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기부 피싱' 논란에 정부는 펄쩍 뛰지만…
총 14조3000억원에 달하는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이 지난 11일부터 시작된 가운데 ‘기부 피싱’ 논란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국민들이 소비 대신 기부를 선택하도록 정부가 시스템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게 논란의 요지다.

이 같은 이야기가 퍼진 것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한 국민들의 ‘실수 기부’가 속출하면서다. 카드사 홈페이지에 지원금과 기부의 신청 화면이 분리돼 있지 않아, 별 생각 없이 약관 동의 항목에 ‘동의’를 누르다 보면 실수로 기부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카드사들은 애초에 신청과 기부를 화면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행정안전부가 ‘신청과 기부를 동일 페이지에 노출하라’고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으로 전해지면서 기부 피싱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행안부는 부랴부랴 가이드라인을 바꿨다. 13일부터 신청 과정에서 혼란이 없도록 ‘기부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메뉴를 만들고 전액 기부 시엔 팝업창을 통해 재확인하도록 했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카드마케팅 자제령에 대한 불만도 기부 피싱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은 위원장은 지난 8일 카드사와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업무협약에서 “과열 마케팅을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은 위원장의 한 마디에 커피 쿠폰 등 이벤트를 준비했던 카드사들은 계획을 줄줄이 접었고, 소비자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금융위가 카드사의 마케팅을 금지한 것에 대한 논리적 근거도 마땅치 않아, 금융권에서조차 정부가 소비 대신 기부를 유도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기부 피싱’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한 정부 관계자는 “피싱은 불법적으로 개인 정보를 빼내 범죄에 사용하는 행위인데, 이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쓰는 것은 음모론에 가깝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들에게 기부를 하도록 보이지 않는 압박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이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까지 줄줄이 기부를 선언하고 있다. 메리츠금융그룹, 농협 등에선 동의 없이 기부 방침이 발표됐다는 내부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사상 처음 시행되는 긴급재난지원금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고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 지원금은 누군가에겐 소중한 병원비로 활용될 수 있고, 어느 골목 가게엔 전기세를 낼 수 있는 하루 수당을 벌어줄 수 있다. 정부가 이번 지원금 지급을 계기로 ‘착한 소비’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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