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줘라" 65% 묵살…처벌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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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전 재산 빼돌리면 그만
감치명령, 6개월 지나면 무효
개정 법안 국회서 '누더기'
형사처벌·출금·명단공개 빠져
'면허 취소' 법사위 통과 어려워
감치명령, 6개월 지나면 무효
개정 법안 국회서 '누더기'
형사처벌·출금·명단공개 빠져
'면허 취소' 법사위 통과 어려워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사랑만이 아니라 돈도 중요하다.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된 부모 입장에선 양육비는 더욱 절실한 문제다. 가사소송법에 따라 법원이 양육비 지급 이행명령을 내릴 수 있고, 여성가족부가 5년 전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설립했지만 여전히 양육비에 '나몰라라'하는 무책임한 부모들이 많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이혼 배우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도록 관련법 개정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형사처벌까지 가능하게 했던 원안에서 대폭 후퇴해 처벌 수위가 운전면허 정지나 취소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양육비 받는 건 세 명 중 한 명
김미래씨(47·여)는 10여년간 11살 아들과 10살 딸을 홀로 키웠다. 별거할 때부터 두 아이를 친정에 맡겨놓고 아르바이트 자리부터 구했다. 먹고 입히는 것부터 학원비까지 아이들한테 쓰는 돈이 한 달에 100만원 이상 들어갔기 때문이다. 전 남편으로부터 받아야하는 양육비는 장래양육비까지 2600만원이다. 이 중에서 김씨의 손에 들어온 돈은 고작 250만원. 정부 산하기관을 통해 양육비를 받아보려고 했지만 전남편은 이미 재산을 다 이전해둔 상태였다.
김씨는 “양육비 지급 불이행한 전남편에게 감치명령도 내려졌지만 6개월 동안 피해 다니니까 끝났다”며 “양육비를 주지 않을 수 없게끔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사회적 문제이지만 여전히 문제를 해결할 부담은 양육자 개인에게만 지워져있다.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주지 않고 버티면 수년 동안 소송을 계속 해야 한다. 소송에서 이겨도 채무자가 잠적하거나 재산을 숨기면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정부가 양육비 이행을 돕고자 2015년 3월 여성가족부 산하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설치했으나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따르면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접수된 2만여 건의 이행 지원 신청 가운데 실제 양육비가 지급된 건 5715건(35.6%)이다. 양육비 이행 지원 신청이 쉬운 일만도 아니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만 20가지가 넘는다.
현행법에 양육비 채무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법원에서 급여나 재산에서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명령을 내릴 규정은 있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지 않거나 재산을 이전해 빼돌릴 경우 사실상 받아낼 수 없다. 마지막 수단은 구치소 감치 명령이다. 가사소송법은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는 이혼 배우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경우 30일 이내의 감치에 처하도록 한다. 하지만 집행기간인 6개월 내에 채무자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감치 명령 자체가 무효가 된다. 이 때문에 6개월 간 잠적하는 채무자들도 부지기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부모 양육자에게 있어 양육비는 절실한 문제다. 2018년 여가부가 실시한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154만 한부모가구의 월 평균소득은 전체가구의 56.5% 수준인 220만원, 자산은 25.1% 수준인 8559만원으로 나타났다.
“양육비 미지급하면 형사처벌 해야”
양육비 채무자들에게 감치 이상의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4일 양육비 미지급 부모를 아동학대로 형사처벌 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글이 올라가기도 했다.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는 “법적으로 양육비 지급 의무에 강제성을 부여하려면 채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민간에서 양육자 채무자에 대한 신상을 공개하고 있는 사이트 ‘배드파더스’가 있지만, 국가기관이 아닌 사인에게 다른 사람들의 신상정보 공개 권한을 줄 경우 법치주의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소송에 휘말렸다. 운영자가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검찰이 항소해 2심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20대 국회에는 양육비 미지급 시 형사처벌, 명단공개, 운전면허 취소 등을 할 수 있도록 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하지만 개정안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하며 형사처벌, 출국금지, 명단공개 등의 내용은 빠졌다. 운전면허를 정지·취소시킬 수 있는 내용만 남았는데 이마저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빠질 가능성이 있다. 경찰청이 “교통과 상관없는 이유로 운전면허를 정지·취소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헌법상 부당결부금지의 원칙에 따라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과 운전면허 정지·취소 사이에는 연관 관계가 없다”며 “거주와 이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운전면허 정지마저 빠지면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사실상 없다”며 “아이 양육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이 부모에게 있고, 양육비를 안주면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란 인식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 체계에 맞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법적 상상력으로 아동권과 관련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양육비 문제를 형사 처벌로 다스리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위치탐색서비스를 실시하고, 여권 발급이 거부된다. 캐나다도 양육비가 체납되면 여권을 비롯한 각종 면허 발급이 거부된다. 독일은 양육비 채무자에게 최장 징역 3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고, 프랑스 역시 1만5000유로(약 2000만원)의 벌금과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게 했다.
국가가 양육비 대신 지급하는 ‘대지급제’ 필요해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양육비 채무자에게 징수하는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을 공약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이미 운영하고 있는 제도다.
지난해 발간된 여가부의 ‘양육비 이행지원 강화방안 연구’ 보고서도 양육비 대지급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로서 아동의 최저생계수준은 국가가 우선적으로 보장한다는 인식에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해 양육비 대지급 수당 지원대상자 10만6000여명(추정)에게 최저 양육비 수준인 20만원을 매달 지급하려면 약 2537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사적 문제’가 아닌 ‘공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양육비 미지급 부모가 국가를 상대해야지, 양육자를 상대하게 해선 안 된다”며 “둘 사이 관계만 더 나빠지고 문제 해결에는 도움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육비를 대신 받아내는 양육비이행관리원도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남영/최다은 기자 nykim@hankyung.com
실제 양육비 받는 건 세 명 중 한 명
김미래씨(47·여)는 10여년간 11살 아들과 10살 딸을 홀로 키웠다. 별거할 때부터 두 아이를 친정에 맡겨놓고 아르바이트 자리부터 구했다. 먹고 입히는 것부터 학원비까지 아이들한테 쓰는 돈이 한 달에 100만원 이상 들어갔기 때문이다. 전 남편으로부터 받아야하는 양육비는 장래양육비까지 2600만원이다. 이 중에서 김씨의 손에 들어온 돈은 고작 250만원. 정부 산하기관을 통해 양육비를 받아보려고 했지만 전남편은 이미 재산을 다 이전해둔 상태였다.
김씨는 “양육비 지급 불이행한 전남편에게 감치명령도 내려졌지만 6개월 동안 피해 다니니까 끝났다”며 “양육비를 주지 않을 수 없게끔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사회적 문제이지만 여전히 문제를 해결할 부담은 양육자 개인에게만 지워져있다.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주지 않고 버티면 수년 동안 소송을 계속 해야 한다. 소송에서 이겨도 채무자가 잠적하거나 재산을 숨기면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정부가 양육비 이행을 돕고자 2015년 3월 여성가족부 산하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설치했으나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따르면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접수된 2만여 건의 이행 지원 신청 가운데 실제 양육비가 지급된 건 5715건(35.6%)이다. 양육비 이행 지원 신청이 쉬운 일만도 아니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만 20가지가 넘는다.
현행법에 양육비 채무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법원에서 급여나 재산에서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명령을 내릴 규정은 있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지 않거나 재산을 이전해 빼돌릴 경우 사실상 받아낼 수 없다. 마지막 수단은 구치소 감치 명령이다. 가사소송법은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는 이혼 배우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경우 30일 이내의 감치에 처하도록 한다. 하지만 집행기간인 6개월 내에 채무자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감치 명령 자체가 무효가 된다. 이 때문에 6개월 간 잠적하는 채무자들도 부지기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부모 양육자에게 있어 양육비는 절실한 문제다. 2018년 여가부가 실시한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154만 한부모가구의 월 평균소득은 전체가구의 56.5% 수준인 220만원, 자산은 25.1% 수준인 8559만원으로 나타났다.
“양육비 미지급하면 형사처벌 해야”
양육비 채무자들에게 감치 이상의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4일 양육비 미지급 부모를 아동학대로 형사처벌 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글이 올라가기도 했다.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는 “법적으로 양육비 지급 의무에 강제성을 부여하려면 채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민간에서 양육자 채무자에 대한 신상을 공개하고 있는 사이트 ‘배드파더스’가 있지만, 국가기관이 아닌 사인에게 다른 사람들의 신상정보 공개 권한을 줄 경우 법치주의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소송에 휘말렸다. 운영자가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검찰이 항소해 2심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20대 국회에는 양육비 미지급 시 형사처벌, 명단공개, 운전면허 취소 등을 할 수 있도록 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하지만 개정안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하며 형사처벌, 출국금지, 명단공개 등의 내용은 빠졌다. 운전면허를 정지·취소시킬 수 있는 내용만 남았는데 이마저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빠질 가능성이 있다. 경찰청이 “교통과 상관없는 이유로 운전면허를 정지·취소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헌법상 부당결부금지의 원칙에 따라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과 운전면허 정지·취소 사이에는 연관 관계가 없다”며 “거주와 이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운전면허 정지마저 빠지면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사실상 없다”며 “아이 양육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이 부모에게 있고, 양육비를 안주면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란 인식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 체계에 맞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법적 상상력으로 아동권과 관련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양육비 문제를 형사 처벌로 다스리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위치탐색서비스를 실시하고, 여권 발급이 거부된다. 캐나다도 양육비가 체납되면 여권을 비롯한 각종 면허 발급이 거부된다. 독일은 양육비 채무자에게 최장 징역 3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고, 프랑스 역시 1만5000유로(약 2000만원)의 벌금과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게 했다.
국가가 양육비 대신 지급하는 ‘대지급제’ 필요해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양육비 채무자에게 징수하는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을 공약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이미 운영하고 있는 제도다.
지난해 발간된 여가부의 ‘양육비 이행지원 강화방안 연구’ 보고서도 양육비 대지급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로서 아동의 최저생계수준은 국가가 우선적으로 보장한다는 인식에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해 양육비 대지급 수당 지원대상자 10만6000여명(추정)에게 최저 양육비 수준인 20만원을 매달 지급하려면 약 2537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사적 문제’가 아닌 ‘공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양육비 미지급 부모가 국가를 상대해야지, 양육자를 상대하게 해선 안 된다”며 “둘 사이 관계만 더 나빠지고 문제 해결에는 도움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육비를 대신 받아내는 양육비이행관리원도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남영/최다은 기자 nykim@hankyung.com