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외국인의 한국채권 사랑?…그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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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국내 채권 보유잔액이 지난달 말 140조4940억원(금융감독원 발표 기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경제가 플러스 성장하다보면 어떤 부문이든 '사상 최고액'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코로나 경제위기라는 비상한 시기여서 그런지 한번 더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주식은 '동학 개미'들에게 냅다 팔아치우고는 채권으로 갈아 탔다고 볼 수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야속해서였을까. '두 얼굴의 외국인'이란 표현이 먼저 눈길을 끈다. 한국 채권이 선진국 채권과 같은 '안전 자산' 대접을 받고 있다는 시각도 도드라져 보인다. '코로나19의 성공적 극복'에 외국인이 채권 매입으로 화답했다는 조금은 '오버'한 듯한 분석도 있다.
◆두 얼굴을 가진 외국인?
올들어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식은 지속적으로 순매도한 반면, 채권은 계속 사들였다. 채권 상환 물량보다 순매수 금액이 많은 순투자를 지난 1~4월 이어갔다. 지난 3월 이후로 좁혀 보면 외국인들은 3월 유가증권시장에서 13조4500억원, 4월에는 5조3930억원 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에 비해 국내 채권은 지난 3월 7조3990억원, 4월에는 9조3210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다른 신흥국에서는 주식은 물론 채권도 '팔자'를 계속 외쳤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달까지 외국인은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멕시코, 남아공 등 6개 신흥국에서 총 410억달러(약 50조원) 어치의 채권을 팔아치웠다. 같은 기간 한국에서는 220억달러(약 27조원) 어치를 순매수한 것이다.
비록 주식과 채권이란 다른 투자상품에 다른 전략을 취한 것이지만, 한국을 떠나는 건지(Bye Korea) 한국을 사는 건지(Buy Korea) 헷갈리게 하는 측면은 있다. 물론 한국 채권까지 내던졌으면 국내 금융시장에 충격이 적지 않았을 터인데, 그런 점에선 '두 얼굴'을 보여줘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한국 채권은 '안전 자산'?
이처럼 다른 신흥국에서는 '셀(Sell)'로 일관한 채권을 한국에서는 사들이는 것을 두고 한국 채권이 '안전 자산' 대접을 받는 것이란 해석이 뒤따른다. 탄탄한 국가신용등급(AA, S&P 기준)에 주요 선진국 대비 높은 금리로 '선진국 채권'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1.43%대로 미국, 일본은 물론 싱가포르, 대만보다도 높다.
이같은 '팩트'들은 모두 맞지만 최종 결론이 조금 자화자찬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안전 자산 대접'이라는 평가 외에 금융시장 흐름이 바뀌는 큰 전환기 때마다 출현하는 '셸터(Shelter·피신처)'로서 한국 시장 내지 한국물의 특징이 다시 나타났다는 측면도 있다.
'셸터'란 금융시장 전환기에 어느 한편으로 방향이 잡히기 전까지 자금을 안전하게, 결코 낮지 않은 수익을 기대하며 넣어둘 수 있는 특정 시장을 말한다. 한국은 금융시장으로 볼때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간 정도다.
2013년 12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이 시작됐을 때 향후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 지 몰라 불안해한 외국인들이 신흥국에선 자금을 빼 한국의 채권을 적극 사들였다. 한국이 그들에겐 '셸터' 였고, 언제든 시장이 방향을 잡으면 다시 빼갈 돈이기도 했다. 2014년 9월에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950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던 상황에서 Fed의 양적완화 종료가 알려지면서 환율이 1100원대로 급등한 것도 이 요인 때문이라고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이 설명한 적이 있다.
셸터로 모여든 돈들은 일종의 달러 캐리 자금이어서 들어올 땐 좋지만, 썰물처럼 빠져나갈 땐 그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한국 채권 순매수 지속과 사상 최고액 기록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신종 경제위기를 맞아 세계 금융시장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 지 몰라 한국에 모여든 셸터 대기 자금이 아닐까 생각된다.
외국인의 채권 매수가 캐리 자금으로 일부 이뤄지는 것이라면 한국내 금리하락세와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 강세)를 예상한 투자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로 원달러 선물 환율에서 현물 환율을 차감한 원달러 스와프포인트(1년물 기준)가 여전히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어 원화 강세를 예측해볼 수 있다. 환율에서 손해보기는 커녕 오히려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판단에 들어오는 매수세인 셈이다.
◆코로나19의 성공적 극복 결과?
금융시장이 보여준 결과나 흐름의 양상을 조금은 생뚱맞아 보이는 요인들과 결부시킬 때가 없지 않다. 이번이 그렇다. 지난 4월 국내 채권시장 동향을 다룬 금융투자협회 보도자료를 보면 외국인의 사상 최대치 채권 보유 원인으로 세가지를 꼽고 있다. 재정거래(현·선물의 가격차를 겨낭한 거래) 유인, 국가 신용등급 대비 높은 금리, 그리고 코로나19의 성공적 극복을 들었다. 그리고는 부연 설명이 없으니 정부의 '코로나 모범 방역국' 홍보가 금융시장에까지 먹혀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다시 시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힌트가 있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 보유잔액은 올들어 3월 중순까지 130조원대에서 주춤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감소세로 전환되기 시작한 3월 후반부터 10조원 가량의 안정적인 증가세가 나타났다. 시기적으로 일치하다보니 '코로나 성공적 방역' 때문이란 설명이 그럴 듯해 보인다.
한꺼풀 더 벗겨보면 외국인 채권 투자 듀레이션(일종의 만기)이 3.80년으로 직전 고점인 4.01년보다 많이 줄어든 요인이 숨어 있다. 그만큼 특정 시점의 채권 매수가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아울러 보유잔액의 30% 정도는 재정거래가 영향을 끼친 결과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주식은 '동학 개미'들에게 냅다 팔아치우고는 채권으로 갈아 탔다고 볼 수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야속해서였을까. '두 얼굴의 외국인'이란 표현이 먼저 눈길을 끈다. 한국 채권이 선진국 채권과 같은 '안전 자산' 대접을 받고 있다는 시각도 도드라져 보인다. '코로나19의 성공적 극복'에 외국인이 채권 매입으로 화답했다는 조금은 '오버'한 듯한 분석도 있다.
◆두 얼굴을 가진 외국인?
올들어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식은 지속적으로 순매도한 반면, 채권은 계속 사들였다. 채권 상환 물량보다 순매수 금액이 많은 순투자를 지난 1~4월 이어갔다. 지난 3월 이후로 좁혀 보면 외국인들은 3월 유가증권시장에서 13조4500억원, 4월에는 5조3930억원 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에 비해 국내 채권은 지난 3월 7조3990억원, 4월에는 9조3210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다른 신흥국에서는 주식은 물론 채권도 '팔자'를 계속 외쳤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달까지 외국인은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멕시코, 남아공 등 6개 신흥국에서 총 410억달러(약 50조원) 어치의 채권을 팔아치웠다. 같은 기간 한국에서는 220억달러(약 27조원) 어치를 순매수한 것이다.
비록 주식과 채권이란 다른 투자상품에 다른 전략을 취한 것이지만, 한국을 떠나는 건지(Bye Korea) 한국을 사는 건지(Buy Korea) 헷갈리게 하는 측면은 있다. 물론 한국 채권까지 내던졌으면 국내 금융시장에 충격이 적지 않았을 터인데, 그런 점에선 '두 얼굴'을 보여줘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한국 채권은 '안전 자산'?
이처럼 다른 신흥국에서는 '셀(Sell)'로 일관한 채권을 한국에서는 사들이는 것을 두고 한국 채권이 '안전 자산' 대접을 받는 것이란 해석이 뒤따른다. 탄탄한 국가신용등급(AA, S&P 기준)에 주요 선진국 대비 높은 금리로 '선진국 채권'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1.43%대로 미국, 일본은 물론 싱가포르, 대만보다도 높다.
이같은 '팩트'들은 모두 맞지만 최종 결론이 조금 자화자찬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안전 자산 대접'이라는 평가 외에 금융시장 흐름이 바뀌는 큰 전환기 때마다 출현하는 '셸터(Shelter·피신처)'로서 한국 시장 내지 한국물의 특징이 다시 나타났다는 측면도 있다.
'셸터'란 금융시장 전환기에 어느 한편으로 방향이 잡히기 전까지 자금을 안전하게, 결코 낮지 않은 수익을 기대하며 넣어둘 수 있는 특정 시장을 말한다. 한국은 금융시장으로 볼때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간 정도다.
2013년 12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이 시작됐을 때 향후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 지 몰라 불안해한 외국인들이 신흥국에선 자금을 빼 한국의 채권을 적극 사들였다. 한국이 그들에겐 '셸터' 였고, 언제든 시장이 방향을 잡으면 다시 빼갈 돈이기도 했다. 2014년 9월에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950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던 상황에서 Fed의 양적완화 종료가 알려지면서 환율이 1100원대로 급등한 것도 이 요인 때문이라고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이 설명한 적이 있다.
셸터로 모여든 돈들은 일종의 달러 캐리 자금이어서 들어올 땐 좋지만, 썰물처럼 빠져나갈 땐 그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한국 채권 순매수 지속과 사상 최고액 기록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신종 경제위기를 맞아 세계 금융시장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 지 몰라 한국에 모여든 셸터 대기 자금이 아닐까 생각된다.
외국인의 채권 매수가 캐리 자금으로 일부 이뤄지는 것이라면 한국내 금리하락세와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 강세)를 예상한 투자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로 원달러 선물 환율에서 현물 환율을 차감한 원달러 스와프포인트(1년물 기준)가 여전히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어 원화 강세를 예측해볼 수 있다. 환율에서 손해보기는 커녕 오히려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판단에 들어오는 매수세인 셈이다.
◆코로나19의 성공적 극복 결과?
금융시장이 보여준 결과나 흐름의 양상을 조금은 생뚱맞아 보이는 요인들과 결부시킬 때가 없지 않다. 이번이 그렇다. 지난 4월 국내 채권시장 동향을 다룬 금융투자협회 보도자료를 보면 외국인의 사상 최대치 채권 보유 원인으로 세가지를 꼽고 있다. 재정거래(현·선물의 가격차를 겨낭한 거래) 유인, 국가 신용등급 대비 높은 금리, 그리고 코로나19의 성공적 극복을 들었다. 그리고는 부연 설명이 없으니 정부의 '코로나 모범 방역국' 홍보가 금융시장에까지 먹혀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다시 시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힌트가 있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 보유잔액은 올들어 3월 중순까지 130조원대에서 주춤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감소세로 전환되기 시작한 3월 후반부터 10조원 가량의 안정적인 증가세가 나타났다. 시기적으로 일치하다보니 '코로나 성공적 방역' 때문이란 설명이 그럴 듯해 보인다.
한꺼풀 더 벗겨보면 외국인 채권 투자 듀레이션(일종의 만기)이 3.80년으로 직전 고점인 4.01년보다 많이 줄어든 요인이 숨어 있다. 그만큼 특정 시점의 채권 매수가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아울러 보유잔액의 30% 정도는 재정거래가 영향을 끼친 결과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