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 원칙을 일부 완화해 대기업이 직접 국내 벤처기업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해 주목된다. 대기업 지주회사가 벤처캐피털을 계열사로 둘 수 없도록 한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설립을 허용하는 안이다. CVC는 시너지 창출 등 전략적 목적으로 벤처에 투자하는 기업 계열 벤처캐피털을 말한다.

그동안 경제계와 벤처업계에서는 “창업에서 매각에 이르는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하려면 자금이 풍부하고, 신사업 발굴 의지가 큰 대기업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글로벌 벤처시장에서는 굵직한 투자를 구글 같은 대기업 계열 CVC들이 주도하고 있다. 스타트업을 키워 비싼 값으로 대기업에 넘기는 게 꿈인 벤처 창업자들과, 검증된 벤처에 투자해 새 ‘엔진’을 장착하려는 대기업의 필요가 맞아떨어져 글로벌 CVC 투자가 2015~2019년 연평균 15.4% 증가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문재인 정부도 2018년 이 방안을 추진했지만 “대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여당 및 지지층의 반발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친노(親盧) 좌장’으로 꼽히는 이광재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포스트코로나본부장이 앞장서 추진하는 만큼 실현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관측이다.

세계적 흐름에 비춰볼 때 대기업의 CVC 허용을 지금에서야 추진하는 것은 만시지탄이다. 하지만 ‘슈퍼여당’으로 거듭난 민주당이 대기업에 대한 시각을 “함께가야 할 대상”(김병욱 의원)으로 전환하고 규제완화에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렇지 않아도 획일적 주 52시간 근무제 등 ‘갈라파고스 규제’로 외국인 직접투자가 위축되고 산업생태계의 선순환이 막혀 있다는 지적이 많았던 터다. 낡은 이념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코로나 위기 극복도 가능할 것이다. 이는 “해외 첨단산업을 유치해 한국을 첨단산업의 세계공장으로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