는 데 그치지 않고 남을 무시하면서 괴롭히고, 우월적 권리나 위치를 이용해 약자가 볼 피해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일방적으로 아무렇게나 하는 태도다.
미국이 보기에 이란은 불량국가이자 테러 집단이겠지만 이란의 입장에선 미국과 이스라엘만큼 에스테크바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나라는 없을 성싶다.
이란이 보기엔 미국과 이스라엘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제적 합의도, 국제법도 뒤집을 수 있고 심지어 타국의 주권과 영토까지 제멋대로 빼앗는 오만의 화신일 테다.
수십년간 엮인 미국과 이란의 악연을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장 2년 전 미국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미국은 이란이 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들이민 구실은 '버락 오바마 정부의 핵합의로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을 수 없다.
이란 정권은 핵무기를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낸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란은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전부였다.
싫다는 데엔 이유나 논리가 없는 법이다.
이란에 대한 이런 태도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와 같은 서방 유럽도 다르지 않다.
이런 오만 속엔 1979년 이슬람혁명 직전까지 한 세기동안 이란의 정치, 경제, 외교를 좌지우지해봤다는 멀지 않은 경험과 최고지도자를 정점으로 하는 신정일치의 이란 통치 체제를 전근대적이고 비정상으로 얕보는 체제의 우월감이 짙게 묻어난다.
정교분리의 기독교적 역사관에서 신정일치는 '개혁'의 대상이다.
"내가 옳고, 이란은 틀리다.
" 에스테크바르다.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란에 대한 오만은 편견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서방이 떨쳐내지 못하는 이란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개개인이 직접 보고들은 단편적 정보가 아니라 서방 미디어의 수십년에 걸친 팩트를 섞은 '작업'의 결과라는 점에서 소설 속 엘리자베스와는 다르다.
"왜 테헤란은 반정부 저항이라고 하고 런던은 폭동이라고 하는가"
2017년 12월 말부터 약 열흘간 이란 곳곳에서 민생고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이란 당국은 이를 유혈진압한 일이 있었다.
서방 매체는 일제히 이를 '반정권 항거', '반정부 시민 저항'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이란 국영방송은 2011년 8월초 런던에서 한 주간 일어난 폭력시위 장면을 내보내면서 "두 사건 모두 시위대 일부가 공공 기물을 파손하고 거리에서 불을 질렀다.
무엇이 다른가"라고 질문했다.
테헤란과 런던에서 일어난 폭력 시위 모두 정부와 사회에 쌓인 불만이 표출됐다는 공통점이 있는 데도 서방 매체에선 전자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으로, 후자는 국가 시스템을 공격하는 불법 행위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핵합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했을 때 서방 언론은 '탈퇴'(withdraw)라고 표현했고 이란이 이에 대응해 일부 조항을 지키지 않겠다고 하자 '위반'(violate), '파기'(break)라고 적었다.
이란은 항상 불법적이고 수상쩍으며 돌발적이라는 편견을 강화하는 '작업'인 셈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반복됐다.
이란은 미국, 유럽보다 먼저 코로나19가 확산해 큰 인명피해가 났다.
부통령, 장·차관, 고위 성직자가 속속 감염되거나 사망하자 서방 언론은 즉시 이란 정부의 대혼란과 붕괴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코로나19의 불길은 곧 유럽으로 옮아갔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감염돼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가 정상으로는 처음 감염됐는데도 영국 정부의 붕괴를 거론하는 서방 매체는 어느 한 곳도 없었다.
당연히 이란과 영국 어느 곳도 정부가 붕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3월엔 코로나19의 진원이었던 이란 중부 도시 곰 주변 공동묘지에 구덩이 수십개가 미국 상업 위성에 찍힌 적이 있다.
미국 언론은 이를 근거로 이란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대규모로 발생했고, 이 구덩이는 이란 정부가 사망자 수를 은폐하려고 시신을 몰래 집단매장하기 위해 마련된 곳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란 정부는 이 공동묘지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발표했다는 근거를 댔지만 서방의 지독한 편견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달 뒤 상황은 역전됐다.
미국 뉴욕 인근 하트섬에서 코로나19로 숨진 무연고자의 시신이 담긴 목관 수십 개를 매장하는 장면이 공개된 것이다.
미국 주류 언론은 이에 대해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숨기려고 몰래 매장한다는 의혹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그저 '참혹한 장면'이라고 묘사했다.
이란은 모든 것이 수상하다고 보는 서방 매체의 일관되고 일치된 편견의 단면이다.
이란 턱밑인 걸프 지역과 그 앞바다에 미국의 최신 전략자산이 배치된다는 기사 아래에는 전쟁과 군사 충돌을 걱정하는 댓글보다는 '이란은 한 번 혼나보라'는 식의 댓글이 따라붙기 일쑤다.
미국이 한국의 최대 혈맹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적성국인 이란이 한국의 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제 관계는 그렇게 이분되지 않는다.
적의 적이 아군이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과 이란이 물리적으로 충돌한다면 그 즉시 유가가 폭등해 한국 국민은 주유소에 가기가 부담스러워진다.
그런데도 미국이 보유한 세계 최강의 첨단 무기가 마치 국군의 전력인 양 착각하는 태도는 제3세계에 대한 서방 언론의 편견에 수십년간 물들어 생겨난 기묘한 오만이 아닐까 한다.
남이 정한 편견에 휩쓸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코로나19 이후 국제 사회의 질서가 재편되는 '뉴노멀'의 시대가 온다면 더욱 그렇다.
참고로, 이란은 에스테크바르에 영국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이란이 부르는 영국의 별칭은 '교활한 여우'. 미국처럼 힘이 압도적이지 않은데다 미국과 이란을 이간질해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려 한다는 뜻에서다.
/연합뉴스
이란의 관점을 이해하고 싶거나 그들의 언행을 비판하려 한다면 이 파르시(이란어) 단어를 알아두는 게 좋다.
이란의 영자 매체는 이 단어를 통상 'arrogance'로 번역한다.
한국어로는 오만 또는 거만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에스테크바르는 이란에서 정치인이나 군인의 연설, 기자회견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이 단어는 사람의 성품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이란의 숙적 미국과 이스라엘 두 곳을 지목하기 때문이다.
이 단어의 어감을 조금 세심하게 살피자면 한국어 오만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단지 거드름을 피우는 데 그치지 않고 남을 무시하면서 괴롭히고, 우월적 권리나 위치를 이용해 약자가 볼 피해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일방적으로 아무렇게나 하는 태도다.
미국이 보기에 이란은 불량국가이자 테러 집단이겠지만 이란의 입장에선 미국과 이스라엘만큼 에스테크바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나라는 없을 성싶다.
이란이 보기엔 미국과 이스라엘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제적 합의도, 국제법도 뒤집을 수 있고 심지어 타국의 주권과 영토까지 제멋대로 빼앗는 오만의 화신일 테다.
수십년간 엮인 미국과 이란의 악연을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장 2년 전 미국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미국은 이란이 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들이민 구실은 '버락 오바마 정부의 핵합의로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을 수 없다.
이란 정권은 핵무기를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낸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란은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전부였다.
싫다는 데엔 이유나 논리가 없는 법이다.
이란에 대한 이런 태도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와 같은 서방 유럽도 다르지 않다.
이런 오만 속엔 1979년 이슬람혁명 직전까지 한 세기동안 이란의 정치, 경제, 외교를 좌지우지해봤다는 멀지 않은 경험과 최고지도자를 정점으로 하는 신정일치의 이란 통치 체제를 전근대적이고 비정상으로 얕보는 체제의 우월감이 짙게 묻어난다.
정교분리의 기독교적 역사관에서 신정일치는 '개혁'의 대상이다.
"내가 옳고, 이란은 틀리다.
" 에스테크바르다.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란에 대한 오만은 편견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서방이 떨쳐내지 못하는 이란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개개인이 직접 보고들은 단편적 정보가 아니라 서방 미디어의 수십년에 걸친 팩트를 섞은 '작업'의 결과라는 점에서 소설 속 엘리자베스와는 다르다.
"왜 테헤란은 반정부 저항이라고 하고 런던은 폭동이라고 하는가"
2017년 12월 말부터 약 열흘간 이란 곳곳에서 민생고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이란 당국은 이를 유혈진압한 일이 있었다.
서방 매체는 일제히 이를 '반정권 항거', '반정부 시민 저항'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이란 국영방송은 2011년 8월초 런던에서 한 주간 일어난 폭력시위 장면을 내보내면서 "두 사건 모두 시위대 일부가 공공 기물을 파손하고 거리에서 불을 질렀다.
무엇이 다른가"라고 질문했다.
테헤란과 런던에서 일어난 폭력 시위 모두 정부와 사회에 쌓인 불만이 표출됐다는 공통점이 있는 데도 서방 매체에선 전자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으로, 후자는 국가 시스템을 공격하는 불법 행위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핵합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했을 때 서방 언론은 '탈퇴'(withdraw)라고 표현했고 이란이 이에 대응해 일부 조항을 지키지 않겠다고 하자 '위반'(violate), '파기'(break)라고 적었다.
이란은 항상 불법적이고 수상쩍으며 돌발적이라는 편견을 강화하는 '작업'인 셈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반복됐다.
이란은 미국, 유럽보다 먼저 코로나19가 확산해 큰 인명피해가 났다.
부통령, 장·차관, 고위 성직자가 속속 감염되거나 사망하자 서방 언론은 즉시 이란 정부의 대혼란과 붕괴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코로나19의 불길은 곧 유럽으로 옮아갔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감염돼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가 정상으로는 처음 감염됐는데도 영국 정부의 붕괴를 거론하는 서방 매체는 어느 한 곳도 없었다.
당연히 이란과 영국 어느 곳도 정부가 붕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3월엔 코로나19의 진원이었던 이란 중부 도시 곰 주변 공동묘지에 구덩이 수십개가 미국 상업 위성에 찍힌 적이 있다.
미국 언론은 이를 근거로 이란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대규모로 발생했고, 이 구덩이는 이란 정부가 사망자 수를 은폐하려고 시신을 몰래 집단매장하기 위해 마련된 곳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란 정부는 이 공동묘지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발표했다는 근거를 댔지만 서방의 지독한 편견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달 뒤 상황은 역전됐다.
미국 뉴욕 인근 하트섬에서 코로나19로 숨진 무연고자의 시신이 담긴 목관 수십 개를 매장하는 장면이 공개된 것이다.
미국 주류 언론은 이에 대해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숨기려고 몰래 매장한다는 의혹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그저 '참혹한 장면'이라고 묘사했다.
이란은 모든 것이 수상하다고 보는 서방 매체의 일관되고 일치된 편견의 단면이다.
이란 턱밑인 걸프 지역과 그 앞바다에 미국의 최신 전략자산이 배치된다는 기사 아래에는 전쟁과 군사 충돌을 걱정하는 댓글보다는 '이란은 한 번 혼나보라'는 식의 댓글이 따라붙기 일쑤다.
미국이 한국의 최대 혈맹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적성국인 이란이 한국의 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제 관계는 그렇게 이분되지 않는다.
적의 적이 아군이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과 이란이 물리적으로 충돌한다면 그 즉시 유가가 폭등해 한국 국민은 주유소에 가기가 부담스러워진다.
그런데도 미국이 보유한 세계 최강의 첨단 무기가 마치 국군의 전력인 양 착각하는 태도는 제3세계에 대한 서방 언론의 편견에 수십년간 물들어 생겨난 기묘한 오만이 아닐까 한다.
남이 정한 편견에 휩쓸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코로나19 이후 국제 사회의 질서가 재편되는 '뉴노멀'의 시대가 온다면 더욱 그렇다.
참고로, 이란은 에스테크바르에 영국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이란이 부르는 영국의 별칭은 '교활한 여우'. 미국처럼 힘이 압도적이지 않은데다 미국과 이란을 이간질해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려 한다는 뜻에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