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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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 신청 과정에서 국민들이 자신도 모르게 ‘기부 동의’ 버튼을 누르도록 유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긴급재난지원금 카드 신청 메뉴와 기부 메뉴를 가급적 한 화면에 설치하라는 지침을 카드사에 내리는 식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지원금 지급 신청이 시작된 지난 11일 각 카드사에는 실수로 기부 동의 버튼을 누른 사람들의 “기부를 취소해달라”는 문의가 쏟아졌다.

12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코로나지원금의 기부 신청 절차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각 카드사에 내려보냈다. 코로나지원금 신청 화면과 기부 신청 절차를 분리하지 말고 같은 화면에 넣으라는 게 지침의 골자다.

당초 업계는 코로나지원금 신청 화면과 기부 신청 화면을 분리하려고 했다. 지원금 신청 절차를 마친 뒤 기부에 뜻이 있는 고객만 별도의 기부 신청 메뉴를 누르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대로라면 코로나지원금이 꼭 필요한 고객들이 실수로 지원금을 기부하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카드사들은 정부 지침에 따라 코로나지원금 신청 화면에 기부 신청 버튼을 함께 넣었다. 정부 눈치를 볼 일이 많은 카드산업의 특성상 지침을 거스르기 쉽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고객들이 무심결에 본인 인증과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을 위한 약관’에 동의하는 절차를 거쳐 마지막에 재난지원금 기부 여부를 묻는 항목까지 연달아 ‘동의’ 버튼을 누르는 실수를 하는 일이 속출했다. 이로 인해 기부 취소를 원하는 고객들의 전화가 몰리면서 카드사의 업무량이 급증하기도 했다.

‘한 번 기부를 결정하면 취소할 수 없다’는 게 정부 원칙이지만, 카드업계는 실수로 기부를 선택한 고객들이 당일 취소할 수 있도록 실무 절차를 마련했다. 기부하기로 결정했다가 변심한 고객은 오후 11시 30분 전 카드사 상담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카드사 신청 자료가 매일 오후 11시 30분에 정부로 넘어가는데, 이전에 기부를 철회한다고 카드사에 통보하면 정부로 기부 동의 정보가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자기도 모르게 기부에 동의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긴급히 지원이 필요한 취약계층이 더 많을 것”이라며 “정부의 ‘얄팍한 수’가 좋은 의도로 기부하는 사람들의 의도까지도 퇴색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코로나지원금 신청 화면과 기부 신청 절차를 분리하지 말라고 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기부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카드사 홈페이지가 신청 폭주로 마비되는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며 “일방적으로 지침을 내렸다기보다는 카드사와 협의를 통해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지원금 신청 화면이 한 개에서 두 개로 늘어나면 그만큼 카드사 홈페이지 부담도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해명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각 카드사가 국세청의 연말정산처럼 간소화된 페이지를 임시로 운용하는 등 서버 부담을 줄일 다른 좋은 방법이 많다”며 “정부가 굳이 신청과 기부를 한 화면에 모두 넣으라고 한 건 기부를 유도하려는 의도가 크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