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위한, 무얼 위한 재난지원금인가 [여기는 논설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됐다. 국민 몇%에 주느냐를 두고 시끄럽더니 지급이 시작되면서도 끝없이 이런 저런 논란으로 소란스럽다. 당초 취지는 코로나로 직접 고통 받는 이들에게 얼마라도 도움을 주고, 좀 여유 있는 사람들은 지원금을 소비하면서 내수라도 좀 살려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전 국민에게 주기로 할 때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재정상태는 천차만별이고 코로나로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당초에 하위 50%, 하위 70% 지급 얘기가 나왔던 것이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이 70% 안을 두고 버티는 듯 했지만 역시나 여당의 공세에 맥없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전 국민 지급 이유 자체가 황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국민을 소득이나 자산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이게 과연 말이 되나. 평소에 그렇게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편가르던 사람들이 코로나 위기를 맞아 빚까지 내며 추경을 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데 돈의 많고 적음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물론 이런 해괴한 논리는 총선을 앞둔 매표를 가리기 위한 말장난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야당이라는 사람들도 할 말이 없다. '전국민 지급' 카드를 먼저 꺼낸 것은 바로 미래통합당이었고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낚아챘다. 지급 대상 결정이라는 첫 단추부터 이상한 논리에 의해 잘못 채워졌으니 이후 벌어진 온갖 혼선과 '삑사리'는 정해진 수순이다.
기부 강요? 독려?
지난달 당정은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 지급하되 사회 지도층과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부자에게까지 돈을 준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고 세금을 통해 환수할 경우 "줬다 뺐는다"는 반발을 잠재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묘안(?)인 셈이다. 14조원에 달하는 소요 예산을 몇푼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생각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발적 기부'는 말 그대로 받은 사람이 스스로 기부에 나설 때를 말하는 것이지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여당이 "우리는 기부한다"며 공직사회나 대기업 등에 대해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결코 자발적 기부라 할 수 없다. 사실 '자발적 기부 유도'라는 말 자체가 말이 안되는 소리다. 정부 여당이 특정 행위를 유도하는 게 어떻게 '자발적'일 수 있나.
정부 여당의 압력 앞에 영원한 '을'일 수밖에 없는 공직자나 대기업 관계자 등에게는 사실상 강요에 다름 아니다.
특히 11일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 등이 잔뜩 지푸린 얼굴로 '긴급재난지원금 기부'라는 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이런데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 임원들이 어떻게 동참 행렬에 뛰어들지 않을 수 있겠나.
기부 피싱까지?
엊그제는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기부를 유도하는 '피싱'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SNS 뿐 아니라 금융권등에서 집중적으로 흘러나왔다. 신용카드사의 재난지원금 신청 페이지에 들어가서 신청하다보면 무심코 실수로 '전액기부'를 선택했다가 이를 취소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속출하면서 나온 얘기다. 정부가 일부러 헷갈리게 기부칸을 만들어 놓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행정안전부는 "기부활성화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라며 기부 선택시 팝업창으로 재차 확인 후 '기부하지 않음'도 선택할 수 있게 시스템 개선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금을 소비하기보다는 기부하기를 은근히 유도하고 있다는 의혹은 여전하다.
3개월 지나면 받지도 못하게 하고 자발적 기부로 간주한 것 역시 문제다. 코로나 쇼크가 3개월 후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장기화를 우려한다. 그런데 왜 재난지원금을 3개월 후에는 사용 못하게 막고 기부로 간주한다는 것인가.
명품은 되고 온라인 쇼핑은 안되고…도대체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사용처 정했나
재난지원금 사용처 찾기는 퍼즐 풀기처럼 어렵다. 얼핏보면 대기업 계열 상점은 안 되고 중소기업이나 재래시장은 되는 것 같지만 모두 그런 것도 아니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슈퍼 등 일상용품 쇼핑을 주로 하는 대형마트는 일단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대형마트 안에 있어도 미용실 안경점 약국 세차장 등 소상공인이 입주한 가게에서는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프랜차이즈 점포의 사용가능 여부 알기는 더욱 어렵다. 자영업자가 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는 쓸 수 있지만 프랜차이즈 본사가 직영하는 직영점은 본사 소재지 광역지자체 내에서는 되고 그 밖에서는 또 안 된다. 말인 즉슨 이렇다는 것인데 프랜차이즈 브랜드에만 익숙한 소비자들이 직영인지 아닌지, 본사 소재지 내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글로벌 대기업중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벅스의 경우 서울에 있는 스타벅스에서는 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고 서울 밖 스타벅스에서는 못쓴단다.
호화시설, 오락 관련 소비는 안 되는 것 같지만 이 역시 다 그런 것도 아니다. 노래방이나 골프 관련 지출은 안되면서 피부관리 필라테스 등은 또 가능하다고 하고 심지어 백화점 밖에 있으면 명품샵에서 명품도 살 수 있다고 하니 도대체 이런 고무줄 기준이 어디있나. 이런 복잡하고 애매한 기준조차 신용카드사마다 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가게 앞에 사용가능 여부 표시를 해 놓는다지만 100% 실행될지도 의문이고 도대체 이런 복잡한 사용처 구분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도 아리송하다.
지원금을 주는 취지가 뭔가
재난지원금의 취지는 코로나로 타격을 입은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재정적 도움이 되고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층은 이 돈을 상품이나 서비스 구매에 사용해 위축된 소비도 진작시키자는 것이다. 하지만 사용처를 보면 과연 이런 취지에 부합하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코로나가 주춤하다가 이태원 클럽 문제로 다시 제2차 확산 우려가 커지는 요즘이다. 대면접촉은 가급적 삼가는 게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재난지원금 사용처도 가급적 비대면 소비를 장려하는 쪽으로 이뤄졌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온라인 쇼핑에서는 대부분 재난지원금 사용이 불가하다. 쿠팡 G마켓 등 온라인 쇼핑을 '현장 결제'할 때만 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민주당은 전국민 지급을 결정하면서 국민을 소득이나 자산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재난지원금 사용처 역시 대기업 중소기업, 직영점, 가맹점, 대형마트, 소형마트 등으로 구분해서 편가르기를 해서는 안 된다. 아리송하고 제멋대로인 사용처 기준을 들여다 보면 재난지원금을 쓰라는 건지, 쓰기 복잡하니 기부하라는 건지 의심부터 든다.
신용카드사 동원해 놓고 마케팅은 하지마라?
금융위원회는 신용카드사들이 재난지원금 사용과 관련, 다양한 마케팅과 이벤트 등을 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정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나친 마케팅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재난지원금으로 진정한 소비진작 효과를 원한다면 굳이 신용카드사들의 마케팅을 막을 이유가 없다.
공적인 자금으로 개별 신용카드사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게 옳지 않다는 게 금융위의 입장이라지만 재난지원금 지급에 신용카드 회사를 정부가 맘대로 동원하는 것은 괜챦은가. 더욱이 카드회사들은 재난지원금 지급 시스템 구축을 위해 수억원 씩 투자를 했다고 한다. 재난지원금을 사용해도 기존 카드 고객들에게 주던 혜택도 그대로 제공해야 해서 카드사 입장에서는 손해인 부분도 있다.
국민 세금에서 나오는 재난지원금, 왜 정부가 맘대로 좌지우지하나
재난지원금은 결국 국민이 낸 세금의 일부를 돌려 받는 것일 뿐이다. 돈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이다. 재난지원금 주느라 찍은 국채도 국민이 나중에 갚아야 한다. 정부는 주인인 국민 돈의 관리자일 뿐, 돈의 주인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재난지원금을 보면 여당과 정부가 마치 제 돈을 국민들에게 나눠주 듯, 생색내고 지급 범위와 사용처까지 멋대로 정하고 국민들에게는 '공 돈' 생겼으니 기부하든지, 정부가 정하는 곳에서만 쓰라고 한다.
전국민에게 주기로 한 것부터 잘못됐지만 대상이 어떻게 됐든, 주기로했으면 그 다음 소비는 국민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뒀어야 한다. 돈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어디는 써도 되고 어디는 써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부터 가당치 않다.
본격 포퓰리즘 국가로 첫발 디뎠다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보면, 여당에서는 총선에 잘 활용했으니 이제는 어떻게든 기부로 유도하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코로나 재난지원금은 한국이 본격적 포퓰리즘 국가로 첫발을 디딘 사건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적잖은 국민들이 "그래도 돈 주는 게 어디냐" 며 희희낙낙하는 듯하다. 복잡한 신청절차, 까다로운 사용처 등에도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보다는 '공 돈'을 어디에 쓸까 골몰하는 이들이 더 많은 듯도 싶다.
돈의 위력은 그런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재난지원금은 내가 낸 돈이고, 나의 자식들이 갚아야 할 빚이다. 결코 누가 나에게 공짜로 주는 돈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전 국민에게 주기로 할 때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재정상태는 천차만별이고 코로나로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당초에 하위 50%, 하위 70% 지급 얘기가 나왔던 것이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이 70% 안을 두고 버티는 듯 했지만 역시나 여당의 공세에 맥없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전 국민 지급 이유 자체가 황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국민을 소득이나 자산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이게 과연 말이 되나. 평소에 그렇게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편가르던 사람들이 코로나 위기를 맞아 빚까지 내며 추경을 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데 돈의 많고 적음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물론 이런 해괴한 논리는 총선을 앞둔 매표를 가리기 위한 말장난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야당이라는 사람들도 할 말이 없다. '전국민 지급' 카드를 먼저 꺼낸 것은 바로 미래통합당이었고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낚아챘다. 지급 대상 결정이라는 첫 단추부터 이상한 논리에 의해 잘못 채워졌으니 이후 벌어진 온갖 혼선과 '삑사리'는 정해진 수순이다.
기부 강요? 독려?
지난달 당정은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 지급하되 사회 지도층과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부자에게까지 돈을 준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고 세금을 통해 환수할 경우 "줬다 뺐는다"는 반발을 잠재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묘안(?)인 셈이다. 14조원에 달하는 소요 예산을 몇푼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생각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발적 기부'는 말 그대로 받은 사람이 스스로 기부에 나설 때를 말하는 것이지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여당이 "우리는 기부한다"며 공직사회나 대기업 등에 대해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결코 자발적 기부라 할 수 없다. 사실 '자발적 기부 유도'라는 말 자체가 말이 안되는 소리다. 정부 여당이 특정 행위를 유도하는 게 어떻게 '자발적'일 수 있나.
정부 여당의 압력 앞에 영원한 '을'일 수밖에 없는 공직자나 대기업 관계자 등에게는 사실상 강요에 다름 아니다.
특히 11일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 등이 잔뜩 지푸린 얼굴로 '긴급재난지원금 기부'라는 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이런데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 임원들이 어떻게 동참 행렬에 뛰어들지 않을 수 있겠나.
기부 피싱까지?
엊그제는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기부를 유도하는 '피싱'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SNS 뿐 아니라 금융권등에서 집중적으로 흘러나왔다. 신용카드사의 재난지원금 신청 페이지에 들어가서 신청하다보면 무심코 실수로 '전액기부'를 선택했다가 이를 취소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속출하면서 나온 얘기다. 정부가 일부러 헷갈리게 기부칸을 만들어 놓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행정안전부는 "기부활성화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라며 기부 선택시 팝업창으로 재차 확인 후 '기부하지 않음'도 선택할 수 있게 시스템 개선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금을 소비하기보다는 기부하기를 은근히 유도하고 있다는 의혹은 여전하다.
3개월 지나면 받지도 못하게 하고 자발적 기부로 간주한 것 역시 문제다. 코로나 쇼크가 3개월 후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장기화를 우려한다. 그런데 왜 재난지원금을 3개월 후에는 사용 못하게 막고 기부로 간주한다는 것인가.
명품은 되고 온라인 쇼핑은 안되고…도대체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사용처 정했나
재난지원금 사용처 찾기는 퍼즐 풀기처럼 어렵다. 얼핏보면 대기업 계열 상점은 안 되고 중소기업이나 재래시장은 되는 것 같지만 모두 그런 것도 아니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슈퍼 등 일상용품 쇼핑을 주로 하는 대형마트는 일단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대형마트 안에 있어도 미용실 안경점 약국 세차장 등 소상공인이 입주한 가게에서는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프랜차이즈 점포의 사용가능 여부 알기는 더욱 어렵다. 자영업자가 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는 쓸 수 있지만 프랜차이즈 본사가 직영하는 직영점은 본사 소재지 광역지자체 내에서는 되고 그 밖에서는 또 안 된다. 말인 즉슨 이렇다는 것인데 프랜차이즈 브랜드에만 익숙한 소비자들이 직영인지 아닌지, 본사 소재지 내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글로벌 대기업중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벅스의 경우 서울에 있는 스타벅스에서는 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고 서울 밖 스타벅스에서는 못쓴단다.
호화시설, 오락 관련 소비는 안 되는 것 같지만 이 역시 다 그런 것도 아니다. 노래방이나 골프 관련 지출은 안되면서 피부관리 필라테스 등은 또 가능하다고 하고 심지어 백화점 밖에 있으면 명품샵에서 명품도 살 수 있다고 하니 도대체 이런 고무줄 기준이 어디있나. 이런 복잡하고 애매한 기준조차 신용카드사마다 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가게 앞에 사용가능 여부 표시를 해 놓는다지만 100% 실행될지도 의문이고 도대체 이런 복잡한 사용처 구분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도 아리송하다.
지원금을 주는 취지가 뭔가
재난지원금의 취지는 코로나로 타격을 입은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재정적 도움이 되고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층은 이 돈을 상품이나 서비스 구매에 사용해 위축된 소비도 진작시키자는 것이다. 하지만 사용처를 보면 과연 이런 취지에 부합하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코로나가 주춤하다가 이태원 클럽 문제로 다시 제2차 확산 우려가 커지는 요즘이다. 대면접촉은 가급적 삼가는 게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재난지원금 사용처도 가급적 비대면 소비를 장려하는 쪽으로 이뤄졌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온라인 쇼핑에서는 대부분 재난지원금 사용이 불가하다. 쿠팡 G마켓 등 온라인 쇼핑을 '현장 결제'할 때만 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민주당은 전국민 지급을 결정하면서 국민을 소득이나 자산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재난지원금 사용처 역시 대기업 중소기업, 직영점, 가맹점, 대형마트, 소형마트 등으로 구분해서 편가르기를 해서는 안 된다. 아리송하고 제멋대로인 사용처 기준을 들여다 보면 재난지원금을 쓰라는 건지, 쓰기 복잡하니 기부하라는 건지 의심부터 든다.
신용카드사 동원해 놓고 마케팅은 하지마라?
금융위원회는 신용카드사들이 재난지원금 사용과 관련, 다양한 마케팅과 이벤트 등을 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정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나친 마케팅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재난지원금으로 진정한 소비진작 효과를 원한다면 굳이 신용카드사들의 마케팅을 막을 이유가 없다.
공적인 자금으로 개별 신용카드사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게 옳지 않다는 게 금융위의 입장이라지만 재난지원금 지급에 신용카드 회사를 정부가 맘대로 동원하는 것은 괜챦은가. 더욱이 카드회사들은 재난지원금 지급 시스템 구축을 위해 수억원 씩 투자를 했다고 한다. 재난지원금을 사용해도 기존 카드 고객들에게 주던 혜택도 그대로 제공해야 해서 카드사 입장에서는 손해인 부분도 있다.
국민 세금에서 나오는 재난지원금, 왜 정부가 맘대로 좌지우지하나
재난지원금은 결국 국민이 낸 세금의 일부를 돌려 받는 것일 뿐이다. 돈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이다. 재난지원금 주느라 찍은 국채도 국민이 나중에 갚아야 한다. 정부는 주인인 국민 돈의 관리자일 뿐, 돈의 주인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재난지원금을 보면 여당과 정부가 마치 제 돈을 국민들에게 나눠주 듯, 생색내고 지급 범위와 사용처까지 멋대로 정하고 국민들에게는 '공 돈' 생겼으니 기부하든지, 정부가 정하는 곳에서만 쓰라고 한다.
전국민에게 주기로 한 것부터 잘못됐지만 대상이 어떻게 됐든, 주기로했으면 그 다음 소비는 국민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뒀어야 한다. 돈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어디는 써도 되고 어디는 써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부터 가당치 않다.
본격 포퓰리즘 국가로 첫발 디뎠다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보면, 여당에서는 총선에 잘 활용했으니 이제는 어떻게든 기부로 유도하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코로나 재난지원금은 한국이 본격적 포퓰리즘 국가로 첫발을 디딘 사건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적잖은 국민들이 "그래도 돈 주는 게 어디냐" 며 희희낙낙하는 듯하다. 복잡한 신청절차, 까다로운 사용처 등에도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보다는 '공 돈'을 어디에 쓸까 골몰하는 이들이 더 많은 듯도 싶다.
돈의 위력은 그런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재난지원금은 내가 낸 돈이고, 나의 자식들이 갚아야 할 빚이다. 결코 누가 나에게 공짜로 주는 돈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