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개시할 40조원 규모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지원 문턱이 높아져 ‘그림의 떡’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최근 “기금 지원을 받는 대기업에 하청업체 근로자 고용 유지 의무까지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정부가 이를 검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3일 정부 관계자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지원 조건을 정하기 위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하청 근로자 보호장치를 둬야 한다는 노동계 의견도 감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기업의 유동성 악화를 해소하기 위해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항공업과 해운업의 대기업이 주요 지원 대상이다. 정부는 다만 일정 기간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만 지원하기로 하고, 세부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지원받는 기업의 고용 유지 수준은 현재 직원 수의 90%가 유력하다.

문제는 대기업과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근로자다. 정부는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감안해 이들에 대한 보호장치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기간산업과 연계된 하청업체까지 혜택을 볼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다만 그 수준은 ‘강제’보다 ‘혜택’을 주는 방안 위주로 검토하고 있다. 하청업체들과 계약을 유지한 기업에 대출 상환 기간 연장 등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노동계가 “하청업체에 대한 강력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민주노총은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을 받는 기업은 하청 계약을 맺은 기업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며 “이를 거부하면 기금 지원을 금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고용 유지 지원 조건이 너무 까다로우면 기업이 이용하기 어려워진다”면서도 “노동계의 주장을 마냥 외면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은 고용부문 외 지원 조건도 까다롭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대출금의 최대 20%를 출자 방식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일정 부분 기업의 지분을 갖겠다는 얘기다.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는 미국(10%)보다 출자 비율이 높아 부담스럽다는 목소리가 많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