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기고 전문 매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도 세계는 큰 변화를 겪지 않고 오히려 기존의 흐름이 더 고착화되고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그는 그 근거로 위기가 닥치면 정치 지도자와 시민들이 더욱 확증편향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걸 들었다. 확증편향은 본인의 신념과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걸 의미한다.

권위주의 정치가와 포퓰리스트에게서 이런 경향이 엿보인다. 이들은 코로나19를 자신의 정치 권한을 강화하거나 지지를 얻는 데 활용한다. 로드릭 교수는 이들로 인해 위기 이전의 세계 조류를 뒤집기는커녕 바꾸지도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치 변하지 않고 경제만 급변

코로나19가 중국 밖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지 3~4개월이 지났다. 로드릭의 예상대로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와 포퓰리스트는 자신들의 확증편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당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배타적 국가주의를 다시 강화하려 든다. 시 주석이 최근 들어 부쩍 즐겨 쓰는 용어는 ‘마지노 사고(bottom-line thinking)’다.

지난 4월 21일 열린 공산당 정치위원회에서도 이를 강조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인민망에 따르면 마지노 사고는 위기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그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 양보가 아니라 보복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뜻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시 주석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인민전쟁으로 부르면서 방역에서 중국 국민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해왔다. 그는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지도자들도 이런 확증편향을 보인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사회적 격리 조치가 코로나19보다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다며 국민에게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했다. 그 결과 브라질 감염자가 19만 명을 넘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나라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코로나19 정책과 관련한 말실수를 여러 차례하고 반기를 드는 전문 보건 관료들도 해임하려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또한 감염자가 급증하는데도 제한을 완화하려 한다. 프랑스 노조 등 이익단체들은 코로나 사태 중에도 시위를 벌였다.

혁신 풍토 사라지는 게 문제

정작 경제에선 급변과 파괴의 연속이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 말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불황이다. 미국의 2분기 실질 성장률이 -32%까지 내려간다는 보고도 나온 터다. 듣도 보도 못한 경제지표들이 계속 발표된다. 유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미 실업률이 최대 25%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가정용 식품 가격만 상승하고 다른 제품과 서비스는 가격이 하락하는 기현상도 나타난다.

영업을 개시한 지역엔 소비자가 찾아오지 않는다. 한 번 사라진 일자리는 되돌아오지 않아 실업자들이 다시 일을 찾으려면 임금이 더 낮은 곳을 찾아야 한다. 생산성은 논할 겨를도 없다. 자영업자들은 영원히 사업을 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려되는 건 투자가 붕괴되고 혁신이 퇴조하는 것이다. 닉 볼룸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내년 특허 출원이 급격하게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개발과 혁신도 버릇이고 습관일 수 있다. 한 번 혁신하는 풍토가 사라지면 습관이 되는 게 가장 무섭다. 변하지 말아야 할 혁신의 노력은 사라져가고 변해야 할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은 변하지 않는다. 코로나가 정작 두려운 건 이 때문이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