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통과를 촉구했던 ‘제주 4·3 특별법’이 1년여 만에 국회 논의 테이블에 올랐지만 여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여당은 “20대 국회 내에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지만 기획재정부와 야당은 “1조8000억원에 달하는 배·보상금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며 반대하고 있어 다음주로 예상되는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2일 법안 심사의 첫 단계인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제주 4·3 사건 희생자 배·보상을 골자로 한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을 비롯해 피해자 명예회복 등을 담은 강창일, 박광온, 위성곤, 권은희 안까지 병합 심사했다. 법안은 2018년 9월과 2019년 4월 두 차례 논의됐지만 당시 법안소위를 넘지 못했다. 1년이 지나 논의가 재개된 이날 회의장에는 원희룡 제주지사까지 찾아와 소속 상임위 의원들에게 “잘 부탁드린다”며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제주 4·3 사건 관련 진상 규명과 피해자 보상은 문 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약속해온 사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3일 참석한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제주 4·3 피해자들은 개별 소송으로 일부 배상을 받거나 정부의 의료지원금과 생활지원금을 지급받는 것에 머물고 있을 뿐, 법에 의한 배·보상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국회에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당시 추념식에 함께 참가한 이인영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도 20대 국회 내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쟁점은 배·보상을 위한 재원이다. 행안위에 따르면 제주 4·3 특별법에 따른 피해자 배·보상액은 1인당 평균 약 1억3000만원이다. 여기에 지금까지 피해자로 인정받은 1만4363명의 수를 고려하면 규모는 1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기재부는 배·보상 규모가 국가재정에 부담이 될 것이라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법안 통과 후 피해 인정자가 늘어나고 제주 4·3사건과 비슷한 사건에 대한 추가 배·보상까지 정부가 부담하게 된다면 많게는 4조원까지 필요할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반면 법안을 대표 발의한 오영훈 의원 측은 “실제 보상 결정이 되는 대상은 피해인정자 수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돼 소요 예산은 1조4000억원 규모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은 이 같은 기재부와 당의 이견을 고려해 당장 법안을 처리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