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마이너스 금리는 고려하고 있는 정책이 아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가세한 월가 일부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 주장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파월 의장은 “미국의 경기 회복이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느릴 수 있다”며 금융시장 일부의 섣부른 ‘V자형’ 경기 회복 기대를 경계했다.

“마이너스 금리 고려 안 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화상 대담 중인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PIIE 화면 캡처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화상 대담 중인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PIIE 화면 캡처
파월 의장은 13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주최의 웹캐스트를 통한 대담에서 “위원회는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하지 않기로 했고, 그런 시각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지난 3월 정례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00~0.25%로 낮추면서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알려주는 포워드 가이던스와 자산 매입이 기본적 도구라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시장에 일부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팬들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지금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정책 도구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마이너스 금리를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 포워드 가이던스와 자산 매입 등 Fed가 채택한 정책 도구가 잘 작동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효율성 측면에서 장단점이 섞여 있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경제 위기에서 중간 버팀목이 돼야 할 은행들의 수익성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트위터를 통해 “다른 국가들이 마이너스 금리로 혜택을 보는 한 미국도 이런 선물(gift)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뉴욕 금융시장 일부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점치는 움직임이 나타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까지 가세했다.

미국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는 지난 7일부터 올해 말~내년 초 기준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이란 베팅이 증가했다. 미 경제가 예상보다 느리게 회복될 것이고, Fed는 정부의 막대한 국채 조달을 돕기 위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춰야 할 것으로 본 것이다. 이에 따라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미 국채 금리도 8일 장중 한때 사상 최저인 연 0.085%까지 낮아졌다.

이미 2분기 2조9990억달러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국채 발행을 예고한 미 재무부는 이날 4월 재정적자가 7379억달러라고 발표했다. 오는 9월 30일까지인 이번 회계연도 적자는 역대 최대인 3조7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파월 의장도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위기는 현대에 발생한 가장 큰 충격”이라며 미국 경제의 회복이 험난할 것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경제 상황은 매우 불확실하며 심각한 하강 위험이 있다”며 “코로나19 발생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경기 회복은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느릴 수 있으며, 느린 회복은 기업과 가계 파산 등으로 오랜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업률에 대해서도 “몇 달 내 정점을 이루고 경기 회복과 함께 빠르게 떨어지겠지만, 50년 만에 최저였던 2018~2019년 수준보다는 상당히 위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기 어려울수록 논란 이어질 것

월가에선 Fed의 마이너스 금리 채택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도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돼 경기 회복이 늦어지면 채택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코로나19 위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속될수록 Fed는 모든 권한을 쓸 가능성이 높으며 그 가능성엔 마이너스 금리도 포함된다”고 전망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Fed가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하면 많은 한계기업이 계속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며 “Fed가 쓸 수 있는 도구로 마이너스 금리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실수”라고 말했다. JP모간도 “여전히 마이너스 금리 가능성이 낮다고 보지만, 만약 -10bp(1bp=0.01%포인트) 정도 약간 낮은 수준에서 1~2년씩 너무 오래 유지되지만 않는다면 그 효용은 비용을 넘어설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마이너스 금리보다는 국채 수익률 곡선 제어나 수익률 상한(Yield Cap) 정책이 더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국채 10년물 금리를 연 1%로 고정하고 그 이상 금리가 높아지면 무한대로 채권을 매입해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정책이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